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쇠가 되기

나는, 대단히 부자집에서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돈이 쪼들리는 환경에서 자라지도 않았다.
때문에 대학, 대학원에 다니는동안 돈이 없어서 크게 고생한 기억이 없다.
따라서 절약을 한다는 것은 주어진 용돈을 아껴서 사고 싶었던 CD player를 사는 수준이었다.

대학교를 다닐때, 한달에 13만원정도를 학교에서 받았는데 (10만원 장학금 + 3만원 학교 내 아르바이트) 이 정도면 그 당시 꽤 넉넉한 것이었다.(그게 벌써 20년전 일이니…)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때도 학교에서 매달 돈이 나왔고, 그 후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때는 더 넉넉하게 되었다.

미국에 와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면서 나는 아주 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처음 미국에 와서 얼마 동안은 지도교수를 잡지 못해서 한국에서 받는 국비유학장학금(정말 얼마 안준다!)에 의지했어야 했었고, 또 지도교수를 바꾸는 중간 중간등에는 늘 돈이 모자랐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경제적인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물론 때로 (솔직히 말하면 너무 자주) 양가에서 경제적인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학교에서 받는 생활비로 생활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참 많이 아껴야 했다.

옷가게중에서, 옷에 약간 하자가 있는 것들이나 반품이 된 것만을 모아서 파는 곳이 있다. 이런 가게에서는 옷을 아주 황당하게 판다. 그중 어떤 상품은 다소 황당할만큼 많이 하자가 있는 것도 있지만 잘 고르면 하자가 그리 크지 않은 (가령 주머니의 깊이가 너무 얕다던가, 단추 사이의 거리가 조금 균일하지 않다던가)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처음 이런 가게에서 옷을 사러 갔더니, 가게는 지저분하고, 저소득층 사람들이 가득했다. (어떤 특정 인종, 어떤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약간 무섭기도 했고 서럽기도 했다.
그렇게 5-6불짜리 청바지를 하나 사가지고 오면서 3-4불짜리 카푸치노를 하나 사서 마시기도 했다. (어휴.. 정말… 얼마나 개념이 없는 짓인지…)

그런데,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나는 절약을 하려고 노력도 했고, 실제로 절약을 하기도 했지만 절약이 몸에 배지도 않았고 정말 절약을 어떻게 하는지 알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조금 아끼다가도… 전혀 내게 어울리지 않는 사치품이나 기호품 등을 사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 당시로서는 내게 사치였던 한국 음식점에 가서 먹고 싶은 것을 자주 먹는 다던가, 값비싼 오디오를 산다던가, 매일 값비싼 음료를 사먹는 다던가 하는 것과 같은.

지금은 그럼 절약을 더 잘하고 있을까.
적어도 10년전의 나보다는 그런 것 같다. 절약을 한답시고 폼만잡거나, 한쪽에서 절약하면서 다른 쪽에서 펑펑쓰는 것 같은 잘못은 이제는 그리 자주 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정말 검소하게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직도 나는 참 멀었다.
꽤 많은 월급을 받으며 살고 있지만 늘 돈이 모자르다.

현재는, 내가 먹는 것,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사는 것, 생필품을 사는 것, 옷을 사는 것 등등을 모두 포함해서 하루 평균 10-12불 수준으로 살고 있는데 (하루 평균 식비 5-7불, 내가 밥을 사야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그리 불편하지 않다. 하지만 너무 자주 절제하지 못하고 쓰지 말아야 할 돈을 쓰기도 한다.

검소한 삶, 절약하는 삶은 훈련이자 훈련이 필요한 습관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렇게 검소하게 살면서도 인색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도 역시 훈련이 필요한 습관인 것 같다. 그건 또 다른 글에서 한번 얘기해봐야 할 것 같다)
아직도 너무 자주 씀씀이를 절제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참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하나님과 가족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절약을 해야한다는 당위만 있고 요란하기는 했지만 실제 검소한 삶을 살지도 못했던 10여년 전의 나를 생각하면서 그래도 시간을 통해 이나마 성장시켜주신 하나님께 참 많이 감사한다.

그리고,
좀 더 훈련과 하나님과의 동행을 통해서…
검소하면서도 인색하지 않은 삶의 자세가 몸에 잘 배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삶을 통해 나를 좀 더 성장시켜 주실것을 기대한다.

Menlo Park vs. East Palo Alto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Menlo Park은 부촌이다.
그리고 East Palo Alto라는 곳은 이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최근 online에서 어떤 설교를 듣고 나서,
http://www.trulia.com site에 가서 이 두 도시에 foreclosure로 집이 나온 것을 지도에 표시해 보았다. (foreclosure는, 매달 내야하는 모기지를 내지 못해 집이 압류당한 것이다.)

다음은 Menlo Park (부자마을)
지도에 나타난 foreclosure는 딱 두집이다.

다음은 East Palo Alto 이다. (가난한 마을)
가난한 마을에서 집을 빼앗긴 사람은… 엄청나다.

이런 경제 위기가 닥치면 더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있는데…

Called vs. Driven

Gordon McGonald 목사님의 Ordering Your Private World 라는 책을 보면
(한국 번역판 이름은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
Called people과 driven people의 대비가 나온다.

책을 읽은지 벌써 거의 20년쯤 되었으므로…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적극성과 능동성, 그리고 잘 정리된 삶에 대비되어,
쫓겨서 사는 삶은 피동적이고 소극적이고 잘 정돈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것과 관련된 또 한가지의 dimension을 최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떤 건강한 가치를 위해 헌신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일을 할때,
called people(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창의적으로, 적극적으로 한다. 희생이 이들에게는 억지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일 수 있다.

그러나,
Driven people (쫓겨다니는 사람)은, 피동적으로, 소극적으로, 그리고 자신을 그렇게 이끄는 주체 (사람, 조직, 가치)등에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임하게 된다. 희생이 이들에게는 불평과 불만과 갈등의 이유가 된다.

함께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은 주의의 사람들을 called people로 만들도록 섬기면서, 그들이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희생하도록 돕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주의의 사람들에게 논리와 경험등을 앞세워 충고와 명령과 당위를 남발하면서 called people로 있던 사람들 조차도 driven people로 만들어 버린다.

나는 주변의 사람들을 (특히 내가 이끌어야 하는 사람들, 내 가족들, 내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을 called people로 만들고 있을까, 혹은 driven people로 만들고 있을까.

대답에 자신이 없다.

내 동생이 최근 정착한 교회

내 동생이 최근 어떤 교회에 정착(?)을 했다.
한국에 들어간지 몇달이 되어서, 어느 교회에 다니다가 최근에는 새신자반을 다 마치고 ‘정식 member’가 된 모양이다. 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내 동생

나도 이 교회 홈페이지에 가서 설교를 듣곤 했는데,
이 교회를 위해 기도할 또 다른 이유가 생긴 셈이다.

성급한 자아비판의 오류

나는 자아비판을 즐긴다.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매우 성숙한, 자기 성찰을 잘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사실 내가 자아비판을 즐기는데에는 몇가지 문제가 있음을 본다.

1. 자기 방어이다.
내가 내 스스로를 비판함으로써 다른이가 나를 비판할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다소 치사한 자기방어라고 할 수 있다.

2. 게으름이다.
겸손, 혹은 자기성찰 이라는 건강한 가치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나와 내 주위의 상황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내 스스로 건강한 가치를 지킨다는 자긍심도 지키게 되고 스스로의 만족감도 느끼면서 부지런히 나와 내 자신을 살피는 귀찮음도 피할 수 있다.

3.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무지이다.
최근 어떤 형과의 대화를 하면서, 내가 그 형에게 내 사역의 열매가 얼마나 거짓이 많은지, 나의 manipulative한 성향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조작하여 만들어낸 사역의 열매가 많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러자 그 형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네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그렇게 맺으셨는데… 과연 네 능력으로 심지어는 아주 얄팍한 수준의 사역의 열매라도 맺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이 지나쳐 하나님의 일하심을 덮어버리는 우를 범한 것이다.

지금 이 글도 그릇된 자아비판은 아닐지…

가을이 외롭지 않다.

대학 다닐때나,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때 였던 것 같다.
나는 유난히 가을을 많이 탄다고 느꼈었다.
가을만 되면 외롭고, 괜히 멜랑꼴리 해지고 그랬는데…

언젠가 부터 가을이 외롭지 않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결혼을 하고나서 외로움이 채워져서 일까?
바쁜 생활 속에 외로뭄을 느낄 여력이 없어서일까?

Liturgy

지난 토요일에는,
수욱 자매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참 예쁜 결혼식이었다.
신랑과 신부가 서로 많이 사랑하는 모습도 예뻤고.

그런데,
그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주례사도 듣고 (목사님의 주례사도 참 좋았다.)
기도도 하고… 우… 아… 탄성도 지르고…
맛있는 식사도 하고 하면서…
함께 참석한 사람들과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나의 결혼 (결혼식이 아님)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혼식에 참석한 이유 때문에,
나도 결혼에 대한 생각을 다시 많이 하게 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런 것이 liturgy(의식)의 의미이자 힘이 아닐까 싶다.
내가 20대에는… 강력한 반형식, 반의식(anti-liturgical) 주의자였다.
그런데… 점점 의식의 소중함이랄까 그런게 깨달아 진다.

결혼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해서 결혼식에 많이 참석하고,
탄생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해서 신생아를 위해 많이 기도하고,
죽음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해서 장례식에 많이 참여하고,
그리고 복음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해 예배에 많이 참석하고.

민우는 바쁘다

지난주엔가, 민우와 이야기를 하면서 나눈 내용.

민우가, 자신이 몹시 바쁘다고 이야기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이것 저것 자신의 바쁜 일정을 내게 이야기하면서,
아빠는 이렇게 바쁜 일정을 이해조차 못할꺼라고…
자신은 정말 몹시 바쁘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면서,
매일 자기가 이메일이 10개씩이나 온다고,
이메일 쓰는 것도 큰 일이라고 엄살을 떨었다.

어린 민우에게,
물론 그 수준에서 많이 바쁘고 벅찬 일정이나…
너무 많이 해야할 일이 많은 그런 상황이 있을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크면,
자신이 그렇게 바쁘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 얼마나 얕은 호들갑이었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될텐데…

내가 스스로 바쁘다고 여기면서,
민우와의 대화를 곱씹어 본다.

Red Sox가 졌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든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실.
나는 Red Sox Fan 이다.

어제,
Red Sox가 Tampa Bay Rays에 졌다.
American league championship 경기였는데, Tampa Bay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겼다.

그런데…
나는 이번에 Red Sox가 진것에는 그리 많이 섭섭하지 않다.

Red Sox.
이전에는, 86년동안이나 World series를 우승하지 못하던…
그야말로 underdog 이었던 team이었으나
이제는 전체 major league 팀중 두번째로 돈을 많이 쓰는 부자 팀이 되었다.

반면
Tampa Bay는, 작년까지 거의 매년 꼴찌를 하던 팀이었다.
major league 전체에서 가장 돈을 적게쓰는 팀 가운데 하나인데…
이 팀이, major league에서 가장 많이 돈을 쓰는 팀 두개 (Yankees와 Red Sox)를 모두 이겼다.

늘 꼴찌만 하던 이 Tampa Bay가 올해는 우승을 좀 하면 좋겠다.
돈을 많이 들여서 비싼 선수들을 사와서 경기를 이기는 방식이 아니라,
적은 돈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선수를 뽑고, 팀이 함께 뭉쳐서 경기를 이기는 방식을 더 많이 볼수 있었으면… 싶다.

MLB에도, NFL 처럼 salary cap이 있으면 좋겠다.

Tampa Bay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