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욕

최근에 들은 이야기.

어느 교회에서, 예수 잘 믿는 부부가,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렇게 지냈다.

담임목사가, 그 부부를 견제하여, 교회에서 아무일도 못하게 만들더니,

결국은 그 부부보고 ‘이단’이라고 교회에서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그 성경공부 가지 말라고…

예수 잘 믿는 이 부부는,

이걸 황당하다고 받아들여야할지, 억울하다고 해야할지, 분통이 터진다고 해야할지…

정말…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듣고,

중학교때 이후로 하지 않았던 ‘쌍욕’을 혼자 막 퍼부었다.

이 씨x놈, 개x끼, X같은 새끼, 찢x 죽일놈.

그래도 성이 풀리질 않아,

하나님께 그 담임목사 X새끼에게 저주를 퍼부어 달라고 막 기도했다.

그런 새끼는, 

하나님도, 심판도, 죄도, 믿지 않는게 분명하다며…

정말 혼자 쌍욕을 퍼부었다.

참람한 (신성모독의) 죄를 지으면,

구약에서는 돌로 쳐서 죽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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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대하는 상대가 너무 악할때,

내 정당함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하는 상대가 너무 악하기 때문에,

내 악함이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런 쌍욕은 하지 않기로 했다.

씨x놈… 개x끼…

오늘까지만 욕을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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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저는 좀 화를 덜 낼테니,

주님께서 좀 화내어 주십시오.

또 다시 Dresden 출장

1.

이번주에는 또 다시 독일에 와 있다.

이번에는 지난번과는 다른 hotel에 묵었다.

그런데, 이쪽 동네도 정말 장.난.아.니.게. 예쁘다.

사진의 퀄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영 못마땅한 사진들이겠지만, 밤에, 전화기로 대충 찍은 사진이니… 

2.

이번 출장에는, 유난히… 정말 유난히 바쁘다.

점심 먹을 시간 찾기가 쉽지 않다.

낮에는 이쪽 일을 하고, 밤에는 미국 쪽 관련해서 conference call을 하고…

호텔 바로 앞쪽에도 한번도 나갈 기회도 찾지 못하고 있다.

아침 6시 반 아침 식사, 점심은 기회가 허락하면 간단히… 방문하고 있는 연구소에서 때우고, 저녁은 8-9시쯤 다시 호텔에서…

3.

게다가 이쪽에서의 일이 영 신통치 않게 잘 안된다.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겨서, 실험의 일부가 실패하게 될 것 같다.

음… 아주 마음이 무겁다.

4.

그저께, 아내와 전화를 했는데, 집의 water heater에 leak이 생긴 모양이다. 그래서 물도 세탁실 쪽으로 새고… 

아내도 많이 바쁜 와중에 그걸 처리하느라 힘이드는 것 같았다.

멀리서 무슨 도움이 될 수도 없고…

정말 답답하고 우울하고…

5. 

이런 와중에 처해있는 나를 가만히 보니…

나는 참 많이 불안해 한다.

일이 잘 안될까봐. 내 아내가 너무 많이 힘들어 할까봐. water heater 때문에 많이 고생할까봐…

그리고 그것의 해결책으로, 정말 extra energy를 내어서, “해결해야해!” 이렇게 반응하며 뺑뺑이를 돈다.

이런 mode가 작동되면,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데 방해가 되는 사람들은 모두 내게 ‘적’이 된다. -.-;

6.

때로 내가,

내 가족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끼는 후배들에게…

‘폭군’과 같이 대할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대개 내가 이렇게 ‘panic’해서 extra energy를 내고 있을 때인 것 같다.

얼른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모든 요소를 ‘제거’해야한다고 느끼고…

그러면서 그 사람들에게 ‘폭군’과 같이 대하는 것 같다.

7. 

재미 있는(?) 것은, 내가 당면한 과제가, 어떤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나 위로하는 것이라고 할 때에도, 그 사람을 도와주고 위로하는데 장애가 되는 그 사람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내 원래 동기와 정 반대의 행동을 하거나, 지혜롭지 못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8.

눈이 덮여있는 Dresden은 참 예쁘다.

구석 구석 예쁘게 꾸며진 거리도 있고, 멋진 오래된 건물들도 많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별로 예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으쌰 으쌰 하고 있는 내 모습도 그리 예쁘지 않다. -.-;

(두개의 시리즈 글들은 다음주 계속됩니다. ^^)

수양회 설교를 마치고 (6)

이번에 설교 준비를 하면서 참 많이 힘들었다.

정말 아주 last minute까지 message의 윤곽이 잘 잡히지 않아서 아주 애를 많이 먹었다.

왜 그랬을까?

어떤 의미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것은, 수련회 초청에 응하면서 거의 결심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솔직히 이런 ‘일반적’ 수련회 설교의 레파토리는, 대부분 비슷하다.

복음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다루고, 약간 생각할 만한 것을 좀 이야기하고, 나중에는 헌신에 대한 이야기 다루고…

이번에 했던 것도, 뭐 내가 아주 여러차례, 여러 세팅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짜집기해서 만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렇게도 힘들었을까?

그것은, 그 내용이 내 ‘마음’에 잘 담겨지질 않았다.

이게 뭐 information을 전달하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이 정말 내 온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정직하게 YES 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설교 아웃라인을 짰다가 바꾸고, 짰다가 또 바꾸고… 

그짓을 여러번 반복했다.

결국… 아주 막판에 이르러서야,

겨우 아… 이 정도면 이 message가 내 ‘마음’에 담겨진다…고 느껴졌고,

그 내용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는 수련회 당일까지도…

이 부분에 계속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정말 이 모든 내용이 나를 사로잡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어쩌면… 설교하면서 많이 ‘오바’하지 않았나 싶다.

사람들의 눈물이,

내 manipulation의 결과일까, 하나님께서 일하심일까 하는 것이 불분명했던 이유는,

그렇게 내가 ‘오바’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오바하는 사람을 통해서도 당신의 사람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실 수 있다.

그런의미에서

그렇게 오바하는(혹은 manipulative한) 것의 최대 피해자는…

그 설교자 자신이 아닐까.

Leaving the Big A (11)

Apple에서 참 많은 것을 누렸다.

뭐 나름대로 돈이 주는 power도 있었고, 

linkedin 같은 곳에서는 거의 매주 우리 회사 오지 않겠느냐… 이런 메일들이 들어왔고,

출장 갈때면 늘 business class 타고, 5 star hotel에서 자고, 한끼에 70불 넘는 식사를 하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 보다도,

아…저기 apple store에서 팔리는 저거 있잖아…

거기의 무슨 무슨 부품은 내거야. 내가 만든거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pride도 있었다.

게다가 참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내가 경험해지 못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많았고, 실전에서 뛰면서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할 많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환경 속에서… ‘망가지는’ 사람들을 참 많이… 정말 많이 보았다.

자신의 power를 남용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고,

공격적인 분위기 속에서 defensive 해지면서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부정직이나, 꼼수를 통해서 더 많은 benefit을 차지하려는 사람들도 참 많이 경험했다.

나도 함께 망가지는 것이 아닌가 늘 노심초사했다.

쏟아지는 여러 요구 속에서,

vendor의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호텔 방에 돌아와서 무너지는 마음을 어찌하지 못해 힘들어 한 적도 많았다.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다른 팀이나 엔지니어를 공격하는 내 모습을 심심치않게 발견했다.

Data의 일부를 일부러 숨기거나, 어떤 data를 과장해서 보인적도 많았다.

음… 내가 정말…. 그 안에서 망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냥 원래 내 망가진 모습이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잘 포장되어 있었는데 그런 환경 속에서 드러난 것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참… 잘 떠났다.

좋은 경험이었지만. 떠나서 참 기쁘다. 

그리고 떠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수양회 설교를 마치고 (5)

내 가설은 이렇다.

1. 우선 생각이 유연하고 자유로운 사람들은 교회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이미 교회에 와 있는 사람들은 이미 생각이 경직되어 있는 사람이 많다.

교회는, 생각이 유연한 더 큰 대중을 놓치고 있고, 생각이 경직되어 있는 (그리고 그 population이 줄어들고 있는) 사람들을 target으로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2. 생각이 유연한 사람들이 교회에 오면, 두가지 선택이 있다.

하나는, 유연했던 생각을 포기하고 종교화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유연했던 생각을 가진채 교회 내의 주변인으로 남는 것이다. (물론 교회를 떠나는 option이 있지만,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은 그런 option을 택하겠지만… 일단 그것은 열외로 하자.)

그러다보니, 교회 연륜이 길고, 핵심 리더들일수록 생각이 경직되어 있고, 종교화되고, 그래서 이원론의 문제가 더 큰 이슈가 아닌가 싶다.

3. 여전히 세속화, 혼합주의의 물결은 기독청년들 전체를 흔들고 있다. 심지어는 top leader들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화석화된 종교의 힘은… 세속화의 문제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이런 사람들은 세속화와 이원론 두가지의 trap으로 부터 다 나올 필요가 있지만… 더 심하게 이런 사람들을 파괴하고 있는 것은, 그리고 더 급하게 교정이 필요한 것은 이원론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강력한 화석화된 종교의 힘이 아직(?) 덜 미치는 더 큰 대중은 세속화/혼합주의의 이슈가 더 큰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4. 교회 내에서 주변인으로 남아 있거나, 여전히 기독교라는 종교에 반감이 있는 소수는, 차라리 ‘기본적인 복음’을 이야기 했을때, 나름대로 그 안에서 이원론의 문제나 세속화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보려는 시도를 해보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화석화된 종교라는 독이 아직 이들에게 퍼지지 않은 것이겠다.

5. 아직 자기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주장(?)하는 한 아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이 친구는 여러가지 지적인 질문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교회에 오면 자기 이야기는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고 한시간씩 ‘어른’이 자기 얘기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나서는 서로 ‘대화’했다고 이야기한다고 난감해 했다.

그 친구의 궁금한 점을 많이 듣고, 내가 약간 가이드를 주면서… 많이 encourage 해줬다. 그 궁금한 것을, 혹시 나중에 예수를 믿더라도 버리지 말고 계속 가지고 가라고. 예수 믿더라도 너무 쉽게 종교인이 되지는 말라고 얘기해줬다. 이 친구는 이번 수양회에서 예수님을 믿겠다고 결신을 하지는 않았는데… 이제 자기도 ‘거의 다 온 것 같다’고 내게 얘기해 줬다. 아마 몇주 후에는 자기도 크리스천이라고 선언하게 될 것 같다면서.

정말…

너무 마음이 무거웠다.

복음의 능력과 힘은 대단히 큰데..

그것은 여전히 모든 이들에게 소망인데…

종교가 그것을 먹구름처럼 가리고 있었다.

종교화 때문에,

자신의 살아있는 생명력있는 신앙이 화석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마치 자신의 몸이 서서히 돌로 변하고 있는 것 같이…

그것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복음이라는 생명의 약에,

화석화된 종교라는 독약이 섞여서…

사람을 살리는 힘은 현저하게 없어져 버리고,

그 독의 효과는 계속 퍼져가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나는,

그 앞에서 정말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Leaving the Big A (10)

Apple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1. 우선 그 체제에 완전히 순응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내가 취하기 참 어려운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과 신념에 배치되는 것이 너무 많았다.

2. 아니면, 그 체제 내에서 반체제 인물, 주변인으로 남는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이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런 반체제 인물은… 그냥 도태되고 퇴출되게 되니까.

3. 그 체제 내에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한편 체제에 순응하기도 하고, 다른한편 점차적으로 그 체제를 작은 구석부터 바꾸어 나가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것이 전체를 바꾸지 못한다고 해도, 작은 변화에 의미를 두고. (선지자적 비관론이라고나 할까.)

아마 이것이 10년전의 나라면 적극 지지했을 입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정말 그렇게 할 수는 없었을까… 그런 후회와 생각이 많이 남는다.

4. 그렇지 않으면 그 체제를 포기하는 일이다.

Obviously, 나는 그런 선택을 했다.

—-

가령….

겉으로는 윗 사람들에게 잘 하면서, 

너무 쉽게 분노하거나 confront 하지 말고,

차근 차근 실력을 키워가면서…

아주 길~게 보고…. 조금씩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변혁을 모색하는…

그런 접근은 왜 내게 불가능한 것 같이 느껴졌을까?

우선,

당장은 그냥 그 생활이 힘들고 싫었다. 대단히 이기적인…

그러나,

또 한가지는,

그렇게 속으로 다른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아닌척 하는.. 그런 자세를 취하는 것이 정말 무지막지하게 힘들었다.

사실 나는,

원래 그런걸 대단히 잘 하는 사람이었다.

어른들이나 윗 사람들에게는 마음에 없는 말도 잘 하고…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을 대할때 manipulative 하게 대하는 성향이 큰 사람이었다.

신앙을 가지고 나서,

그런 내가 몸서리치게 싫었다.

많이 기도하고, 묵상하고, 노력하면서…

좀더 Yes to be Yes, No to be No 인 사람이 되고자 소망했다.

이제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나… 정말 많이 그렇게 바뀌었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그러면서 나는,

사람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혹은 긴 시간을 두고 인내한다는 차원에서,

속과 다른 얼굴을 하는 skill 자체를 많이 잃어버리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쩌면.. 이런 체제 속에서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 감사했지만,

한편… 막막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나는… 더 이상… 이런 세상 속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 걸까.

수양회 설교를 마치고 (4)

복음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고,

청중에 따라서, 때로는 강조해야하는 포인트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복음에 대한 헌신을 강조해야 할수도 있고,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강조가 자칫 독이 될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를 할때는 청중을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에 나는 말하자면 그 청중을 꽤 많이 오해하고 message를 준비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assumption은 이것이었다.

(1) 이들에게는 아주 기본적이고 원색적인 복음 (하나님, 인간, 죄, 깨어진 세상, 하나님 나라)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오히려 잘 못 들었을 것이다.

(2) 대부분 ‘이원론의 극복’이라는 이야기는 꽤 많이 익숙할 것이다. 오히려 ‘세속화’에 대한 경고를 많이 함으로써, 세상을 닮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3) post-modern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음대생이 거의 90% 였다.)

그런데,

이런 assumption은 무엇 하나 적중하지 않았다.

사실 수양회 message를 준비하면서, 그곳의 학생 리더로 부터 그 학생들의 상황, 최근에 했던 성경공부 내용 등등을 듣기도 했고, 어떤 expectation이 있는지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음에도… 나는 꽤 많이 잘 못 짚었다.

우선,

첫번째 것은 맞았던 것같다. 결국 사람들이 많이 반응한 point도 그것이었다. 도대체 십자가 이야기를 별로 들어보지도, 생각도 못해봤는데… 뭐 그런 반응이 참 많았다. -.-;

두번째, 이원론의 문제냐 세속화의 문제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청중이 많이 나누어져 있었다.

아주 top leader들은 많은 경우, 세속화의 문제보다는 이원론의 문제가 더 심각해 보였다. 지나치게 종교적이었다. 그 정도가… 아주…. 아주… 심했다. 

그런데 그보다 약간 연륜이 짧은 사람들은, 세속화나 이원론문제 자체를 다룰 준비가 아예 되어 있지 않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 그러나 굳이 분류를 하자면 이원론보다는 세속화 쪽이 더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예 생짜배기들… 아예 교회경험 자체가 짧은 사람들은, balance된 고민이 있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던지는 질문도 아주 좋았다.


세번째, post-modern할 것이다라는 assumption 역시… 꽤 많이 빗나갔다. 이쪽 실리콘밸리 쪽에서 만나는 ‘공돌이들’보다도 오히려 훨씬 더 생각이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이것도 역시… ‘생짜배기’들의 생각은 여전히 유연했다. 고민의 scope도 더 넓고.


왜 그럴까?

(다음 글에서 좀 더 다루어보겠다.)




Leaving the Big A (9)

Apple에서는,

정말 ‘좋은’ 엔지니어들을 엄청 뽑아간다.

다들 ‘자존심’이 대단하다.

똑똑한 사람이 쉽게 빠지기 쉬운 함정은,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 라고 생각하는 성향이다.

이건, 똑똑한 사람들에게 독과 같다.

건강한 정신, 건강한 분위기, 건강한 문화 등등에 의해 이런 성향이 절제/정화 되지 않으면,

똑똑한 사람들이 전체에 미치는 나쁜 효과는 대단히 크다.

내가 옳고 남이 그르다. 내가 너보다 더 똑똑하다는 생각에 빠져 있으면, 남이 하는 것이 늘 ‘장애물’로 여겨진다.

그러다보면 남이 하는 것에서 흠집을 잡고, 공격하는 것을 즐기게 된다.

그런 문화 속에서, 그렇게 똑똑하지 못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게 된다.

내가 있었던 분야의 사람들과 조직은, 이런 독(poison)에 빠져 있었다.

보통 미팅을 하면,

서로 남들의 흠을 잡고, 자신의 일을 드러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때로는 수십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미팅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그렇게 남을 많이 까고,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소위 ‘visibility’가 높아진다.

(사람들 눈에 잘 띄게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의 목소리가 중요하게 되고… 점점 discussion의 방향은 그렇게 흘러가게 된다.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자신이 처한 ‘문제’를 meeting에서 드러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S 장로님은 자신의 조직에 있는 사람들을 micro-manage해가며 control하기 원했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은 자신과 자신의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냥 내 상상인데…

전에 Jobs가 있을때, 그리고 조직이 훨씬 더 작았을때에는…

이런 ego-centric한 분위기의 논쟁을, Jobs의 카리스마로 잠재우고 교통정리를 해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이제는 그런 카리스마도 조직 내에서 찾기 어렵고, 게다가 조직이 너무 커져서 몇사람의 카리스마 만으로는 그것이 control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Apple이 잘 안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Apple의 ‘internal system’은 대단히 잘 만들어져 있다.

거의 Idiot-proof 하다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다.

아주 바보 같은 사람이 엉뚱한 짓을 하더라도, 반복해서 이루어지는 review와 비판 등등을 통해 웬만하면 그것들이 잘 걸러지게 되어 있다고나 할까.

과연 이런 문화 속에서 Apple이 얼마나 더 승승장구 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참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이다.

수양회 설교를 마치고 (3)

둘째날 아침에는, ‘하나님 나라’ 강의를 아주 쉽게 풀어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런데 하다보니 내가 흥분(?)해서 약간 어려운 내용까지도 cover하는 실수를 좀 범했다. 그래서 시간 조절을 잘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청년부의 리더들, 그리고 목사님이…

내가 이야기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점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것이었다. -.-;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거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다.

영원한 통치의 회복이 있겠지만, 예수의 초림으로 이미 그 시작이 되었다.

뭐 이런 내용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다.

충격이었다.

아니, 하나님 나라 라는 건… 이제는 다들 받아들이는 개념 아니야? 아직도 그냥 죽어서 천당가는 그런 관점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 거야?

결국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에 근거한 이원론적 천국 개념으로부터 한 걸음도 더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냥… 여기에서 결론을 낼 수 없겠다 싶어… 물러났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믿는 기독교에서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을 포기하면 뭐가 남을까? 그래도 여전히 내가 믿는 신앙이 지금 이 기독교 신앙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통치라는 개념으로서의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는 이들과 나는…

과연 같은 신앙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같은 신앙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Leaving the Big A (8)

대부분의 apple 직원들이 vendor의 직원들을 다루는 태도는 매우 혹독하다. -.-;

많은 사람들이, 꼭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혹독하게 사람들을 대한다.

나는 과도한 power가 사람들에게 주어졌을때 사람들이 망가지는 전형적인 형태라고 생각한다.

정말 인격적인 모욕을 당해가며 일하는 vendor의 직원들도 많이 봤다.

아니… 그럼 그거 더러워서 안해, 하고 때려치면 되잖아?

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특정 기술분야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거대기업의 횡포를 견뎌내면서 하지 않으면 아예 그 바닥에 붙어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가령,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어떤 부품을 만드는 회사를 생각해보자. 이 회사는 apple, 삼성, 모토롤라, LG 등등의 회사 이외에는 다른 choice가 없다. 이 회사들이 다 하청업체 직원들을 막대하는 분위기라면… 게다가 막 대하는 회사들이 다들 ‘잘나가는’ 회사들이라면… 이런 회사들의 직원은, 그 모욕을 견디어가며… 일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인격적인 모욕을 당하며, 아주 적은 이윤에 만족하며, 게다가 새벽이고 주말이고 쏟아지는 거대기업 직원의 요청에 다 친절히 대답해가며…

apple에서,

나는 끊임없이 이 vendor 직원들을 쥐어짜도록 요구받았다.

나는 어떻게든,

이런 환경 속에서 이 vendor의 직원들이 쥐어짬을 덜 당하도록 노력을 많이 했었다.

심지어는 덜 중요한 경우에는 대충 그 사람말에 속아 넘어가주기도 했고, 주말에는 가능하면 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또… 나는 ‘아시아’에서 만난 vendor의 직원들과,

좀더 ‘인간적인’ 대화를 해보려고 많이 노력했었다.

그 나라의 문화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인생의 목표, 삶의 가치, 무슨 꿈을 꾸고 사는 지 등등..

그리고 가끔은 아주 바보같은 농담도 하고…

상전과 노예, 지주와 소작농… 뭐 그런 비슷한 관계로 설정된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그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정말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를 만난 vendor의 직원들은, 더 혹독하게 쥐어짜는 사람을 만난 경우보다는 조금 상황이 나았을지도 모르겠으나… 전반적인 분위기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렇게 쥐어짜지 않으면… 결과가 제때 나오지 않을 때도 많고, 그러면 그 피해가 결국 그 사람들에게 돌아가기도 하였다.

apple의 직원이 micro-manage 해가며, 쥐어짜는 것에 그냥 익숙해져버려서… 이 사람들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버린 경우도 있었다.

깨어진 시스템 속에서,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렇게 그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으면 아예 안되는… 그런 상황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