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낭비하여야할까?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다.
해야할 일보다 할 수 있는 시간이 제약이 많은 경우, 시간을 아껴서 잘 쪼개쓰는 지혜는 필요하다.

그러나,
가령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이렇게 효율적 시간관리의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좋은 친구가 되는 일은 그냥 그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필요하기도 하다.

또한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위해서는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을 낭비해야할 필요가 있다.
매우 비효율적으로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바쁘게살아가면서,
어떻게, 어떤 사람들과, 언제 시간을 낭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내게 더 큰 지혜를 요구한다.

이것이 어떤 경우에는 그저 미련한 시간낭비가 될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건강한 시간낭비가 될수도 있으니…

작년정도부터,
나는 교회에서 시간낭비를 좀 줄여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렇게 실행을 했다.
그건 어떤 사람들에게 야박하게 느껴질수도 있었겠지만,
다른 곳에 시간낭비할 여유를 찾기 위해서였다.
정말 내가 더 도움이 되고, 내게도 유익이 있는 곳에 시간을 낭비해야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정이 정말 잘 한 것일까?
점점… 그렇다는 쪽으로 생각과 확신이 깊어진다.

지난 몇달,
미친듯이 회사일이 바빴는데,
지난 몇주,
미친듯이 그 일을 줄이고 일을 해결하려고 뛰었다.

그래서 잘하면 이 일의 일부를 다른 사람들과 조금 나누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조금은 더 살만해지는 것.
그러니 시간낭비할 여력이 조금은 더 생기게 되는 것.

이번 여름까지는 KOSTA를 위해 시간낭비를 조금 더 하게되겠고,
5월 이후에는 민우를 위해 시간낭비를 더 하게 되지 않을까.

이런 일련의 조정들은,
연초에 결심한대로…
내가 기능하지 않고 존재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Gabriels’s Oboe

Gabriel’s Oboe는 영화 The Mission에서 가브리엘 수사가 과라니족과 처음 만날때 연주하는 곡으로 영화 전체의 가장 중요한 theme이 된다.

사실 위의 영상보다 아래 링크에 나와있는 것이 훨씬 더 스케일도 크고 좋은데, 이건 embedd가 되지 않아서, 아래 링크로만 남긴다.

이곳 링크

이 영화는 내가 대학을 합격하고서 그 겨울에 보았던 영화였다.
그 스토리와 영상과 음악에 압도되어서 그 삭막한 예비공돌였음에도 그 감동이 넘쳐났던 기억이 있다.

어제 문득 내 youtube feed에 이 곡이 떠서,
한참동안 이 곡을 몇번이나 다시 들었다.

이렇게 좋은 곡을 선사해준 Ennio Morricone가 참 감사하다…

기울어진다, 그러나 지지 않는다

어쨌든,
적어도 내가 판단하는바, 한국 교회는 기울어지고 있다.
미국에 있는 한인 교회도 그렇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경험하는바 미국의 많은 교회들 역시 마찬가지다.

더 심각한것은 이 기울어지는 추세를 뒤집을 방법이 없어보인다.
그리고 계속 더 추악하게, 더 빨리 기울어가게될 것 같다.

대단히 고통스럽다.

그러나,
다시한번 주먹을 불끈쥐고 결심한다.
기울어지지만, 지지는 않는다.
나는 계속 내가 할 수 있는 한, 믿음 지키며 살거다.
내가 그렇게 믿음 지키며 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다른 소리 하는 사람들 있는것을 당연히 여기고,
나는 그냥 그렇게 믿음 꼭 지킬거다.

어제밤에는 어떤 사람과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전화를 했다.
전화를 끊고 혼자 울었다.
그리곤 다시 그렇게 결심했다.

아, 전달이 잘 안된다.

요즘 갈라디아서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데,
나는 정말 엄청나게 큰 전율을 느끼며 공부를 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 교회에서
다니엘서를 가지고 설교를 몇번 하고 있는데,
나름대로 그 설교를 준비하면서 꽤 깊은 감동이 있다.
그리고 마음속에 아주 깊은 간절함도 있고.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내 안에서는 뭔가 끓어오르기도 하고,
내 안에서는 이렇게 간절하기도 한데…
이게 그렇게 막상 잘 전달이 안되는 것 같은 거다. ㅠㅠ

성경공부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도 미안하고,
주일 아침에 다른 교회보다 한시간이나 일찍 나와서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도 미안하고

내가 30대에는…
내 안에 있는 내용의 깊이에 비해 나는 참 presentation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뒤집혔다.
내 presentation이 많이 약해지지 않았다면… 내 안에 있는 내용의 깊이가 더 깊어졌다는 뜻일까? 그런데 도대체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것 같지는 않은데.

요즘 정말 죽을만큼 바쁜데…
그런 중에도 말씀을 읽는 내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뭔가를 공급해주시는 걸 보면…
그분도 정말 간절히 하시고 싶으신 말씀들이 많은 것 같다. ㅠㅠ

하나님을 초대하기

어제,
내가 이번에 민우를 보러가서 민우가 사는 삶에 들어가서 민우를 보고싶었다는 이야기를 썼다.

민우가 강의실에 걸어가는 길,
그때 민우가 바라보게되는 풍경,
밤에 터벅터벅 자기 아파트로 돌아갈때 보게되는 건물들,
식사를 할때 많이 앉게되는 자리,
민우가 밤에 누웠을때 보게되는 천장의 모습…

민우를 사랑하는 아빠의 입장에서,
나는 그렇게 민우의 삶의 모습에 나를 집어넣어 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우리 하나님도…
내 삶 속에 그렇게 들어와보고 싶어하시는 것이 아닐까.

내가 처한 상황 자체에,
그렇게 하나님을 초대하고 그분과 함께 있음을 즐기는 것… 그것이 어쩌면 더 깊은 신앙의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민우를 보고 오다!

지난 주말, 월요일까지 휴가를 내고 아틀란타에가서 민우를 보고 왔다.
이제 두달 후면 졸업을 하지만 졸업하기 전에 민우가 사는 곳에 그래도 한번쯤은 가보고 싶었다.

대학교 2학년 겨울에 COVID-19이 터지는 바람에, 대학교 3~4학년을 완전히 이상하게 보냈다.
3학년때는 거의 대부분 online class를 했고, 4학년때는 그래도 대부분 offline class를 하게 되었다.

친구를 많이 만나는 것도 아주 자유롭지도 않고, 대학때 해볼만한 다른 경험들도 COVID-19때문에 제한되는 것이 많았다.

이번에 가서 나는 민우가 공부하는 classroom에 가보고,
민우가 밥을 먹는 학교 식당도 보고,
민우가 자는 침대도 한번 보고,
민우가 다니는 길도 걸어보고…
그냥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민우는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모두 채식주의자여서 학기중에는 고기를 많이 먹지 못하고 지낸다. ㅠㅠ
그래서 간김에 민우 좋아하는 고기한번 사주고 싶었다.

….
생각해보면 그게 딱 우리 부모님이 내게 갖는 마음이겠다 싶다.
나는 15살때 집을 떠나와서 계속 기숙사에서 살았으니 우리 부모님은 더더군다나 그런 생각을 더 하셨겠지.

뭐 괜찮다…

나는 유시민의 생각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분이 생각하는 역사가 진보한다는 낙관론에는 놀랄때가 있다.

아마 그분은 결국 인본주의적 역사적 낙관론에 근거해서 생각을 하시는 것 같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생각에 근거해서…
괜찮다.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적도 있었고,
한국에서는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대통령을 하기도 했었는데 뭐.

2004년 Red Sox가 86년된 밤비노의 저주(Curse of Bambino)를 깨기전에도 나는 Red Sox의 팬이었다. 매년 Red Sox가 아깝게 패하는걸 봤었다.
아깝게 패하는거 보는거 매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니… 뭐 괜찮다.

미움이 가득한 정치

지난 주말,
오랜만에 facebook에 들어가서 어떤 말들이 쓰여있는지 보았다.

다들 난리다. ㅠㅠ
대통령선거에서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의 상대방에 대한 비방, 그리고 상대진영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비방과 조롱.

비방하고, 조롱하고, 헐뜯는 선거가 아니라,
공동체가 어떻게 함께 가야하는지를 토론하는 정정당당한 경쟁의 장이 되어야 하는 건데.

선거의 열기가 높아지면서 더 높은 수준의 토론과 논리적 대결이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한걸까.
이렇게 비난과 조롱이 가득한 시간을 반복해가면서… ‘우리가 그럼에도 하나이다’라는 명제는 점점 사라져가는 것.

정치는, 서로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civilize해서 일종의 규칙을 가지고 경쟁하도록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정치를 하면서 서로 미워하고 서로를 비난하는 것이 당연히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인정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공통점을 계속 찾아가며 그래도 우리는 하나라는 이야기를 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기독교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무리한 것일까?

진보진영의 기독교인과 보수진영의 기독교인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함께 ‘미움’과 싸운다고 손을 맞잡는 것을 보는 것은 어려울까?

어째 문제 없이 뭐가 좀 된다 싶었다…

대만 사람들이 또 엄청 큰 사고를 하나 쳤다.
이번 건 지난달에 터진 사고보다 훨씬 더 크다!

지난 금요일까지 사고터진 것을 어느정도 마무리 하고,
이번주 월,화는 나름대로 약간 평화롭기도 하고, 약간 그래도 좀 여유가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제밤에 대만에서 엄청 큰걸 터뜨렸다. ㅠㅠ

요즘 교회 소그룹에서는 매일 말씀묵상을 다들 열심히 하고 있다.
나도 그래도 함께 죽어라고 말씀 묵상을 붙들면서 하고 있다.

밥은 못 먹더라도 말씀은 보자. 뭐 그런거지.

아마도 그래서 였을 텐데,
지난번 사고친거 해결해가면서 내가 무너지지 않고, 그래도 그럭저럭 잘 해결해갈 수 있었다.
지금 레위기 묵상이라 살짝 본문도 어렵고 생각할 것도 많긴 하지만,
이번에도 죽어라고 말씀 묵상하면서 한번 버텨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