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들려오는 뉴스들을 들으며…
야고보서 성경공부
이제 지난 주말로 이번 가을학기 성경공부가 절반이 지나갔다.
나름대로는 지금까지 해오던것과는 꽤 다른 형식과 내용으로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데,
새롭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 참 많다.
3 그룹에서 나누어지는 내용들이 모두 꽤 많이 다르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성경의 객관적인 해석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성경 본문의 주관적 적용에 더 중점을 두다보니 그런 것 같다.
그런 와중에 나는..
그래도 그 본문이 가지는 객관적 해석을 아주 놓쳐버리지는 않을까 전전긍긍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ㅎㅎ
다들 바쁘기도 할텐데,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게 참 감사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성경공부야말로…
정말 지역교회 등에서 되어야 하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성경공부 인것 같은데…
음….
멋진 로보트 장난감
아마 국민학교 4학년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서울로 전학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는데…
반에 꽤 잘생긴 친구가 있었다.
지금도 그 얼굴이 기억난다.
머리결도 약간 노란 색이 돌았고, 전반적으로 서양아이 같은 느낌이 있었다.
한번은 그 친구가 초대를 해서 그 집에 놀러가서 논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내가 예전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엄청난 장난감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20~30cm 정도의 키를 가진 로보트 장난감이었는데,
이게 배터리를 넣으니, 걸어가면서 불이 막 켜지고, 그러다가 가슴이 열려서 그곳에 있는 총 같은데 나오더니 거기서 막 소리가 나면서 불이 켜지는 것이었다.
내가 국민학교 4학년이었으면, 79년이었을때니…
그 당시 기술로는 그런 장난감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그 친구는 그 장난감을 나와 친구들에게 보여주면서 막 자랑을 했고,
우리는 모두 한편 신기하게, 한편 부러움에 싸여 그 장난감을 한참이나 보면서 놀았다.
이번주중에 갑자기 그 친구의 장난감이 생각났다.
그래서 혹시 지금 기술로 어떤 수준의 로보트 장난감이 나오는지를 찾아보니…
허걱… 이건 완전 차원이 달랐다.
혹시… 하나 사볼까 하는 생각에 가격을 찾아보았더니, 750불!
말도 안된다… 싶어 그만 두었다.
음….
이 나이에…. 로보트 장난감을 사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라도 했다는 것이 한편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 놀랍기도 했다.
대신 주말에는…
예전에 그렇게 좋아했던 조립식 플라스틱 모델을 하나쯤 사볼까 생각중이다.
그런데 그걸 영어로 뭐라고 하나… ㅠㅠ
Ambition
Ambition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겸손함은 아니다.
그렇다고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위한 ambition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괜찮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자신과 세상을 심하게 망가뜨린다.
가슴 한곳으로부터 불타는 소망,
그것을 향한 야망,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큰 분과 세상을 위한…
ambition없는 비겁함을 겸손함으로 치장할 일은 아니다.
Rush E
Rush E 라는 피아노 곡이 있다.
이건 사람이 치라고 만든 곡이 아니고, 컴퓨터로 연주하도록 만든 곡이다.
다음과 같다.
보면 알겠지만 정말 사람이 칠수는 없는 곡이다.
그런데 인터넷에보면 이걸 실제로 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하는 건 아니고, 사람이 치는 것이 불가능한 부분을 제외하고 하는 것이다.
그중 하나를 보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피아노 잘 모르지만 뭐 참 대단하다.
사람이 하라고 만든게 아닌데 그걸 결국 해낸다.
이런걸 보면 나는 피아노는 젓가락 행진곡도 칠 줄 모르는 사람이지만,
뭔가 좀 시원하다.
나와 같은 종인 인간이 이걸 해낸다는게 그렇다고나 할까.
나는 현대에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그렇게 좀 사는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결국 그걸 해낸다고?
아니, 진짜 그렇게 나누면서 산다고?
아니, 그렇게 회사다니고 아이 키우고 그러면서도 그걸 그렇게 한다고?
아니, 그 몸으로 그걸 해내고 만다고?
기독교적 영웅을 만들자는 게 아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게 그렇게 맥아리없이 사는 것만 있는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사람들이 좀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힘드니까 좀 주저 앉아 있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서, 힘들어도 제대로 한번 믿어보자…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좀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우리 교회 역사 속에서는 Rush E를 실제 피아노로 쳐내는 것 같이 신앙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다.
나는 그런 기독교를 믿고 있다.
Being a father
민우 생일이다.
민우는 내가 만 29살에 태어났다.
내가 어릴때, 조선시대 사람들이 10대에 결혼했다고 하면 완전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결혼은 늦게하는 요즘 20대가 보기엔 내가 29살에 아빠가 되었다는 것이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을지.
나름대로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고, 좋은 아빠가 되기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29살에 아빠가 된 나는 좋은 아빠가 되기에 충분히 잘 준비된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더 성숙해갔지만,
민우가 자라고 성숙해가는 속도를 잘 따라갔던 것 같지는 않다.
완벽한 부모는 세상이 없지만,
그러니 당연히 그 부모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자녀에게 어떤 형태로든 자국이 남을 수 밖에 없지만,
나의 미성숙함과 불완전함이 민우가 평생 가지고 가야하는 무게로 남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도 내가 부족한 아빠였던 것에 비하면 민우는 참 잘 자라주었다.
아이가 어릴때는 내가 가진 것을 더 많이 부어주어야 했었다면,
점점 민우가 자라고 어른이 되어가면서는
민우가 가지고 있는 그 자신만의 아름다운 꽃을 잘 피우도록 돕는 역할을 해주어야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내 꽃을 대신 피우는 아이가 아니라,
그 아이만의 꽃을 피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성인이 된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예전보다 더 깊은 내적 성숙을 요구하는 것 같다.
누군가는 좀 미안하다고 해줘야…
나는 이번 비극이 누구 잘못인지 정말 잘 모른다.
그러나…
정말 죽도록 힘든 세상을 살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 그렇게 잠깐 숨쉴 공간을 찾아 갔다가 숨을 쉬지 못해 세상을 떠난 것을 보며…
누군가는 좀 미안하다고 이야기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왜,
아무도 미안하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거지?
COVID-19을 잘 다루었는지
pre-print 형식으로 나온, Stanford에서 나온 논문에 따르면, 백신을 맞지 않은 상태에서도 젊은 사람들의 COVID-19 infection fatility rate이 대단히 낮다고 한다.
원래 우한 바이러스를 가정하고, 백신을 맞지 않은 것을 가정했을때도,
0-19세는 0.0003%
20-29세는 0.003%
30-39세는 0.011%
40-49세는 0.035%
50-59세는 0.129%
60-69세는 0.501%
라는 것.
그리고 전반적인 IFR은 0.07% 라고.
그래서 전반적으로는 젊은 사람들의 IFR을 초기에 지나치게 높게 예상했던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게 맞다면,
인류가 COVID-19을 제대로 다루었는가 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더 열심히?
실리콘 밸리의 회사들에서는,
전반적으로 과장이 좀 심하다.
자기들이 하는 일이 세상을 바꿀 거라는둥…
회사에서 조금만 뭐 잘하면 사용할 수 있는 최상의 표현을 써서 칭찬을 하고..
쬐끔 진척이 있으면 완전 세상을 놀래킬만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왜 그렇게 할까…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과장해서 사람들을 drive하지 않으면,
그 많은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열심히 일하도록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다들 회사에서 소위 회사의 ‘mission’이라는 것이 매우 가치있는 것이라고 다들 외치며,
하루 10시간, 12시간씩 일을 하도록 drive 하는 것.
결국 내가 회사 생활에서 가장 힘든건 그거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가치있을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하고,
어떤 회사든 그 회사의 일을 통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하지만…
회사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엄청난 과장을 통해 세뇌를 하고,
그 속에서 탐욕과 자아실현이라는 것을 추구하기위해 그 세뇌에 기꺼이 동참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도저히 그 사람들의 일부가 되지는 못하겠다.
내 신앙의 양심상 그렇게는 못하겠다.
나는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며 살기위해 노력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허락되는 한 그렇게 계속 하려고 하겠지만…
어떻게든 내 신앙 양심을 지켜가며 살아가고 싶다.
몸부림을 치고 있다.
Work, Pray, Code
아마도 금년에 내가 읽은 책중 가장 인상깊은 책으로 남게될 책일 것 같다.
Work, Pray, Code.
부제가 이 책의 핵심을 잘 말해준다.
When Work Becomes Religion in Silicon Valley
그리고..
How tech giants reshaping spirituality to serve their religion of peak productivity.
나름대로 이곳 실리콘 밸리에 살면서,
이 책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를 꽤 많은 사람들에게 많이 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이 이야기를 이해하고 알아듣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알아들었더라도 그것 때문에 뭔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 적었다.
또, 그것때문에 뭔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 결국 무슨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더 적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은 종교가 되어있는 것 같다.
아직은 이 책을 다 끝내지 못했지만, 어쩌면 이 책의 내용을 이 블로그에서도 좀 정리해서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