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TA-2009 주제문

예수의 평화, 세상을 향한 용기
Shalom of Jesus, Courage against the World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길을 걷는 일은 두려운 일이다. 아무리 그 길이 가치 있고 소중한 길이라 할지라도 그 결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그 길을 가는 일은 우리를 쉽게 절망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그 길의 끝에 밝은 결과가 있음을 확실히 알고
있다면, 더욱이 그 밝은 미래를 현재의 삶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면, 지금 가는 그 길이 아무리 어둡고 험해도 우리는 그 두려움과
싸울 수 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백성으로 사는 일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고 있는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기는커녕 바로 그 로마의 손에 잡혀 매 맞고 십자가를 지고 죽는 일,
세상의 가치로 볼 때 당연히 비난받아야 할 세리와 죄인들을 찾아가서 친구가 되는 일, 소외받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베푸는 일, 한 사람의 가치를 효율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일, 원수에게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보다 그 원수를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일 등은 예수께서 이 땅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의 모델이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우리가 선뜻 들어서기에 두렵고
좁은 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두렵고 좁은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셨고, 우리에게도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이 가신 그 길에 담대하게 들어서라고 초청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 끝에 밝은 미래가
있음을 알고 있기에 그 어둡고 험한 길을 가며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 길이 승리의 길이라는
것, 예수께서 세상을 이기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 명백한 증거는 바로 예수의 부활이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바로 그 육체를 입고 다시 이 땅에서 부활하셨다. 생명이 사망을 이긴
것이다. 어떤 사람들의 말처럼, 예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만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 계신 것이 아니라, 그는 실제로 새로운 몸을
입고 부활하시고 우리가 사는 이 땅 위에 사셨다. 동시에, 예수를 왕으로 모신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몸을 입고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가게 될 것을 약속하셨다. 예수께서 부활할 모든 육체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이다.

그 길의 끝에 있는
밝은 결과, 그때에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이 바로 하나님의 ‘평화(Shalom)’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기대하시던, 하나님, 인간, 모든 만물 간에 창조질서가 완성된 모습이다. ‘평화’(Shalom)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성될 미래에 있지만, 동시에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새로운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주어진다.

만일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그 완성된 하나님의 ‘평화’(Shalom)를 경험할 수 있다면, 이 세상 속에서 어그러진 질서와 그릇된
세계관에 대항하여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절대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혹시 있을 수 있는 현재의 고통과 어려움이 끝이
아님을 알기에, 또 우리가 결국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 때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태초로부터 의도하셨던 완성된
‘평화’(Shalom)에 거할 것을 믿기에,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거스르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또한, 용기를
가지고 세상에 당당하게 맞서는 삶을 사는 가운데, 완성된 ‘평화’(Shalom)를 경험해 갈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어그러진 질서에 거스르는, 하늘의 가치를 가지고 이 땅을 살아내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에게 밀어닥치는 그릇된 가치가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그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좌절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안전하다고, 또 많은 물질을 소유하면 평안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그릇된 사상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또한, 소외된 자들을 무시하며, 효율을 위해 덜 중요해 보이는 사람들을 희생시켜야 한다고 속삭이는 유혹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당당하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세상을 살아낼 수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긍정하고
적극적 사고방식을 가지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승리가 주어졌기에, 그를 통한 ‘평화’(Shalom)가
현실화되었기에 할 수 있다.

KOSTA-2009 운동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을 이기신 예수를 알기 원한다. 세상이
비웃는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 죽으셨지만, 다시 부활하셔서 이 땅을 사신, 또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원한다. 결국에는
이 땅에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평화’(Shalom)를 이루실 것이며, 지금도 성령님을 통해 우리 안에서 그 완성된 삶을 살게
하시는 예수를 경험하기 원한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미 승리하신 예수의 말씀을 따라 살 수 있는 용기를 다시 추스르고자
한다.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는 더 큰 불안으로, 가진 사람에게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욕망과 잃어버릴 것에 대한 또 다른
불안감으로 사람들을 노예 삼는 어그러진 풍조를 향해 진정하고도 유일한 대안을 우리가 삶으로 보여주기 원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꿈을 잃어버린 세대를 향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Shalom)안에서 우리는 다시 꿈과 이상과 소망을 가질 수 있음을
선포하기 원한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복음 16:33, 표준새번역)

3 thoughts on “KOSTA-2009 주제문

  1. < << 선한 힘에 이끌려 >>>

    나와 함께하며 인도해 준 모든 선한 힘은
    온갖 두려움을 넘어 위안과 힘을 주었습니다.
    내 곁의 당신을 생각하며 이날들을 보냅니다.
    그리고 새해를 당신과 함께 맞으렵니다.

    과거는 아직도 우리의 영혼을 슬프게 합니다.
    우리 슬픔의 나날은 계속될 것입니다.
    아버지, 시련을 허락하신 영혼들에게
    당신이 약속하신 위로와 자유를 허락하소서.

    슬픔의 잔에서 고통마저 비우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당신의 뜻이기에 머뭇거리지 않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 모든 것은 당신이 사랑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원하신다면 우리에게 한번 더
    삶의 기쁨과 따뜻한 햇살을 주소서.
    슬픔에서 배웠으니 그 기쁨은 더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당신에게 바쳐집니다.

    오늘은 촛불들로 기쁨을 비추게 하소서.
    보소서.
    우리의 어둠을 비추는 당신의 빛이 아닙니까?
    당신은 가장 어두운 밤도 밝히실 수 있습니다.

    이제 침묵은 더 깊어지고
    당신 자녀들의 노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보이지 않는 세계는 어둠에 싸여
    당신을 찬양하며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선한 힘이 우리를 경이롭게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 힘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일에 직면할
    굳센 용기를 갖습니다.
    하나님은 동틀 무렵부터 저녁에 잠들 때까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매일 새벽마다 사랑의 약속을 주십니다.

    이 글은 제2차 세계대전때 심하게 타락한 나치 독일에서 히틀러에 저항하였다가 이제 감옥에 선 사형수 본회퍼가 게슈타포 지하 감방에 갇히기 직전 어머니와 약혼녀 마리아를 위해 쓴 시다. 이후로 본회퍼에 대한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디트리히 본회퍼 : 나를 따르라 “에서 발췌.

  2. Pingback: 목수의 졸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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