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 vs. Hero

내가 거의 매일 듣는 Become New Me Podcast에서 들은 말들.

  • Hero는 이야기의 중심에 있지만 Saint는 이야기의 가장자리에 남아 있다.
  • Hero는 용사이지만 Saint는 순교자이다.
  • Hero는 무엇을 하였는가 하는 것(What they did)으로 정의되지만, Saint는 예수님에의해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What was done to them, beginning with Jesus)으로 정의된다.
  • Hero는 용기가 중요한 가치이지만, Saint는 사랑이 중요한 가치이다.
  • Hero는 혼자서 행동하지만 Saint는 함께 한다.
  • Hero는 그들에게 합당한 찬사를 받지만, Saint는 그들에게 오는 찬사 여부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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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뉴스

Observations from the front (RMC) download

  • 미국에서도, 전 세계적으로도 확진자 수가 증가추세 – 우려됨. 유럽은 심각
  • CDC의 예상에 따르면,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추세가 바뀐다. – 확진자 증가할수도 있고, 줄어들수도 있다. 대부분의 시뮬레이션은 증가도, 감소도 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고 있음
  • 어린이 백신을 하지 않는 결정은 더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수 있다.
  • 백신의 효과가 시간이 지나면서 떨어진다. – 그렇지만 booster를 맞으면 된다.
  • Long COVID (COVID-19 후유증)이 심각한 수준. 여러 장기에서 여러 증상들이 나타난다. 전체 환자의 43%
  • 계속 백신 맞고, 거리두기 하고, 마스크 쓰고, 손 잘 씻고.. 등등 잘 해야함
  • Rob Califf가 FDA commissioner로 지명되어서, 최소한 당분간은 뉴스레터가 나오지 않을 예정.

진정성?

충분하지 못했지만 열심히 했다.
나름대로 진정성을 가지고 했다.
나는 진실되게 행동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걸까?

가령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이 기차시간이 빠듯해서 역을 향해서 뛰고 있다. 그 사람의 손에는 꼭 제 시간에 전달해주어야 하는 중요한 서류가 있다.

옆에서 어떤 사람이 이쪽으로 가면 조금 더 빠른 길이 있다면서 익숙하지 않은 쪽을 가리킨다.
그러나 뛰는 사람은 내가 모르는 길이라며 자기가 가는 돌아서 가는 길로 뛰어간다.

그 후에 어떤 사람이 그 옆에 있는 공용 자전거를 타면 빨리 갈 수 있다고 조언을 해준다.
그러나 뛰는 사람은 공용 자전거를 어떻게 빌리는지 모르겠다며 그냥 뛰겠다고 한다.
딱 3분동안만 시간을 보내서 앱을 다운받고 바로 자전거를 빌려타면 충분히 제 시간에 기차역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이렇게 놓친다.

그 후 다시 이 사람은 열심히 뛰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다.
역이 어떤 방향이라고 쓰여있는 표지판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것이다.

이 사람은 결국 그래서 기차를 놓쳤다.
그리고 꼭 전해주어야 하는 서류가 제때 전달되지 못해서,
중요한 계약이 이루어 지지 못했고, 그 사람의 회사는 큰 손해를 보았다.

거기서 그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정말 진정성있게 이 일을 감당해서 했다고.
열심히 뛰었다고. 그래서 땀도 많이 흘렸고, 다리도 아프다고…

정말 그럴까?

내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그저 이렇게 ‘면피용’ 논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정말 그러진 말아야하겠다고 결심도 해본다.

자신의 생각을 강화하기

가까운 사람이,
자신의 내면만을 자꾸 파고드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곁에서 보기에…
저 사람 저러면 안되는데…. 저 사람은 지금 내면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밖을 보아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결국 그 사람은 점점 내면만을 파고들더니 결국 여러가지 정신적인 문제와 신체적인 문제에 빠져 매우 삶이 망가지게 되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망가져가는 모습을 옆에서 본 나는 두가지를 결심했다.

  1. 내 입맛에 당기는 방향으로만 나를 발전시키지 말자. 그건 나를 파멸시킬수도 있다.
  2. 다시 또 누군가가 그런 잘못을 범하고 있다면 어떻게든 옆에서 말리자.

Vision

어제밤에는 JFK의 취임연설을 들어보았다.

나는 JFK가 어떤 integrity를 갖고 있던 사람이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JFK의 연설의 어떤 부분이 더 그 사람의 진심이 담긴 부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연설은 정말 듣는이들로 하여금 어떤 방향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을 명쾌하게 드러내어준다.
소위 ‘vision casting’을 제대로 한 것이다.

그리고 1960년대 초반의 미국이었으니 그랬겠지만,
‘종교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거의 설교같이 들리기도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 연설의 일부분은 설교로 사용해도 좋을만큼 clear한 하나님 나라 메시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복음을 이해한후 복음이 제시해주는 Vision은 나의 20대 이후의 삶 전체를 사로잡았다.
그 vision은 정지해있는 것은 아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더 발전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 나라가 제공해주는 vision이다.

지금의 20,30대들에게 기독교가 cast하고 있는 vision은 도대체 무엇일까.

아… 암담하고 답답하다.

Underdog

Underdog이 승리하는 스토리는 많은 경우 매우 감동적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underdog의 대부분은 결국은 loser가 된다.
underdog이었다가 승리를 맛보는 예는 사실 그렇게 흔하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내 경험과 관찰에 따르면,
승자가 되는 underdog은 어찌되었던 승리를 하는 어떤 이유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더 열심히 하는 경우도 있고, 더 smart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 새로운 접근을 선택하거나,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더 열심히 하거나, 더 smart하게 하거나, 새로운 접근을 하거나, 위험을 감수한다고 해서 모두가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을 하지 않는다면 underdog은 loser가 되어버린다.

기독교는 underdog이 되어가고 있다.
어쩌면 이미 underdog이 되었다.
그 속에서 어떤 기독교는 loser의 길을 선택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아주 소수의, 정말 아주 소수의 기독교는 그 무엇인가를 하는 몸부림을 치고 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기를.

인터넷 다운, 불쌍한 사람들

지난 월요일이었던가,
밤 10시쯤 Comcast 인터넷이 다 다운이 되었다.
그때 비가 좀 많이 왔는데 그것과 관련이 있었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교회 카톡방에서는 회사 미팅중에 갑자기 끊겼다는 둥… 그런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러다가 한 시간 정도 있다가 인터넷이 다시 되니,
인터넷 끊겨서 오늘 하루 쉬나 했더니 아쉽다고…
밤 11시에.

불쌍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겐 정말 이 사람들만이 하는 고민을 신앙으로 담아내는 일이 정말 필요하다.
그냥 ‘일반적인 신앙의 이야기’만을 해서는 이들이 경험하는 삶의 경험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 신앙의 이야기가 묻혀버리기 쉽다.

새로운 생각, 다른 생각, 틀린 생각

몇주전 교회 소그룹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10명 정도의 사람이 모여 있는 그룹이었는데,
나는 궁금해서 그중 동성애를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중 1명은 죄라고 생각한다고 했고,
2명은 잘 모르겠다고 했고,
나머지는 모두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특히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1명만 잘 모르겠다고 했고, 나머지는 모두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1. 이런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교회 분위기가 되어서 참 감사하고 좋았다.
  2. 이런 사람들은, 과연 동성애가 죄라고 하면서 반동성애 운동 열심히 하는 대부분의 (한인) 교회에는 절대로 다시 돌아가지는 못하겠구나… 싶었다.
  3. 그나마 그래도 우리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쨌든 신앙이 보수적인 사람들일텐데… 이 사람들이 이렇다면…
    아, 반동성애가 기독교적 가치라고 이야기하는 교회는 적극적으로 젊은 사람들을 교회에서 몰아내고 있겠구나… 싶었다.
  4. 새로운 생각, 다른 생각, 틀린 생각…. 이것들을 좀 진지하게 분별해내는 수준높은 고민을 하는 것을 더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COVID-19 뉴스

Observation from the Front (RMC) download

  • 겨울 동안 계속 바이러스는 퍼지고 사람들이 감염되겠지만, 백신과 적절한 치료로 파괴적인 결과는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듯
  • 미국도, 전세계적으로도 감염자 숫자는 증가도 감소도 없이 유지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증가 추세
  • 한국은 전세계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테스트, 접촉 추적, 마스크, 거리두기, 그리고 이제는 높은 백신 접종률까지. 미국의 인구 10만명당 사망자 수는 211명, 한국은 5.8명.
  • 어린이 백신은 안전하다는 data가 많다. –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을 신뢰하도록 하는 것.
  • 심근염(mycaditis)- risk는 낮고, 백신의 효과는 높다
  • Pfizer의 항바이러스약 – 입원과 사망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듯
  • 독감시즌이 왔다. 독감 예방주사도 맞아라!
  • 계속해서 마스크 쓰고, 거리두기하고, 백신맞고… 해야한다. 우리에게는 바이러스와 싸울 무기가 이미 있다

한밤중에 찾아온 친구 비유 (누가복음 11장)

누가복음 11장의 한밤중에 찾아온 친구 비유는 무슨 뜻일까?
한밤중에 친구에게 찾아가, 급하게 빵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빵을 요청하는 이야기.
그 친구는 너무 늦어서 못주겠다고 했는데, 그 친구에게 계속 졸라서 받아내었다고.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친구라는 이유로는 청을 들어주지 않을지라도, 그가 졸라대는 것 때문에는 줄것이다.”
그러면서 나오는 말은,
“구하라, 찾아라, 두드리라…”

이 예수님의 가르침은 소위 ‘강청기도’를 주장하는 본문으로 많이 쓰인다. 하나님에게 조르라는 거다. 그러면 주신다는 것.

그런 것일수도 있겠지만…
내가 혼자서 생각해본 것은 이렇다.

누가복음은 8장 후반부부터 19장 중반부까지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1장에 해당하는 이 많은 분량의 기간을 마태복음에서는 딱 1장에서 다루고 있다.
누가복음은 8장~19장의 내용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내가 읽기에는…
8~19장에 나타나있는 내용은, 정말 임박한 하나님 나라, 이제 정말 아주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일종의 urgency가 많이 드러나 있다.
예수님께서도 여기서부터는 꽤 돌직구를 많이 날리시는 편이고,
뭔가 그 이전에 감질나게 말씀하시던 것으로부터 팍팍~ 진도를 빼시는 분위기로 바뀐다.

그래서 나는 8~19장을 ‘종말론적’으로 읽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종말론적이라는건, 예수님 재림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이 아니라,
이제 막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의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의미에서 나는 누가복음 11장 앞부분에 나오는 주기도문도 그렇게 종말론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지 않나 싶고…
당연히 그 바로 다음에 나오는 이 밤에 빵을 얻으러 간 친구 비유도 그렇게 종말론 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그러니까,
이제는 너희가 기대하던 하나님 나라가 드디어 왔다는 거다.

그러니 이제는 너희가 바라는 것을 bold하고 shameless하게 이제는 요청할때라는 거다.
그리고 이제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그 하나님 나라가 온다는 거다.
그러니 이제는 지치지 말고, 쉬지말고 구하며 기도하라는 거지.

내가 아주 많은 주석을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해석을 하는 건 딴데서 별로 보지 못했다.
내가 너무 혼자 엉뚱한 생각을 하는건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