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

지난주 교회 예배에서 들었던 말.

“하나님께서는, 내 몸의 질병을 사용하셔서, 내가 그분에게 관심을 갖도록 해 주셨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정말 “전쟁과 같은 사랑 “이 아니겠는가.
깨어진 세상 속에서, 깨어진 사람들에게 쏟으시는 그분의 사랑.

일차원적으로 그 사랑을 이해하고 고통의 문제를 보면, 그것은 파라독스 혹은 문제거리이지만,
다차원적으로 그 사랑을 이해하고 고통의 문제를 보면, 그것은 신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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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 2 Comments

  1. 예전에 교회의 청년부 후배 자매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자매가 이야기하기를 자기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말씀이 언제나 고민거리고 도전거리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유난히 몸이 약해서 잠자는 것때문에 늘 struggling 하는 자기에게는 이 본문이 “하나님이 나는 사랑하시지 않는 것인가?”로 읽혀졌기 때문이라구요.

    그러면서 자기는 자기 육신의 약함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씨름하게 되었다고, 이 말씀이 정말 나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안에 있지 않다는 말씀인가하는 것을 고민하게 되었다고 제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고민들과 씨름들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기를 사랑하는 줄 알게되었다구요.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지만, 자신에게는 잠때문에 격는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고 깨닫는 은혜를 주셨다구요.

    ‘집사님 약해서 손해보는 것은 없어요’ 말하는 그 후배 자매에게 제가 속으로 한마디 해주었습니다.
    ‘나이좀 더 먹었다고 내가 선배 할게 아니라, 앞으로는 자매를 내 선배로 모셔야겠어요’ 라구요.
    가슴 뭉클하게 들었던 자매의 이야기가 졸개님 글과 크게 오버랩되며 떠올라 나눕니다.
    자매의 말처럼, 졸개님의 글처럼 신자에게는,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고통으로 손해보는 것은 없나봅니다.

    또 자매와의 대화를 통해 내가 얼마나 신체건강한 자의 오만함으로, 내중심적으로 말씀을 읽었는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며 스스로 부끄러웠던 기억도 나네요. (머리만 대면 자는 저로서는 시편 127편의 구절을 가지고 낄낄거리며 농담은 많이 했지만, 단한번도 불면증때문에, 혹은 다른 고통때문에, 불면의 밤을 보내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할까 생각해본적이 없거든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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