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comfortable Confrontation

지난 금요일,
내가 아끼는 어떤 사람에게,
이제는 매우 불편한 confrontation을 하기로 결심했다.

몇년째,
꼭 해주어야할 말을 하지 않은채, 
한편 비겁하게 피하면서,
한편 기회를 찾으면서,
한편 많이 조심하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었는데,

지난 금요일에는,
한편 ‘지금이 바로 기회이다’ 라는 판단하에,
한편 내 short-tempered character 때문에,
한편 그 사람을 더 이상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함 때문에…
그 사람과 불편한 관계가 되기로 결심했다.
 
오늘 아침부터 시작될 그 사람과의 새로운 불편한 관계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해나가는 과정이 이어지길…

3 thoughts on “Uncomfortable Confrontation”

  1. 네, 함께 기도합니다.

    언제 한번 기회가 되면 Christianity practice와 confrontation과의 관계에 대해 한번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주로 암묵적으로 혹 가끔은 명시적으로 confrontation하는 것은 비성경적(??) 혹은 교회생활이나 신앙공동체생활에서 미숙한 행동으로 간주되어져 왔고, 그렇게 배워 왔었거든요. confronting하는 사람 = 사나운 사람, 싸움닭, 문제아 등등으로요…
    (특히나 교회의 leadership과 confront하는 경우는 알짤없죠.)

    늘 고민하고 생각하던 문제였습니다. 정말 그런가?
    언제 어떻게하면 효과적이고 긍적적 결과를 낳을 수 있도록confront 할 수 있는 것일까?
    controntion는 거의 최후의 방법처럼 쓰는데, 만약 안통하면 어떻하나? 그러면 사태가 더 악화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confrontation을 막는 이유중에 하나이기도 하구요.
    이것에도 ‘성경적인’ 방법이 있는가? 아니면 그냥 효과적인 방법만 있는가? (모든 것에 성경적이다 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옳은가 하는 생각도 들면서요…)

    졸개님의 고민과 기도에 두서없이 개인적인 궁금증을 풀어놓아서 죄송합니다.

    1. 흠…
      아주 깊은 말씀을 해 주셨군요.

      생각해보면,
      저도 사실 음…. 딱 뿌러지는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뭐 사실 ‘한 불끈’ 하는 사람이라 -.-;
      불필요한 분란을 일으키고도 남을 만한 사람이긴 한데요… ^^

      나이가 들어가면서…
      예전과 다른 모습은,
      이제는 그렇게 confrontation을 할때,
      “I don’t have THE answer” 라는 자세를 점점 더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뭐랄까 철이 들면서, 좀 더 겸손해진다고나 할까요… 아니면 힘이 빠져간다고 해야하나요…

      20대에는 젊은 혈기에,
      불끈 하면서 주먹 불끈 쥐고… 뭐 그런거 잘 했었는데요…
      이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지혜롭지도 않을 뿐더러,
      제가 그렇게 할만큼 잘나지 못했다는 것을 그나마 좀 더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무엇보다도 그 동인이 사랑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정말 사랑한다면… 심지어는 관계를 깨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confront를 할 용기를 가지게 되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만일 정말 그 동인이 genuine한, 겸손한, 사랑이라면,
      그렇게 confront하는 나를 사람들이 알아주거나 인정해 주지 않더라도 괜찮다.. 내가 모든 것을 다 풀 필요는 없다. 결국 묶인 것을 푸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그렇게 settle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요즘 좀 하고 있는 중입니다.

      혹시 제가 이 일을 겪어 가면서,
      경험 속에서 배워가는 것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배우게 되면 여기서도 좀 부족한대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늘 좋은 comment 감사합니다.

  2. 우문현답이라더니 두서없는 질문에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전혀 상관없는 질문, 제가 요즘 하고 있는 고민 하나만 더 여쭤보고 졸개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질문 올립니다.

    ‘십일조’는 성경적인가요?
    구약시대의 예식이나 생활규례와 관련한 거의 모든 율례는 다 폐지되고 정신만 남아 있는 것같은데, 오직 십일조만은 철저한 기준과 법칙이 살아 있습니다. (맞나요?)

    한국교회에서는 신앙의 잣대로 십일조를 삼곤합니다. (아시겠지만 직분을 줄때도 일차 거름막이 십일조 생활이죠.) 훌륭하신 목사님들, 교계지도자들도 거의 일치된 목소리로 십일조의 중요성을 강조하구요.
    근데 과연 신약시대의 우리에게도 십일조를 지켜야 하나요? 그렇다면, 성경적으로 왜 십일조만 구약을 뚫고 나와 신약시대에도 정신뿐 아닌 제도로 살아 있나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사실 더 궁금한 것은, 만약 십일조가 그 정신만을 기려서 교회에 필요한 재정적 필요를 내가 혹은 우리가정이 분담하는 것으로 일정액을 작정한다면, 과연 어떤기준으로 십일조에 해당하는 헌금을 작정해야 할까요? 현실적인 대안과 기준들이 없다면, 지역교회 공동체의 재정을 감당하는 일을 개인의 주관적 생각이나 이기적 욕심에 맡겨버리는 결과가 될까봐, 아니 제가 그럴까봐 걱정이 됩니다.

    애정남이 있어서 정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졸개님 애정남 아세요?)

    자꾸 질문을 여쭙는 것도 죄송하고 쑥스러워서 비밀글로 올립니다.
    빠른시간내에 답변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한가하실때 (그런때가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한번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늘,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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