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설교 준비를 하면서 참 많이 힘들었다.
정말 아주 last minute까지 message의 윤곽이 잘 잡히지 않아서 아주 애를 많이 먹었다.
왜 그랬을까?
어떤 의미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것은, 수련회 초청에 응하면서 거의 결심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솔직히 이런 ‘일반적’ 수련회 설교의 레파토리는, 대부분 비슷하다.
복음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다루고, 약간 생각할 만한 것을 좀 이야기하고, 나중에는 헌신에 대한 이야기 다루고…
이번에 했던 것도, 뭐 내가 아주 여러차례, 여러 세팅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짜집기해서 만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렇게도 힘들었을까?
그것은, 그 내용이 내 ‘마음’에 잘 담겨지질 않았다.
이게 뭐 information을 전달하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이 정말 내 온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정직하게 YES 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설교 아웃라인을 짰다가 바꾸고, 짰다가 또 바꾸고…
그짓을 여러번 반복했다.
결국… 아주 막판에 이르러서야,
겨우 아… 이 정도면 이 message가 내 ‘마음’에 담겨진다…고 느껴졌고,
그 내용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는 수련회 당일까지도…
이 부분에 계속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정말 이 모든 내용이 나를 사로잡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어쩌면… 설교하면서 많이 ‘오바’하지 않았나 싶다.
사람들의 눈물이,
내 manipulation의 결과일까, 하나님께서 일하심일까 하는 것이 불분명했던 이유는,
그렇게 내가 ‘오바’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오바하는 사람을 통해서도 당신의 사람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실 수 있다.
그런의미에서
그렇게 오바하는(혹은 manipulative한) 것의 최대 피해자는…
그 설교자 자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