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가 선포됨

마태복음을 읽으면서 느끼는건,

정말 이게 하나님 나라 이야기라는 것이다.

아주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통치 라는 개념의 하나님 나라 (하늘나라)에 대한 언급이 참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지난주 금요일 성경공부 시간에 함께 하는 사람들과 좀 나눈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

‘차원’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하나님 나라의 선포를 이해하면 도움이 참 많이 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3차원에서 살고 있고, 그런 ‘공간’은 ‘시간’이라는 것과는 별개의 개념으로 이해하곤 하는데…

사실 물리학적 개념으로는 그렇지 않다.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시공’ 혹은 Space-time 이라는 개념으로 서로 엮여 있다. 그 ‘시공’이라는 것이 중력 부근에서는 휘기도 한다는게 일반 상대성 이론의 내용이다.

뭐… 갑자기 엉뚱하게 물리학 이야기를 꺼내긴 했지만서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은 위치가 바뀐다.

보통 우리 사람은, 그 사람의 위치가 시간에 따라 바뀐다는 식으로 이해를 하지만…

‘시간’이라는 축을 아예 하나의 축으로 놓고 전체 frame을 이해하자면, 시간에 따라서 어떤 위치를 지나온 그 사람의 모든 궤적 자체가 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즉, t=t0에 x0 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 t=t1에 x1 이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 t=t2에 x2 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 모두를 다 포함해야 시간축을 따라서 존재하는 그 사람을 다 기술해 내는 것이다.

시간축에 대해서 ‘초월’하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사람의 time-slice 밖에 볼 수 없지만, 시간축에 대해서 ‘초월’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사람의 모든 time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2.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선언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time-sliced description이 아니라, 전 시간적 description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이게 온전히 하나님의 통치가 완성되어야만 가능한 이야기를 하시기도 하고, 

(가령, 하늘 아버지의 완전함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와 같은…)

어떤 경우에는, 아직 깨어진 세상 속에서도 충분히 실행/현실화 가능한 이야기를 하시기도 하신다.

(가령, 아무것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하는 것과 같은..)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을 돌려대라 라는 말씀을 제대로 지키면서 이 현실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이게… 사실상 불가능한건데, 시간축을 초월해서 성경을 읽어내면 이게 가능해지는 거라고나 할까.

마태복음을 읽었던 마태복음의 일차적 독자들은, 

산상수훈과 같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아마도, 이제는 새로운 하나님의 통치의 시대가 열렸으니,

이제 새롭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인거구나…

하면서, ‘지금’ ‘여기서’ 지켜야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윤리 코드로 이것을 받아들였을 것 같다.

3.

구약에서 나타난 율법 역시, time-sliced description/prescription 이라기 보다는, 초시간적 기술이자 명령인 것 같다. 

이것 역시, 현실적으로 지킬수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는데…

그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홍해바다를 가르고 우리를 이끌어내신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가 시작되었으니, 이제는 그렇게 살아야하는 거구나… 하고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4. 

따라서, 그런 ‘구약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유대인 독자들은,

산상수훈을 읽으며 / 들으며…

지금 우리가 겪는 혼란이 훨씬 적지 않았을까.

이미 그런 생각의 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5.

가령,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해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라는 주기도문의 내용을 우리가 읽으면서는…

그래서, 우리가 먼저 용서해야 우리가 용서 받는거야? 그러면 이거 이신칭의랑은 어떻게 되는거야?

이런 고민을 하지만,

이걸 시간초월적 명령으로 받으면… 언젠가는 죄의 용서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새 시대가 완성되는 날이 오는데… 지금 바로 여기서 그 시대가 열리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 시대의 사람으로 살아야해! 

이렇게 이해가 되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산상수훈을 포함해서…) 복음서… 더 나아가서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윤리 코드는,

지금 바로 지키면서 살도록 요청하는 명령이지,

그걸 통해서… 이신칭의를 깨닫게 하도록 도움을 주는 그련 메타포가 아니다.

6.

예수님께서는,

시간 이라는 차원을 초월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턱~ 하고 우리에게 던져 주시면서,

자 이제 이런 시대가 열렸고, 열리고 있고, 열릴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살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Already, but not yet 이라는 하나님나라의 파라독스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가, 시간 초월적 선언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훨씬 더 받아들이기 쉬워지는 게 아닌가 싶다.

…..

뭐 이런 식의 이야기를 성경공부 시간에 했더니만,

목사님께서…

비공돌이들에게는 그런 비유로 설명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하셨다. ㅋㅋ

나는 이렇게 생각하니까, 머리에 팍팍 들어오는데 말이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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