Rekindle (6)

나는 내 성향이나 성품에 비해서는 기도와 관련된 경험들이 그래도 좀 있는 것 같다.
이건 한편 하나님께 참 감사하는 점이다.

기도를 하다가 다소 신비한 일종의 체험 같은 것들도 좀 있는 편이고,
한동안 새벽기도를 그래도 좀 열심히 할때 그 시간에 특별히 성령님께서 부어주시는 어떤 은혜가 있었다.

지금도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도를 하다가, 평소의 나와는 조금 다른 어떤 ‘상태’에 다다르게 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게… 말로 잘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그런 ‘상태’가 되면 그냥 기도가 확~ 잘 된다.
뭐 기도가 잘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 말고는 어떻게 표현할지 잘 모르겠는데… 그냥 기도가 잘 된다.

그렇게 기도가 확~ 열리는 때가 되면 한 30분 기도하는 것이 후다닥~ 3~4분 같이 지나가는 경험을 할때도 있었다.

또 침묵기도, 센터링기도, 관상기도 라고 부르는 경험들도 나름대로 조금 있다.
이것도 나는 훈련이 많이 부족해서 그런 기도를 하면서 늘 어떤 경지에 이르는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닌데…
가끔은 Celtic 크리스천들이 부르는 ‘thin place'(하늘과 땅의 경계가 매우 얇은 곳)에 다다르는 경험을 할때가 있다.
대개는 그럴때도 꽤 긴 시간 기도를 했는데도 그 시간이 매우 짧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좀 속되게 말하면 복불복이고, 조금 더 경건하게 말하면 성령의 일하심에 달린 것이어서… 늘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지난 몇년간은 그런 기도를 거의 하지 않아서 그나마도 이런 경험을 한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나는 기도에 관한한 아직도 잘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더 조금 더 깊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지만 아주 작긴 하지만 어떤 ‘불씨’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긴 하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의 영적 게으름과 무지로,
그나마 있던 작은 불씨까지도 꺼뜨리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기도와 관련된 불씨들을 다시 살려내고 싶다. Rekindle 이다.

Rekindle (5)

성령께 순종하는 것도 역시 내겐 매우 중요한 ‘불’의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계속해서 내게 말씀하시는 성령을 인정하고,
그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려고 많이 애썼고,
그것이 참 많이 좋았다.

그 과정은 꽤 자주 ‘싸움’이었다.
내 안에 있는 나의 음성과, 역시 내 안에 계시는 성령의 음성 사이에서 고뇌하며,
조금씩 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 나를 복종시키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그런데…
이건… 벌써 꽤 오래전부터 내게서 거의 사라져버린 ‘불’인것 같다.

내 안에서 들려오는 잘못된 목소리로 성령의 음성을 눌러버리는 일들이 정말 너무나도 많다.
그것 때문에 가시가 돋친 말을 쏟아내기도 하고, 불합리하게 화를 내기도 하고, 지나치게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하기도 한다.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가며 그분께서 나를 잘 다드리도록 내어놓 모습,
그리고 내 안의 거짓된 음성과 싸우며 내 뜻을 꺾어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은 정말 내가 꽤 오랫동안 잃어버린, 다시 붙여야할 ‘불’이 아닌가 싶다.

Rekindle (4)

내게 있어 처음 다가왔던 그 불은,
내가 control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게 눈이 열린거다. 어떻게 열렸는지 설명하기도 어렵고, 그걸 내가 막 만들어 내려고 해서 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눈이 열려 예전에 잘 보이지 못하던 것이 보이게 된 것이었다.

그런의미에서 내게 있던 ‘불’의 아주 중요한 핵심은 성령의 조명 (성령께서 깨닫게 하심)이었다.

그게 내 성격이나 성향 때문이었을까.
내게 그 깨닫는 가장 중요한 대상은 성경이었다.
성경 말씀이 막 이해가 되는거다.

아, 물론 그때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성경은 그후로 여태껏 나름 꽤 열심히 공부하며 살아왔는데, 아직도 계속 더 깨닫고 있는 중이긴 하다.

다만, 그 ‘불’의 핵심이 성경공부는 아니었다.
성령의 깨닫게 하심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지금은 그 중심이 성령의 깨닫게 하심보다는 성경공부쪽으로 옮겨간 것이 아닌가 싶다.

아마 내가 다시 불을 붙여야 하는 (rekindle)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Rekindle (3)

그런데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내게있어 기독교 신앙이 내게 주는 기쁨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갖게되는 것과는 다소 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때로는 더 깊은 성경 공부를 통한 지적 만족,
더 효율적인 사역을 통해서 열매가 맺히는 것,
신앙의 가치를 삶에 적용해서 어떤 깨달음을 얻거나 경험을 축적하는 것 등에 더 무게중심이 옮겨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런 것들이 나쁜것들은 아니다.
모두 다 좋은 것들이고, 내 신앙이 더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가져왔던 ‘불’은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 예수님과 동행하기 때문에 새롭게 나와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그 불은 아니라는 것.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 동행하는 것이 과거에는 신앙의 핵심이자 목표였다면,
이제는 그것이 너무 자주 신앙의 도구로서만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그 ‘불’을 다시 켜는 것, rekindle이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Rekindle (2)

만일 내게 필요한 것이 re-kindle이라면, 내게 원래 불이 있었던가?

음…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여러가지 이유로 많이 잃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내게 있던 그 불은 무엇이었나?

더 깊은 신학적 지식, 더 효과적인 사역을 하게 되는 것, 내 삶을 더 잘 manage해서 살게되는 것 같은 것들이 물론 중요했지만,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었던 불의 핵심은 아니었다.

나는 대학3학년때쯤 마음속에 깊은 공허가 있었다.
글쎄… 그 공허가 무엇이었는지 참 뭐라 다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공허였다.
그 후에 그 공허를 나름대로 잘 설명해보려는 시도를 내 나름대로는 해 보았는데, 충분히 다 설명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대학3~4학년을 거치며 나는 일종의 ‘회심체험’같은 것을 하게 되었다.
갑자기 잘 읽혀지지 않던 성경이 이해가 되고, 그것때문에 많이 흥분하고 감동하게 되었다.
혼자서 눈물을 흘리는 일들이 많아졌는데 아주 많은 경우 회개의 눈물이라기 보다는 감격과 기쁨의 눈물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나와 세상이 아름답게 되는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결국 그것이 내게 ‘불’이었던 것 같다.

엄밀하게 말하면 죽어서 이제는 천국갈 수 있다는 안도감 그런것이라기 보다는,
내가 예수님을 받아들여서 이제는 내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다는 데서 오는 기쁨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내게서 공허함이 사라졌다.
의미가 생겼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내겐 ‘불’이었다.

Rekindle (1)

“…그대 속에 간직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사에 다시 불을 붙이게 하려고 합니다.” 디모데전서 1:6b

여기에서 다시 불을 붙인다고 번역한 말을 어떤 영어 성경에서는 kindle afresh 라고 번역을 했다. (NASB)

그런데 원어는 거의 ‘다시 불타오르게 한다’는 뜻을 가진 단어인 것 같다.
그래서 ESV에서는 ‘to fan into flame’이라는 표현을 썼다.

연말에 쉬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생각하게 된것은 rekindle 이었다.

내게도 정말 어떤 형태로든 rekindle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2023년이 내게 The Year of Rekindling이 되길.

2023년!

우아, 참 잘 쉬었다.

잠을 푹 잘 잤다. 가족과 함께 짧은 여행도 다녀왔고, 갔던 곳이 완전 시골이어서 난생처음 은하수도 볼 수 있었다.
우아, 하늘에 그렇게 별이 많다니!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하거나, 계획을 짜거나 하는 것 따위 거의 하지 않고,
정말 쉬었다.

이제 다시 시동걸고 출발이다.
새해엔 조금 더 성실하게 살아볼 생각이다.
어쩌면 내게 더 필요한 것은 조금 더 성실하게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

올해를 정리하며

아마도 오늘의 글이 올해의 마지막 포스팅이 아닐까 싶다.
내일부터는 새해 1월 초까지 잠시 휴가를 가지려 한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한해동안 좀 성숙해지는데 집중해보겠다고 결심을 했었고,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기능’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그냥 계속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내 인격 자체에서 맺혀야하는 열매를 맺고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서 였다.

그러기위해서 규칙성으로부터 때로는 벗어날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한해를 돌이켜보며 내가 조금 더 그렇게 살았을까를 생각해본다.
아닌 것 같다.

그런데 희망적인 것은,
한동안 급격하게 내가 기능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었는데, 그 가속화 흐름은 확실히 꺾였다. 추세가 달라졌다고나 할까.

연말에 조금 잘 쉬어볼 생각이다.
쉬면서 하나님과 사람들과 나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려고 한다.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ould one day walk on water?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ould save our sons and daughters?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Has come to make you new?
This child that you delivered, will soon deliver you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ill give sight to a blind man?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ill calm the storm with his hand?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Has walked where angels trod?
When you kiss your little baby
You kiss the face of God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The blind will see, the deaf will hear
The dead will live again
The lame will leap, the dumb will speak
The praises of the Lamb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Is Lord of all creation?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ould one day rule the nations?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Is heaven’s perfect Lamb?
That sleeping child you’re holding is the great, I Am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Oh

마리아 당신 알고 있었나요 당신의 그 아기
언젠가 그가 물 위를 걷고 우리를 우권할 것을
마리아 알고 있었나요 당신의 삶이 바뀔 것을
당신이 낳은 아기 당신을 살릴것을

마리아 당신 알고 있었나요 당신의 그 아기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폭풍을 잠잠케 할 것
마리아 알고 있었나요 그는 하늘에서 온 이
당신이 입맞춘 얼굴, 하나님의 얼굴

눈먼 자를 보게 하고 죽은 자 살리고
저는 자를 뛰게하고 벙어리를 찬양케
오 마리아 당신 알고 있었나요
당신의 그 아기가 만유의 주
마침내 그가 온 세상 통치할 것을
마리아 알고 있었나요
당신 품의 그 아기가 하나님의 어린양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Bell labs, IBM research, HP labs

내가 대학생일때, 그 후에 박사과정 전반부까지만 하더라도
Bell labs이나 IBM TJ Watson 연구소 등에 가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

사실 내가 박사과정을 했던 분야에서 거의 절대 강자는 Bell labs의 어떤 그룹이었다.
거의 넘사벽에 가까울 정도로 훌륭한 논문들이 그곳에서 나왔다.

그리고 IBM research도 역시 그랬다.

그런데…
내가 박사과정을 마칠때 쯤 해서 Bell labs의 위상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Bell labs라는 연구소가 여기 저기 소속을 바꾸더니만, 거기서 하던 기초 연구들은 급격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IBM research는 Bell labs가 없어지는 것보다는 그래도 조금 더 늦게 이루어졌지만 역시 거기도 마찬가지 였다.

내가 박사를 졸업하고 취직한 첫 직장은 HP labs였다.
특히 내가 들어간 그룹은 DVD-RW를 처음 개발한 그룹이었다!
또 HP labs에는 여전히 ink jet printer를 처음 개발했던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교과서에서 이름을 보았던 사람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나름대로 그곳에서 참 재미있게 일했고,
거기서 한 일들이 그 분야에서는 아주 크게 주목을 받는 일이 되었다.

내가 HP labs를 떠날때 즈음에는
HP labs도 매우 급격히 쇠퇴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떠났고, 연구소의 크기를 급격하게 줄였다.
그곳에서 20년 넘게 일했던 나이 많은 연구원들이 layoff를 당하는 것들을 보았다.

실리콘 밸리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
그리고 그 에코 시스템에서 일하고 있는 회사들…
그 속에서 젊은 나이에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마치 이 시절이 영원할 것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
또 그 속에서 한 몫 잡으려고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정말 이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다.

그거 영원하지 않다. 그 속에 취해 있으면 안된다. 하나님을 두려워 해라.

이것이… 내 삶속에 경험한 버전의 전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