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3편

내가 개역성경을 보지 않은지는 꽤 오래되었다.
새번역을 내 주된 한글성경으로 삼고 읽은지 20년이 넘지 않았나 싶은데…
그럼에도 시편 23편을 암송할때 나는 늘 옛날 개역성경으로 한다.
그러니, 내가 시편 23편을 처음 외운 것은 적어도 20년이 더되었다는 말이다.

살면서 많이 힘들어서, 불안해서, 앞길이 보이지 않아서…
그냥 몸을 움직이는 것 조차 버겁고 힘들게 느껴질때..
어떤때 나는 차를 몰고 한밤중에 아무도 없는 공터 주차장에 혼자 차를 세워놓고 그 안에서 목이 터져라 이 시편 23편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몇번이고 암송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시라는게 믿어지지 않으니… 그렇게 하나님께 따져보는 것이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신다고 했는데, 그 지팡이와 막대기를 좀 찾아보고 싶은 절박함이었다.

그럴때마다 하나님은 응답이 없으셨고, 나는 잔뜩 쉰 목을 가지고 실망감에 젖어 늦은 밤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살아남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을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그렇게 눈물 범벅이 되어 목이 잔뜩 쉬도록 시편 23편을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외쳤던 나를 인도하셨던 것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였다.

그때는 그게 보이지 않았는데, 한걸음 떨어져서 그때의 나를 보면, 주님께서 그렇게 하고 있는 내 옆자리에 앉아서 내 어깨를 감싸고 있었음이 여기서 보인다.

내가 가서 그때의 나에게…. 조금만 눈을 들어봐. 눈을 뗘봐. 너는 괜찮아. 주님께서 네 어깨를 감싸고 계시고, 너는 여전히 그분의 지팡이와 막대기의 안위하심을 받고 있는 거야…. 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렇지만 아마도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가서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더라도, 그때의 나는 여전히 주님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문제가 주님보다 여전히 크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 시는, 다윗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때 썼던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런 순간을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주님이 함께 하셨음을 보면서 썼던 것 같아 보인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참, 신앙의 신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