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4)

내가 어릴때 들었던 복음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죄인이고, 예수님께서 내 죄를 다 지고 돌아가셨고,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

그런데…
현대인들과 이런 대화를 하려면…
도대체 죄가 뭐라는 이야기부터 턱 막힌다. 대화를 잘못 이끌어가면 동성애가 어쩌구.. 뭐 이런 비본질적인 문제로 흐르기 십상이고.
선과 악의 기준을 개인이 만들어낸다고 믿는 현대인들에게 죄가 절대자의 기준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개념은 대단히 생소한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적어도 내가 미국과 한국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영생’-영원히 사는것에 그렇게 큰 관심이 없다. 오히려 적절할때 고통없이 잘 죽되 그 전까지 잘 사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는 물어보지 않은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는 이상한 종교가 되어버린다.

한때 먹힌다고 믿었던 사영리나 브릿지 전도나 전도폭발 같은 것들이 이제 더 이상 잘 먹히지 않는 이유가 내 생각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상황이 변한거다.

어쩌면 사도바울의 시대이후, 기독교 주류가 다원주의 사상을 만나는 것은… 거의 200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고,
Christendom 속에 2000년동안 머물러 있던 기독교는 이 변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어떻게 대화해야하는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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