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새해 기도

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하여라
나도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새로 오는 광음을 보람있게 보내고
주의 일을 행할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한번 가고 안오는 빠른 광음 지날 때
귀한 시간 바쳐서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밤낮 주를 위하여 몸과 맘을 드리고
주의 사랑 나타내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뜻 없이 무릎 꿇는

나는 이분이 얼마나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정치가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분이 이 찬송가를 부르는 것을 들으며 함께 울었다.

이런 가사에 울면서 노래하고 기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위로가 된다.

나도,
내가 흘리는 눈물의 기도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손흥민

나는 축구를 잘 모르지만 손흥민은 참 축구를 잘한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아주 뛰어난 선수중 하나로 활약하고 있으니.

그런데,
그런 손흥민도 한국 국가대표에서 뛰면서는 자신보다 훨씬 못한 선수로 이루어진 팀에게 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건, 손흥민이 축구를 잘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속한 팀이 그의 수준만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손흥민 뿐 아니라, 한국의 선수들이 참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데 그 뛰어난 선수들이 모여있는데도 막상 한국 팀이 축구를 그만큼 잘 하지 못하는 것을 많이 보곤 했다.

살다보면,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
하나님 앞에서 부끄럼 없이 살려고 노력도 하는데,
영 여러가지가 꼬이고 어렵고 힘들기도 하다.

물론 내가 잘 못해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그냥… 내가 속해있는 팀이 영 엉망이어서 그런것일수도 있겠다.
심지어는 다른 선수들도 다 잘 하는 선수들인데도, 그냥 그 팀이 잘 못하는 거다.

내가 열심히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벽을 느낄때,
내가 뭘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 같은 막막함 앞에서,
손흥민을 생각하며 위로를 얻는다.

나도 어쩌면…. 손흥민일지도 몰라…

내가 아는 아무개도,
내가 사랑하는 아무개도,
그렇게 위로받길 기도한다.

저주의 시

시편에 나오는 저주의 시를 보면 한편 유치하기도 하고 한편 좀 흉측하기도 하다.
109편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그런데 정말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저주의 시를 외치는 사람들은 결국은 그 악에 대해 뭐 어떻게 할 능력이 없는 약자들이었을 것이다.
당장 가서 그 분노를 쏟아부어낼 방법이 없으니 이렇게 하나님에게 저주의 기도를 하는 것이었을 것.

정말 그렇다.
쏟아져 나오는 뉴스에 분노를 어떻게 추스릴 방법이 없다.
그래서 아주 점잖게 이야기를 해주는 뉴스보다 확실하고 과감하게 욕을 해대는 저렴한 youtube 채널이 차라리 더 마음에 든다.

시편 109편이 성경에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참 위로가 된다.

저가 판단을 받을 때에 죄를 지고 나오게 하시며 그 기도가 죄로 변케 하시며 
그 년수를 단촉케 하시며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시며 
그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 자녀가 유리 구걸하며 그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고리대금하는 자로 저의 소유를 다 취하게 하시며 저의 수고한 것을 외인이 탈취하게 하시며 
저에게 은혜를 계속할 자가 없게 하시며 그 고아를 연휼할 자도 없게 하시며 
그 후사가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저희 이름이 도말되게 하소서 
여호와는 그 열조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 어미의 죄를 도말하지 마시고 
그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하사 저희 기념을 땅에서 끊으소서 
저가 긍휼히 여길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하여 죽이려 한 연고니이다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 뼈에 들어갔나이다 
저주가 그 입는 옷 같고 항상 띠는 띠와 같게 하소서 

아멘!

권력과 하나님

전성민 교수님이 수염 없던 시절에 하셨던 설교 중에서.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군박하오니 저희로 자기의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저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저의 안력이 미치지 못하오며
저는 그 모든 대적을 멸시하며 그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요동치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그 입에는 저주와 궤휼과 포학이 충만하며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저가 향촌 유벽한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 눈은 외로운 자를 엿보나이다
사자가 그 굴혈에 엎드림 같이 저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
저가 구푸려 엎드리니 그 강포로 인하여 외로운 자가 넘어지나이다
저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 얼굴을 가리우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시편 10:1-11, 개역성경)

나라를 위한 기도

어제 하루 종일,
회사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멀리 타국에서 사는 아무것도 아닌 한 사람이 그저 뉴스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분노하면서 기도하는것 뿐이겠지만,
그래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었다.

어제는 유난히 바쁜 날이었다.
그리고 일이 많이 힘든 날이었다.
몸도 마음도 무거워져 버겁게 기도했다.

아침에 5시 반쯤 일어나서 조금 있다보니 뉴스에 난리가 났다.
그리고 그러부터 국회에서 계엄선포 무효결의를 하는 아침 8시까지,
계속 마음을 졸이며 뉴스를 체크했다.
그 와중에 나는 아침에 나와서 회사에 가야 했고.

문득 생각했다.
요즘 나는,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던가….?

Jordan Peterson의 회심

Jordan Peterson이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꽤 큰 뉴스가 되었다.
Jordan Peterson은, 말하자면 ‘우파’ 혹은 ‘보수진영’의 이론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분이 결국 기독교인이 된 과정을 나름대로 복기해서 보면,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가치 체계는 유대-기독교적 문화 전통을 제외하고는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부터 출발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후 개인적으로, 또 가족 구성원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일종의 ‘회심경험’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다음은 Jordan Peterson이 공개적으로 그리스도인임을 이야기하는 영상 몇개를 모아놓은 것들.
과거에는 자신이 신을 믿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고, 그 대답에 대해 애매하게 피하면서 대답을 했는데, 이제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이야기한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결국 서구세계의 사상적 문화적 유산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식의 접근은 기독교계에서도 꽤 많이 이루어져왔던 것 같다.

영국의 작가 Tom Holland의 Dominion이라는 책 같은 것에서도, 기독교가 인권, 민주 등 현대 인류가 유익을 얻는 많은 것들이 결국 기독교로부터 왔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Tom Holland는 영국의 철학자 AC Grayling이 기독교가 새롭게 인류에게 제시한 새로운 사상적 innovation을 하나라도 제시해보라고 이야기했을때, 결혼제도, 자연과학의 발전, 모든 인류가 존엄하다는 생각 등이 모두 기독교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들이 universal truth로 받아들인 것 역시 기독교의 공헌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접근은 영국의 기독교 방송인 Premier 채널의 변증 프로그램인 Unbelievable에서 많이 다루어지는 접근이기도 하다.

Tom Wright도 이와 비슷한 접근으로 기독교를 변호하기도 했었고, Tim Keller도 역시 그랬다.

그래서 내가 하게되는 생각은 이것이다.
이런 접근이라면, 보주주의자들에게 있어 기독교는 매력적일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진보주의자들에게는?

Extra Nos

Extra Nos – outside of us

우리 밖에서 라고 번역할 수 있는 라틴어 문구이다.

도움이란, 밖에서 오는 것이다.
안에서 만들어 지는 것은 도움이 아니다.
안에서 만들어 질 수 있다면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아닌 것이다.

도움이 밖에서 온다는 것은 결국 현재 상태에 대한 절망적 진단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다.

The help is coming from the outside.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길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많이 없는 상태.
은혜의 빛이 갈라진 어두움을 뚫고 들어오게되는 것.

Advent를 맞이하는 생각

정치가 종교가 되어서는 안된다 (5)

내가 하고 있는 성경공부 그룹에서도, 이런 내용을 좀 많이 다루게 되었다.
나는 말하자면 약간 열을 내서,
정치적 성향과 기독교를 연관시키지 말라고 많이 이야기했다.
결국 그것은 폭력적이라고.
악에 대한 심판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써 이루신 예수님의 방법과는 너무 다른 것이라고.

팀 켈러가 돌아가시기 몇달전에 했던 인터뷰가 있다.
1970-80년대 미국의 mainline denomination이 몰락했던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mainline denomination이 미국 민주당의 정치적 아젠다와 자신들을 동일시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 미국의 evangelical denomination이 몰락하고 있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evangelical church들이 미국 공화당의 정치적 아젠다와 자신들을 동일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나는 깊이 깊이 공감하고 동의한다.

나는 정말 아주 오랬동안,
내가 복음주의자라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감사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내가 복음주의자(evangelical)이라고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복음주의라는 단어가 심하게 정치화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정치가 종교가 되어서는 안된다 (4)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 매우 중요하게 작동하는 영역이다.
모두 자신의 뜻을 이룰수 없더라도 조금씩 양보해가며 타협점을 찾아서 일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정치인들이 해야하는 일이다.

그러나 종교가된 정치에서는 그런 일이 용납되기 어렵다.
정치적 신념이 종교화 되었기 때문에 타협은 배교와 같이 여겨지게 된다.

양쪽 극단으로 나누어진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먹으려고 으르렁 거릴때,
결국 한표라도 더 받아서 내 뜻을 관철시키려는 정치 지지 집단의 바람으로 선거과정은 더 과열되고,
대화와 타협으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51%의 다수가 소수의 뜻을 눌러버림으로써 일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에 정치는,
나와 생각을 다르게 하는 사람들에게 내 뜻을 강제할 수 있는 합법적 폭력이 된다.

다시 말하면,
요즘의 정치는 폭력적 종교가 되어버렸다.

역사적으로…
폭력적 종교가 어떤 결과들을 가져왔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볼때,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