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생신

나는 중학교를 마치고 집에서 나왔기 때문에,
말하자면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자란 기간이 다소 짧은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을 거치면서 그렇다고 어머니와의 관계가 소원했다거나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엄마가 해주시는 밥’ 먹으면서 학교에 다녔던 것은 15살때가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기간 보다, 어머니의 품으로부터 떠나와 살았던 기간이 거의 두배에 가깝게 되어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 생신을 가까이에서 보내지 못하는 애틋함과 안타까움과 죄송함이 커져만간다.
혹시나… 회사일로 출장가는 일정이, 어머니 생신에 맞추어서 잡히진 않을까… 그런 기대를 좀 했었으나, 그것도 무산되었고…

내가 처음, 어머니의 나이가 35살이라는 것을 열심히 외려고 했던 때가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35년이 더 지나도록…
어머니는 그저 늘 내게 한결같은 분이셨다.

민우는 늘, 나와 이야기하면서 장난끼어린 얼굴로 이야기한다.
I’m stuck with you forever, because I get to be your daughter in this world, but we are going to spend eternity together, too!

나는,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셨을 뿐 아니라,
내가 그 영원함을 마음에 품을 수 있도록 해주신 우리 어머니가… 참 좋다. ^^

명절과 어머니

우리 아버지쪽 가계는 매우 전통적이다.
소위 ‘낙대’를 한적이 없다는 것을 큰 자랑거리로 여기고…
(낙대를 한적이 없다는 말은, 선조로부터 서자가 한번도 끼지 않았다는 뜻인데, 그런 가계가 사실 그리 흔하지 않다고 한다.)
전통적 가치를 지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인 계열의 제사상 차리기와 서인 계열의 제사상 차리기의 차이를 논하는 것을 듣기도 했고…
내 어릴적 자장가는 소학이었다는 전설(?)을 전해 듣는다.

그런 집안에 우리 어머니께서 시집오셨다. 혈혈단신 그리스도인으로.

소위 4대봉사 (4대조까지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함)를 하는 집안에서…
그리스도인 며느리로서 제사때마다 명절때마다 제사상 차례상을 차리는 것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물론 육체적으로도 힘드셨겠지만, 정신적으로 당하셨을 어려움은 내가 다 상상하기 어렵다.

게다가 우리 아버지께서 봉사손(제사를 지내야하는 맏아들, 그 맏아들인 나도 사실은 봉사손이다.-.-;)이시므로 어머니의 부담은 더 심하셨다. 그렇게 40년 넘게 결혼생활을 해오시면서, 집안 어른들로부터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모멸과 수모를 당하시기도 하셨고…

아직도 우리 집에는 명절이면 수십명의 가족(extended family)가 다녀간다.
특히 우리 아버지께서 꽤 넓은 범위의 extended family 중 최고 어른이시기 때문에…

내 어머니도 이제 “칠순 노인” 이신데…
그 많은 손님을 치루어 내시며, 그리고 그 차례상, 제사상을 아직도 차리시면서…
그렇게 고생을 하신다. 아들 둘이 모두 해외에 있기 때문에…  여전히 그 모든 부담이 다 어머니의 몫이다.

한번 명절이 지나고 나면, 손발이 모두 퉁퉁 부어 며칠씩 고생을 하시고,
그야말로 거의 일주일 정도는 몸져 누우시는 일을 매년 반복하신다.

그렇게 하시면서 어머니의 일관된 말씀은 이것이다.
“이 제사를 내 대(代)에서 끝내겠다. 너희 대까지 넘기지 않겠다”

명절때면 그렇게 “영적싸움”을 하고 계시는 우리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저 그 어머니의 희생을 멀리서 누리고만 있는 내 모습이 매년 한없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이제 그 어머니의 그 희생과 눈물과 기도로, 삼남매는 모두 그 어머니의 신앙을 물려받아 헌신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내가 만일….
perseverance 라는 단어의 뜻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통해서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일….
감히 내가 믿는 신앙의 그 어떤 열매를 내 삶에서 맺었다면…
내 어머니께서 후에 천국에서 받으실 칭찬의 몫이 적어도 그중 절반은 된다고 할 것이다.

내가 만일….
내 다음 세대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신앙의 생명을 갖게 되었다면…
이번 설에도 하나님 사랑과 자녀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그 부담을 온 몸으로 짊어지고 계신 어머니의 모범 때문일 것이다.

올해 설에도…
힘드실 어머니를 생각하며….
40이 훌쩍 넘어서도 여전히 철없는 큰아들은…
마음이 무너진다.

어린 소녀였던 어머니

67년전 오늘,
하나님께서는 예쁜 여자아이를 이땅에 태어나게 하셨다.

늘 내게는,
어머니였던…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어머니일… 그분이,
작고 귀여운 여자아이로 태어났을 때를 상상해 본다.

그 작은 여자아이의 안에,
지난 40년 동안 내게 부어주셨던 그 사랑이 다 들어 있을 수 있었을까.

그 여자아이는,
어릴때 자신이 그렇게 일생을 헌신해서 일방적인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될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 작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이땅에 주셔서 이땅의 한 구석을 비추게 하시고,
나 같은 사람에게도 그 사랑을 베풀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감사한다.

무대위의 주인공

돌아오는 월요일은, 내 어머니의 생신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내 머리속에 떠 오르는 이미지는,
나를, 그리고 내 동생들을 무대위의 주인공으로 만드시고 그 주인공들을 위해 여러가지 뒤치닥 거리를 하는 사람이다.

함께 무대를 공유하는 조연도 아니고,
그저 그 주인공의 의상을 챙기고 주인공이 공연을 하는 동안 객석에 앉아 그 배우의 공연을 눈물과 웃음과 긴장으로 지켜보는 사람.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어머니의 그러한 헌신과 사랑이 감사했고,
내가 그 사랑을 받은 만큼 무대위에서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라 믿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각으로 그 상황을 조금 바꾸어서 보니…
내 어머니도, 그 인생의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계신 것이 보인다.

아주 초라하고 형편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거창하게 화려하고 주목받는 것도 아닌…
그러나 어머니의 삶의 context에서 최상의 것을 드리면서 살아가는 무대 위의 주인공.

나의 사랑, 내 어머니는…
어머니 인생의 무대의 주인공으로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아 오셨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performance를 보시면서 참 많이 기뻐하시고 즐기시고 계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정말 훌륭한 무대위의 주인공이시다.
내 인생의 조연이 아닌… 어머니 인생의 주인공.

What Mothers Do

Tony Campolo의 부인이 전업주부로서 아이 둘을 기르고 있을때, 어떤 사람이 ‘당신은 뭐하는 사람입니까?’ 라고 물으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I am socializing two Homo sapiens into the dominant values of the
Judeo-Christian tradition in order that they might be instruments for
the transformation of the social order into the kind of
eschatological utopia that God willed
from the beginning of creation.”

“나는 두명의 호모 사피엔스를 유대-기독교적 전통의 핵심 가치로 사회화 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이 사회를, 하나님께서 창조의 시작으로부터 의지를 가지고 계셨던 종말론적 유토피아로 변화시는, 사회 질서 개혁의 도구가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곤, 그 Tony Campolo의 아내는 바로 이렇게 묻곤 했다.
“그런데, 당신은 뭐 하는 분이신가요?”

— 얼마나 멋진 대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