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인가, 동네 목사님 한분과 식사를 했는데, 그분이 나보고 바울같은 스타일의 사람이라고 하셨다.
음… 나는 아니라고 막 그랬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바울같은 사람이 아닌 근거 몇가지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바울은 엄청 천재였다. 나는 아니다. 아마 평균보다는 살짝 더 높은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을 것 같긴 한데, 당연히 천재는 아니다.
바울은 완벽주의자였다. 나는 아니다. 가끔은 다른 사람들이 catch하지 않는 detail을 찾아내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완전 빈틈이 많고 그 빈틈이 많은 속에서 살아간다.
바울은 자신에대한 확신이 늘 강했다. 나는 내가 가진 생각이나 믿음에대한 회의가 늘 내게 가득하다.
바울은 결단력이 강했다. 나는 꽤 우유부단한 편이다. 가끔 급하게 생각과 결심을 해야할때는 정말 이를 악물고 내 본성을 거스러서 하는 편이다.
바울은 그칠줄 모르는 엔진같은 사람이었다. 낮에는 텐트를 만드는 생업을 하고, 밤에는 열을 팍팍 내면서 설교를 하고… 그러다가 마침내 자신은 땅 끝 까지 가겠다면서 방방. 나는 꽤 게으르다. 내가 가끔 부지런하게 보일때가 있는데, 그건 내게 닥쳐오는 일을 가능하면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빨리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바람때문에 폭풍처럼 일을 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혹은 일이 밀어닥쳐서 내가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두려워서 그렇게 후다닥 내게 떨어지는 일을 처리해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바울은 에니어그램 1번이나 8번 이 아닌가 싶고, 나는 3번이나 6번에 가깝다. 이렇게 나는 바울 스타일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요한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의외로 나는 꽤 관계적이다. 특히 하나님을 생각할때 그렇다. 내게 있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사랑하는 분이다. 내게 주어진 사명을 불도우저같이 감당하기 보다는,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기에 그 사랑때문에 그 안에 머물러 충성하는 스타일이 아닌가 싶다.
문제는 내가 훈련과 교육을 받아온 길이, 나의 관계적인 면들을 잘 develop하도록 나를 이끌어주지 못했던 것 같고, 그래서 나는 functionally 그저 열심히 일하는 사람같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아주 예전에… 한 30년쯤 전에, 나를 잘 관찰하던 한 형이 내게 그렇게 이야기해준적이 있었다. 너는 요한과 같은 사람인것 같다고.
그때 나는 엥? 내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그 형이 나를 잘 보았구나 하는 생각을 더 하게 된다.
나는 소위 ‘health technology’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의료쪽에대해서는 정말 거의 아는게 없었다. 그냥 내가 아는건… 미국은 의료비가 너무 비싸다는것 정도.
그런데 나름 그래도 이쪽 회사에 몇년 다니다보니 귀동냥으로 듣는 것들이 있어서, 미국의 healthcare쪽의 문제를 아주 쬐~끔은 이해해 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 대해서 회사 안과 밖에서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적어도 내가 진심으로… ‘아, 이 회사가 좀 잘되면 이런건 좋겠다’고 생각하는게 있다면, innovation을 통해서 전반적으로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고, 의료비를 낮추는 것이다. 낭비되고있는 치료, 약 처방, 의료보험등을 innovation을 통해서 줄여보겠다는 것이다.
그걸 다 설명하려면 너무 길기 때문에 여기에서 하루의 짧은 글에 다 담아낼 수 없는 것인데….
한국에 요즘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를 가지고 한참 시끄럽다. 나는 내 아버지께서도 의사셨고, 내 동생도 의사이기 때문에 내게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이 직접 이해당사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그저 ‘밥그릇 싸움’이 되고 있는 것 같고, 일반 대중도 결국 밥그릇 싸움으로 이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계속 한편에서는, 어쨌든 더 큰 문제는 의료체계가 비효율적인 것이 문제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나는 뭐 한국 의료체계 그런거 잘 모르니…
그런데, 어제 흥미있는 youtube 영상을 하나 봤다. 적어도 내가 이해하고 있는대로라면, 아.. 이런 식의 이야기가 조금 더 나와야 하는게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의대정원 늘리는 것이나 수가 조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더 큰 문제를 이야기하는 영상이었다.
세상의 어떤 자녀도, 자신의 부모가 형편없는 사람이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부모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길 바란다. 그렇지만, 모든 부모가 그렇게 훌륭하지는 않다. 그런데… 아주 일부 예외가 있긴 하지만, 자신이 부모로서 정말 좋은 부모가 되기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 부모는 거의 없다. 아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제한된 능력 안에서, 정말 대부분의 부모는 최선을 다 한다.
세상의 대부분의 교인들은, 자신의 목사가 훌륭하지 않는 사람이길 바라지 않는다. 자신의 목사가 훌륭하길 정말 간절히 바란다. 물론 모든 목사가 그렇게 훌륭하지는 않다. 그런데 거기에 더 큰 문제는… 모든 목사가 그렇게 최선을 다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건 여기까지려니…. 대충 자기 나름대로 선을 그어놓고 나머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고 만다.
이건 목사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spiritual leadership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burden이다.
어떤 형태로든, 누구에게 spiritual leadership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므로 정말 온 힘을 다해서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한다. 아…나는 대충 이 정도만 예수님 믿으면 된다면서 쉽게 타협해버리면 안된다. 그 사람을 따르는 사람들은, 정말, 진심으로, 그 리더가 훌륭한, 아니 최소한 최선을 다하는 리더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