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Love Makes You Vulnerable.
사랑은 당신을 다치기 쉬운 사람으로 만든다.

사랑을 하면, 그 사랑하는 대상에게 나를 내어주기 때문에,
vulnerable 해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강해지려는 자세는,
그렇기 때문에 매우 이율배반적인 것.

그리고 또 한편,
어떤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척도는,
그 사람 앞에서 내가 얼마나 vulnerable 해지느냐 하는 것이 될수도 있다.

그 사랑의 궁극적 모습은…
다른 무엇 보다도 역시,
십.자.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처절하게 vulnerable 해지셔서,
그저 아무 저항도 없이 처형을 당하는 어린양의 모습으로 계신 하나님의 아들.

나는,
내가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vulnerable 해지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그 vulnerable 한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내가 vulnerable 하다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고 개선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지?

짧아진 출장

원래, 28일까지 출장을 다녀올 예정이었으나,
떠나기 바로 전날, 일정이 변경되어서 몇가지 일정을 취소하고 지난 금요일에 돌아왔다.

금요일 아침 9시 반에 SFO 공항 도착, (비행기 안에서 약… 3시간쯤 잤다.)
회사에 10시 반에 office 도착.
오전에 일하고,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지내고,
또 일하고,
오후에 미팅 하나,
잡일 몇개 처리하고,
민우 픽업해서 집에 와서는…

온 가족이 외식!!
사실은, 지난 2월 16일은, 나와 내 아내가 결혼기념일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첫데이트 기념일(!!)이다. 그날 비행기를 타고 휙~ 날라가는 바람에 그걸 지키지 못해서… 뒤늦게 그걸 축하. 스페인 식당에 가서 난생 처음 먹어보는 이상한 음식을 먹었다.  뭔지 잘 몰라 많이 시키는 바람에 배가 터지는줄 알았다. ㅋㅋ
(사실은 그게 16일인지 15일인지 정하기가 좀 애매하긴 하다. 15년전, 15일 밤 늦게 만나긴 했지만, 함께 있다가 용기가 없는 내가… 머뭇거리다가 자정이 좀 지난 시간에 고백을 하는 바람에… 그때야 데이트를 시작한 셈이므로…. ㅎㅎ)

그리고 나서 집에 도착하니 8시 반인가…
바로 쓰러져서 잠이 들어서는….
토요일 아침 10시반에 잠이 깨었다! 
(자그마치 14시간이나 잤다!!!!)

이제.. 오늘에야 제대로 원상복귀를 하는 셈인데…
아, 아직도 시차가 완전히 적응되지는 못한 듯 하다.

블로그 쉽니다. (2월 17일 – 28일)

오늘부터…
3월 첫째주말까지,
총 비행기를 타는 거리가 2만 마일이 넘을 것 같습니다.
(아마 3만마일은 안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블로그에 글을 정기적으로 쓰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단 28일까지는 정기적으로 글을 올리는 것은… 잠시 쉽니다. ^^ 

사랑할 여유만큼은 늘 남기고 살아야…

일상 속에서,
여러가지 바쁜 일을 manage 하면서 살아갈때,
늘 어느정도의 extra energy 여유분은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여러가지 to-do-list의 item들을 manage 하가면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것들을 해내는데 내 100%를 consume 해버리고 살면,
내 주변의 사람들의 필요를 보게되는 시각이 닫혀버리게 될 뿐 아니라,
그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할때 그 사람을 사랑할 여유가 없어진다.

늘 체력의 일정 부분, 정서적 여유의 일정 부분, 시간의 일정부분, 생각의 일정부분은,
사랑을 하도록 남겨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능력과 talent를 optimize해서 혹은 maximize 해서 살도록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고,
그 부르심의 중요한 부분은, 내게 맡겨진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그런 삶을 사는데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한 것 같다. ^^
뭐 사실 늘 이런 면에서 성공적으로 살지 못했긴 하지만서도… 

십일조에 대해… 애정남입니다~이 ^^

요~ 아래 어떤분(! ^^) 께서 십일조에 대한 질문(?)을 비밀댓글로 남겨주셨기에…
그냥 확~ 여기에 한번 저질러서 써봅니다. ^^
=====
십일조에 대한 애정남입니다~이~ ^^

저 개인적으로는요,
십일조가 신약시대에 적용되는 규례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말하자면…
다신론적 혹은 범신론적 세계관에 살고 있는 주변 민족들과는 구별되게,
유일신 야훼를 섬기도록 도움이 될만한, 눈높이 교육의 일환으로, 여러가지 규칙들을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시내산 언약 (Sinai Covenant)’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그 시내산 언약으로부터 발전된,
예수님의 새 언약 (The New Covenant)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시내산 언약에서 이야기하는 정신들은 그 당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고려해서 잘 해석하여 받아들일 필요가 있지만, 그 항목들을 그대로 지켜야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1/10을 바치도록 주어진 명령은, 신약시대에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갖고 있습니다.

다만,
그 십일조가 가지는 정신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결국…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였지요.

그러므로,
제가 생각하기에…
지금처럼 경제적 불평등과 injustice가 편만한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특히 그중에서 더 가진 사람의 경우에는…
그 재물이 정말 다 하나님의 것이라면 1/10만 틱~ 교회에 던져놓고 나머지 것을 천박한 소비주의적 욕망을 채우는데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가져야하는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물론 지역교회에서 꼭 이루어져야하는 재정적 필요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재정적으로 헌신하는 것은 무척 의미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지역교회에 다 가야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Caveat이 두가지 있습니다.

첫번째는, 심지어는 내가 십일조가 지역교회에 100% 드려질 필요는 없다… 십일조 자체가 신약 시대에는 적용되지 않는 규칙이다… 하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함께 소득의 10%를 공동체에 내자고 결의했다면, 함께 따르는 것이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서 해야할 일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moral code는 대부분, 개개인이 정했기 보다는 공동체에서 함께 정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나는 공동체에 속했지만, 그 공동체가 함께 합의한것과 나는 생각이 다르므로 그것은 따르지 않겠다…는 식으로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두번째는,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arbitrarily 자신이 헌금할 곳을 정해서 하는 경우에, 그것을 함께 점검해줄 accountability group이 없다면 여러가지 justification 과정을 통해서… 건강한 헌금의 자세가 흐트러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경우 충분히 성숙할때까지 정기적으로 소득의 10%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헌금하고, 그것을 습관화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재정관을 건강하게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어느정도의 재물을 헌금, 구제, donation, 나눔에 사용하며 살아야 하는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
‘아 이렇게 하면 약간~ 살짝~ 무리가 되네…’ 싶도록, 다만 그 비율이 최소한 10%는 넘도록 하면서 사는 것이 현실적으로 적절한 기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헌금을 하기 때문에, 내가 꼭 사고 싶은 무엇을 사지 못하는 경험을 일상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consumeristic culture에 너무 쉽게 함몰되어 버려서, 재정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근본적인 기준을 지켜내기가 너무 힘들어지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흠…
애정남처럼 쌈빡하게 bullet point로 정리는 못해드렸지만…
이제 제가 십일조에대해 생각하는 바를 그냥 좀 적어본겁니다.

동의하실수도 있겠고, 그렇지 않으실수도 있겠습니다만…

하나님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

캘빈주의자들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고,
알미니안들을 포함한 비캘빈주의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깊다.

최근 내가 생각해서 정리해 본 것.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는 캘빈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쉽게 ‘마초’ 하나님으로 왜곡하게 만드는데 반해,
그에 대비되는 인간의 연약함, 죄된 본성 등을 잘 설명하는 것 같다.

반면,
그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사랑 등을 더 잘 설명하는 데 반해,
인간에 대해 너무 많은 credit을 주어 오히려 왜곡을 발생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랜만에 나 혼자 정리해본 개똥 신학. ㅋㅋ
 

Uncomfortable Confrontation

지난 금요일,
내가 아끼는 어떤 사람에게,
이제는 매우 불편한 confrontation을 하기로 결심했다.

몇년째,
꼭 해주어야할 말을 하지 않은채, 
한편 비겁하게 피하면서,
한편 기회를 찾으면서,
한편 많이 조심하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었는데,

지난 금요일에는,
한편 ‘지금이 바로 기회이다’ 라는 판단하에,
한편 내 short-tempered character 때문에,
한편 그 사람을 더 이상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함 때문에…
그 사람과 불편한 관계가 되기로 결심했다.
 
오늘 아침부터 시작될 그 사람과의 새로운 불편한 관계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해나가는 과정이 이어지길…

Blue Like Jazz

Shiker 간사님이, 내게 강추해준 책, Blue Like Jazz. 

그 책을 추천 받고는, 당장 나는 책을 사서 읽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책이 별로였다.
(아니, 이럴수가! Shiker 간사님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단 말인가! ㅎㅎ)

그냥 자기 얘기 주저리 주저리 써 놓은 것 같았고,
뭔가 새로운 내용도 없었고…

그렇게 그 책을 읽다가 던져놓은 것이 거의 1년쯤 전이었던가. 그것보다 더 되었던가.

최근에,
다시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지난번 SF 간사모임에 오신 Shiker 간사님에게, 그책 별로더라는 얘기를 했더니만
‘그럴리가 없는데…’ 하는 표정을 지으시는 걸 보고는…
음… 내가 뭔가 miss 하고 있는게 틀림없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

그런데,
이번에 책을 읽다보니…
허억… 이런 보배가 다 있나!!! 나는 왜 이책을 그렇게 틱 던져버렸던 것일까!

아마도 내가 그렇게 쉽게 던져버렸던 이유는 대충 다음과 같았던 것 같다.

1.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없었다.
2. 너무 의도적으로(?) 비종교적인 티를 내는게 좀 거슬렸다.
3. 뭔가 요점만 딱 짧게 얘기하기 보다는 narrative로 풀어내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그 책을 appreciate 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새로운 지식을 주는 것은 아닌데, 새로운 ‘감정’을 내게 불러일어켰다.
2. 이 책을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많이 떠올랐다.
3. 전도용 책자로 정말 좋겠다 싶었다.

…..

처음 그 책을 읽었을 때에는,
어찌보면 매우 이기적이고도 나 중심적으로 그것도 매우 dry하게 읽었던 것 같고,
이번에 읽으면서는 왠지 모르게… 그것을 좀 벗어나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Shiker 간사님은 틀리지 않았다!
Blue Like Jazz… 전도용 책자로 짱인것 같다. ㅎㅎ 

Not Being Judgemental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라도… 나 같은 사람 옆에있기 좀 불편하게 느낄 것 같다. -.-;

물론, 그럴만한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무엇보다도 내가 매우 ‘judgemental’하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들을 늘 판단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일을 하다보면, (특별히 어떤 종류의 일은 더…)
적어도 현명한 판단(judge)가 요구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내가 관여하고 있는 일들은 대체로 그런 성격이 많이 요구되는 것 같다.
분석적인 사고, 전략적 사고,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도 그 사람의 장단점을 잘 파악해내는 것 등.

그렇지만 현명한 판단(judge)를 가지는 것과 판단하는 성향(judgemental)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다른 일인 것 같다.

최근에는,
내 안에서 그 judgemental한 성향이 나를 많이 해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주여…

@ 혹시 저 같은 사람에게 도움 될만한 책, 조언, 꾸지람, 한말씀… 주실 분 있으면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