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한 사람과 함께 지내기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나보다 열등한 사람과 함께 지내야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 사람을 위해서 slow-down 하면서 그 사람을 섬기는 것이 합당할까.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해봐라… 하면서 열심히 뛰어가는 것이 좋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성취한 유익들을 그 사람과 나누겠다는 마음과 목표로 살아가야 할까.

그러나 그것도 그 사람이 스스로가 열등하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심한 열등감에 이미 빠져 있거나,
헛된 망상을 가지고 있거나,
막연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면..?

경쟁구조 속에서 살아남기에 적절하지 않은 사람이,
경쟁구조 속에서 허덕이고 있을때…
그런 사람들과 더불어 가고자 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 쉽지 않지만,
더불어 가고자 해도 어떻게 해야할지 하는 것을 찾는 일은 더 어려운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 엄청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면 세상의 조류에 휩쓸려 버릴 수 밖에 없다는 두려움이 있다.

극심한 경쟁구조는,
가진 사람도 가지지 못한 사람도 모두 망가뜨리는 듯 하다.
경쟁구조 속에서도 건강한 영성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

@ 물론, 내가 열등한 사람일 경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고민은… 이것과는 다른… 또 다른 커다란 묵상의 문제이다. 그러나 두가지 고민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어린 소녀였던 어머니

67년전 오늘,
하나님께서는 예쁜 여자아이를 이땅에 태어나게 하셨다.

늘 내게는,
어머니였던…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어머니일… 그분이,
작고 귀여운 여자아이로 태어났을 때를 상상해 본다.

그 작은 여자아이의 안에,
지난 40년 동안 내게 부어주셨던 그 사랑이 다 들어 있을 수 있었을까.

그 여자아이는,
어릴때 자신이 그렇게 일생을 헌신해서 일방적인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될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 작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이땅에 주셔서 이땅의 한 구석을 비추게 하시고,
나 같은 사람에게도 그 사랑을 베풀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감사한다.

무대위의 주인공

돌아오는 월요일은, 내 어머니의 생신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내 머리속에 떠 오르는 이미지는,
나를, 그리고 내 동생들을 무대위의 주인공으로 만드시고 그 주인공들을 위해 여러가지 뒤치닥 거리를 하는 사람이다.

함께 무대를 공유하는 조연도 아니고,
그저 그 주인공의 의상을 챙기고 주인공이 공연을 하는 동안 객석에 앉아 그 배우의 공연을 눈물과 웃음과 긴장으로 지켜보는 사람.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어머니의 그러한 헌신과 사랑이 감사했고,
내가 그 사랑을 받은 만큼 무대위에서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라 믿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각으로 그 상황을 조금 바꾸어서 보니…
내 어머니도, 그 인생의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계신 것이 보인다.

아주 초라하고 형편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거창하게 화려하고 주목받는 것도 아닌…
그러나 어머니의 삶의 context에서 최상의 것을 드리면서 살아가는 무대 위의 주인공.

나의 사랑, 내 어머니는…
어머니 인생의 무대의 주인공으로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아 오셨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performance를 보시면서 참 많이 기뻐하시고 즐기시고 계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정말 훌륭한 무대위의 주인공이시다.
내 인생의 조연이 아닌… 어머니 인생의 주인공.

하나님, 이 사람들입니까


작년 봄,
정말 어찌 어찌 하다가…
Stanford에서 모이고 있는 이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들과 사랑에 빠졌다!

지난 주말에 수양회를 마치고 찍은 사진.
황지성 간사님께서 감사하게도 강사로 와서 수고해 주셨다.

내가 정말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존경하는 황 간사님을 모시고,
내가 정말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사랑하는 우리 성경공부 member들과 함께…

요즈음…
이들을 향한 기도는 이것이다.
“하나님 혹시 이 사람들 입니까. 하나님께서 들어서 이 세대에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도구로 사용하실 사람들이”

신자유주의가 끝나가는 걸까?

이제…
드디어 지난 20여년간 엄청난 힘을 발휘해 왔던, 그 신자유주의가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일까?

지난 10여년간,
내 신앙적 고민의 80%는,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신자유주의가 이제 막을 내리고 있는 걸까?

사역의 실패를 통해 얻어지는 인간이해

나름대로 여러가지 형태로 사람들을 섬기다보면…
실패와 좌절, 실망을 경험할때도 있다.

어떤 사람의 회심, 결단, 헌신의 진정성을 믿었는데, 그것이 바른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러나…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에 대한 이해들을 더 깊이 하게 되는 듯 하다.

인간이란… 그리 쉽게 신뢰할만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것.
인간에게 드리워진 죄의 그림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 보다 훨씬 더 무겁다는 것.
그런 인간들에게도 어떤 소망이나 희망이 제공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은혜라는 것.
결국 언젠가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회복되는 그곳에서 이루어질 것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는 것…

자기 말에 취한다는 것

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하는 말에 취하는 잘못을 범하곤 하는 것 같다.

아니, 꼭 말을 잘하는 사람일 필요도 없다.
자기가 말을 잘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같은 우를 범한다.

내가 얼마나 객관적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일까 하는 것에 대해…
쉽게 판단하기 두려운 마음이 늘 있지만…

아마도 말을 잘하는 사람이거나, 내가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중 하나인 듯 하다.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열정적으로 나누고 나서,
그것이 Christian setting 에서이건, academic / professional setting 에서 이건…
나는 늘 내가 한 말에 취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한 말이 마치 모두 내것인양 착각을 하기도 하고…
뭔가 확신이 없다가도 내가 그렇게 말을 하고나면 더 큰 확신과 신념을 가지게 되는 듯 하다.

나는 그래서 일반적으로 presentation을 매우 즐긴다.
그것이 qualifying 시험이건, 회사에서의 발표이건, 설교이건, 기독교 관련 강의이건, 학회의 발표이건 간에…

아주 심한 narcissism 이다.
정말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자꾸만 미끄러지는 나를 본다.

===
지난… 두주 반 정도동안…
강의/설교/메세지…에 해당하는 걸… 5개를 했어야 했다. (허걱… 무슨 설교 vending machine도 아니고…) 그 후에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터널을 지나며

내 아내가,
UCSF에서 제공하는 specialty program에 들어가기 위해 interview를 하러 왔다가… 오늘 새벽에 다시 보스턴으로 돌아갔다.

UCSF의 specialty program 외에도,
이 동네의 몇군데에 apply를 해 놓고 있는데…

이제 기나긴 터널의 끝이 보이고 있다.

터널을 지나고,
터널 밖에서 살 준비를 해야 할 때인 듯 하다.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9월초 DC 근교에서 열렸던 코스타 간사 수양회 단체사진
이때만해도 먼저 떠난 사람들이 꽤 있어서 빠진 사람들이 좀 있는데…

정말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어떤 의미에서 정말 영적인 엘리트들인데…
엘리티시즘이라곤 이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겸손한 섬김, 순수한 헌신, 그리스도를 닮은 사랑, 하나님에 대한 경외…

이들을 만나게 된건,
이땅에서 내가 누리는… 큰 은혜가운데 하나 이다.

이들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고 축복이다.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그리고…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두분의 선배님들과의 대화.
내가 늘 이런 저런 얘기를 강하게 주장하거나 해도 잘 받아주시고, 조언해주시고…
위의 사진도 아마 내가 뭔가를 두분에게 설득하면서 주장하고 있는 중에 찍힌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금요일 밤에 비행기 타서.. 토요일 아침에 DC 도착 (비행기 안에서 4시간 반정도 자고)
토요일 밤에 4시간 정도 자고,
주일 밤에 다시 4시간 정도 자고…

이렇게 하고도,
함께 섬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생각을 나누고 하는 데에는 지치지 않았다.

What a blessing!

DNC vs. RNC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나는 물론 투표권이 없지만…)

민주당과 공화당의 전당대회 연설들을 시간이 날때마다 들어보고 있다.

양당의 정,부통령 후보들의 연설들을 들으며 다시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은,
나는 도무지 공화당의 정책들에 환호를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중산층 백인 미국인들이 저런 정책을 가진 정당을 지지할 수 있을까… 싶다.

뭐… 하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한국의 서민들도 있는데… 뭐.
그것에 비하면 미국의 공화당은 양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