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Chicago conference는 수요일 하루만 갔다 왔으므로, 무슨 ‘후기’어쩌구 쓸만큼 충분히 conference를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후기’라고 시리즈를 달수는 없을 것 같고, 그저 ‘단상들’이라는 시리즈로 몇가지 생각들을 써보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전히 코스타만이 하고 있는 일들이 있다.
(나는 물론 다른나라 코스타는 잘 모르므로, 미국 코스타가 하고 있는 일들이다.)
1. Counter-cultural한 복음의 내용을 다루는 대중집회.
금년의 주제는 정말 완전히 그런 쪽으로 갈데까지 간 집회라고 할수 있을 것 같다.
‘약함’이라…
약함이라는 주제를 정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대중집회로 하는 다른 모임, 운동, 집회가 얼마나 있을까?
사실 생각해보면 정말 인기 없을 주제들을 코스타에서는 계속 다루어 왔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한, 인기없는 주제들을 계속 더 다룰 예정인 듯 하다. ^^
대중집회를 하면서 이렇게 하는건 정말 무리가 따르는 일이다. 대중이 별로 좋아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대중에게 잘 이해시키기도 여럽고, 게다가 이런 주제를 제대로 전달한 대중적 speaker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스타를 계속 이 무모한 일들을 하고 있다.
2. 복음주의 우파와 복음주의 좌파가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
한국사회는 정치적 이념에 따라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다. 그리고 그 분열은 한국 복음주의권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서로 상대를 ‘적’으로 생각하고 소멸시키려 달려들고 있다
그런데 코스타에는 이 두 그룹이 다 온다. (적어도 내가 이해하기로는 그렇지만 코스타에서는 너무 양극단에 치우친 분들은 강사로 모시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물론 서로 불편해한다. ^^
그래도 그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인다는 것이 내게는 참 감동인다.
3. ‘고리타분’한 옛날식 고지식함이 순수함으로 남아 있다.
여전히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하게 섬기는 가치를 소중하게 여긴다.
여전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여러가지 자원을 ‘낭비’해가며 섬기는 일들을 당연하게 여긴다.
여전히 기도, 말씀, 그런게 다른 어떤 technique 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4. 평신도 사역에 대한 강조가 계속되고 있다.
대형교회는 대형교회대로, 중소교회는 중소교회대로… 점점 평신도들은 목회자들의 야망을 충종하기위한 도구가 되어버리고 있다.
소위 ‘목회비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야망을 채우려는 목회자의 도구 말이다.
정말 복음에 반응해서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사역의 주체가 되는 평신도를 보는 일이 참 쉽지 않다.
코스타에는 아직 그것이 살아있다.
5. 하나님 나라 복음에 대한 강조가 있다.
이분법적 이원론으로… 죽어서 천당가는 구원을 강조하는 그룹도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노력으로 점진적으로 이 땅을 유토피아를 만들어보자는 자유주의적 그룹도 아니다.
예수의 삶과 선포와 죽음과 부활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가져왔음을 믿고 선포하는 그룹이다.
사실 건강한 하나님 나라 신학에 바탕을 두고 이렇게 지속되는 운동이 얼마나 되는가.
그런데…
위의 다섯가지가 모두 동시에 이루어지는 집회, 운동이 코스타이다.
코스타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시점에서, 코스타는 유효하다.
그것을 위해 헌신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