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주말에 하루에 18시간 자기 신공으로 감기 몸살과 싸우는 동안,
악몽을 하나 꾸었다.

그것은, 내가 다시 박사과정 학생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
deadline이 주어져 있고, 결과가 안나오고, 나만 졸업이 늦어져서 초조해하고…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꿈을 꾸는 당시에는 꽤 긴장감 있었는데, 막상 지금은 구체적인게 별로 기억이 안난다. ^^)

가만 돌이켜 보면,
참 나는… ‘불행하다’고 여겨질수 있는 박사과정 시절을 보냈다.
그중 어떤 것은 내가 초래한 것이었고, 어떤 것은 내 의사와 관계 없이 주어진 것이었다.

지난 봄에, P 형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공감한 것이었지만,
그 기간을 지나는 도중에는 참 많이 고통스러웠고,
지금 돌이켜보면 가벼운 우울증 (depression) 증상도 경험했던 것 같다. 

건강 상태도, 정서 상태도, 지각 능력도, 인간 관계도… 정말 지독하도록 바닥을 쳤던 그런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나를 붙들어 주었던 단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 ” 이었다.

나는… 아주 고통스럽고도 기나긴 석사, 박사 과정을 지내면서,
그 하나님의 사랑 없이는 전혀 살 수 없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때로는,
악몽이 참 유익하다. ^^ 

지난 주말에 감기로…

지난 주 후반기에는, 회사에서 특별히 좀 일을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그래서, 몸이 아픈 것을 허락할 여유가 없었다.
특히 금요일 오후에 있었던 meeting은 꽤 중요한 것이었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목요일쯤 몸이 찌뿌드듯 하고 좋지 않기에,
아예 왕창 운동을 해서 instant boost-up을 시도했다.

 It worked!… but only for a couple of days.

금요일 저녁에 집에와서 쓰러져 자고나서는,
토요일 거의 하루 종일 자고,
주일 오전까지 내내 잤다.

그리고 나니까, 훨씬 몸이 나아져서 어제 저녁 즈음에는 꽤 정상 생활을 회복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몸이 아픈 것을 정신력으로 이겨내며 사는 것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그렇게 쉽지 않게 된 것 같다. ^^

주말에 아내의 병간호 받으며 잘 쉬고,
이제 또 다시 한주를 시작한다!!

My Lunch

My typical lunch.
지난 3년 정도 동안, 거의 매일 점심은 이렇게 먹었다.
햄 샌드위치, 사과(혹은 Nectarine), 그리고 afternoon snack으로 바나나 하나.

3년 이상, 거의 매일 똑같은 점심을 먹고 있는 셈인데…
하나도 안질린다. ㅎㅎ

참 좋은 머슴체질을 타고난 것 같다. 

말 안듣는 놈은 맞아야?

어제는 아침에 출근해서 영 몸이 좋질 않았다.
기침도 나고, 콧물도 나고… 몸도 찌뿌드듯 하고…

아침 미팅을 마치고, 간단한 분석 몇가지를 한 후에,
아… 일찍 집에가서 좀 쉬어야 하나…. 
생각했는데,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약간 오기가 발동했다.

흠…
아예 왕창 뛰어보자!

그래서, 점심시간에 밖에 나가서… 한시간 동안 뛰었다! (6.7 마일)

그리고나서 자리에 돌아와서 보니,
힘이 펄펄나지 않는가!
(아마도, 아침에 그랬던 것은 allergy 때문이었던 것 같다.)

흠…
말 잘 안듣는 놈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게으름에 익숙해져 말을 잘 듣지 않는 몸은, 들들볶아서 호되게 다루어야 하는 때가 있는 것 같다. ^^

모든걸 다 아시는 부모님

어릴때,
부모님은 그야말로 무엇이든지 다 아시고,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는 분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나서서 알아서 척척 다 해결해 주셨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내가 대학생일때까지도… 부모님은 내게 그런 분이셨다.
부모님이 그렇게 든든한 분이라는 믿음은, 내게 큰 정서적 안정감을 주었던 것 같다.

문득 설을 지나면서,
아버지 어머니께서 더이상 내게 그런 분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 그분들의 젊음과 지혜와 사랑이 쏟아부어져서,
내가 그분들을 out-grow 할 수 있도록 해주셨구나.

이제 민우 나이 13살,
나도 그런 아빠가 될 수 있을까.
민우도 나를 그런 아빠로 나중에 기억해줄 수 있을까. 

이게 다…

중학교 2학년때,
서울 교육청인가 어디에서 학교별로 몇명을 뽑아서, 주말에 ‘주말 과학학교’ 비스무레한것을 한적이 있었다.
나는 우리학교 대표(-.-;)로 거기에 참석할 기회를 얻었다.

그곳은, 정말 멋진 곳이었다!
물론 조금 다른 애들도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Nerd들이 많았다!
나 역시 Nerd 였던 차라… Nerd의 언어로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 정말 좋았다.
그곳에서 ‘과학고등학교’라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과학고 입학시험을 볼때는, 서울에 있는 학생들이 경기과학고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허락되었던 첫해였다.
나는 간당간당 아슬아슬하게 합격하였고 -.-;
정말 ‘이상한’ 애들이 함께 모여있는 곳에 가게 되었다.
지금은 과학고에 공부잘하는 애들이 가는 곳이 되었지만, 그때는 공부잘하는 애들이 가는 곳이라기 보다는, 별난 애들이 가는 곳이었던것 같다. 아, 물론 그중에는 공부 잘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ㅎㅎ  우리때는 IQ test 비슷한.. 창의력 검사라는 것을 입학시험에서 보았는데, 나중에 알게된 것은… 나는 다른 필기성적으로는 불합격 수준인데, 그 창의력 검사 점수가 그나마 좀 높아서 겨우 합격한 case 였다.  -.-; 

과학고에서 나는, 다른 ‘천재들’에 기가 눌려 지내긴 했었지만…
마음껏 Nerd가 될 수 있는 것이 참 좋았다.
별난 애들과 함께 별난 이야기를 나누고, 별난 짓도 해보고…

-1의 square root를 i 라고 쓰고 complex number (복소수)라고 하듯이,
1을 0(zero)로 나눈 것을 k 라고 쓰고, strange number (복기수)라고 정의하고 수학을 풀어보자는 황당한 시도를 해보기도 했고 (물론, 실패였다. ㅋㅋ)
한밤중에 친구들과 함께 학교 computer실에 몰래 들어가서, 영어 사전을 뒤져가며.. 그 당시 영어로 되어있던 adventure game을 밤새워서 깨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거의 아무런 생각없이…
K학교에 시험을 봐서 들어갔다.
(그때는, 그 학교도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았다. 내가 2회 였으니까… 뭐… 신생 지방단과대쯤 된다고나 할까. ㅎㅎ)
우아… 대학 시절은 정말 재미 있었다!!
내가 하나도 이상한 사람이 아닌… 그런 세상이었다!
시내버스 속에서, 양자역학 이야기를 친구와 열나게 이야기하다가,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고,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어 보겠다고 그 당시 unix ternimal 앞에 앉아서 ForTran으로 밤새워 프로그램을 짜는 일도 했었다.
전공 공부를 하는 것이 너무 재미 있어서, 재미로 연습문제를 풀때도 있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니고,
대덕 연구단지 모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있다가,
Nerd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M 학교에서 아주 오~래~ 공부하게 되었다. -.-;

말하자면, 15살 이후부터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나는 Nerd가 되도록 교육받아왔고, Nerd인 것이 편했고, Nerd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았다.

세상에는 모두 나와 같은 사람들만 가득하고,
다만… 그 속에서 어려운 수학문제를 좀 더 잘 푸는 사람과 좀 덜 잘푸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뭐 이런 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워낙 나와 비슷한 종자들하고만 놀다보니…
세상 사람들이 ‘정상인’ 이라는 생각을 하는게 나로선 참 힘들다. (솔직한 고백이다…. 쩝.)

어떤 사람들은, 수학, 물리를 재미있어 하지 않는다더라…
어떤 사람들은, 뭐 새로운 것을 뚝닥 뚝닥 만들어 내는 것에 흥미가 없다더라…
어떤 사람들은, 멋진 옷을 입는 것을 즐긴다더라…
어떤 사람들은, 논리 보다 ‘필’이 훨씬 더 중요하다더라…

그렇게 소문으로만 듣던… 나와 다른 사람들을 처음으로 제대로 만난 것은 내 나이가 거의 30 가까이 다 되어서 였다.
참 이상하네… 저 사람들은… 말로만 듣던… 정상인이 아닌가!

역시 Nerd인 마누라를 만났고 (그래도 내 아내는 나보다는 훨씬 더 정상인에 가깝다. ^^)
지금 7학년인 우리 딸내미는 역시 꽤 Nerd 이다.

어제는,
우리 회사에서, 비누방울이 어떻게 생기고 터지게 되는가 하는 것을 여러가지로 계산해놓은 논문을 어떤 사람과 함께 나누어 읽으면서 (아, 물론 이건 우리 일과는 무관한, 순전히 취미생활이다. ^^)
야… 이렇게 말이 통하는 직장동료가 있다는건 참 좋은 일이다… 생각을 했었는데…
그러다가 내가 왜 이렇게 되었나는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래서 이런 글도…

내가 이렇게 된것은,
모두 다… 중학교때 그 과학 캠프 때문이다. ^^

새해 결심

오늘은 설날이다.
뭐 여기 미국에서야, 설날 이야기를 한국 신문에서나 읽고 넘어가기에, 별로 기분도 나지도 않고, 내지도 않지만…

연초가 되면, 보통 blog에 거창하게,
새해의 결심들을 써놓곤 했었는데…

올해에는 다소 조용하게 그냥 몇가지 시도들을 하고 있다.
새해가 된지 거의 한달이 다 되어서, 뭔가 좀 퇴색된 감이 있지만…
그래도 설날 기념으로 대충 정리해본다.

1. 성경을 가슴으로 읽는 시간을 갖기
2. 개인 성경연구 시간, 성경 통독 시간을 늘이기
3. 다른 사람을 판단/정죄하려는 마음이 들때마다 ‘은혜’를 묵상하기
4. Short-tempered 여서 감정 조절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을 ‘passion’으로 포장하지 않기
5. 회사에서 내 시간을 희생해서 다른이들을 돕기
6. 잡담(!!!)을 생활화 하기 (특히 아내, 민우와)
7. 가능하면 수면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 적어도 6시간 반 이상 자기
8.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덜 드러내기
9. 너무 오지랖 넓게 살지 말기 -.-; (마치 나 혼자서 우주의 평화를 지키려는 듯 살지 말기)
10. 좋은 사람이 되기

내 탓이오

한국에서 내가 대학때, (대학원 때였던가?)
천주교에서 ‘내 탓이오’ 라는 스티커를 배포했던 적이 있었다.

내 생각이 어린 때여서,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스티커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가슴이 터지도록 답답한 것들을 많이 본다.
정치가 답답하고, 교육이 답답하고, 청소년이 답답하고, 무엇보다 교회가 답답하다.

(나를 포함해서)
그것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상당히 cool 해 보인다.

가령, 무상급식의 예를 들어보자.
가난한 어린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야한다는 논리,
무상급식이 사람을 spoil 시키는 복지를 만들어낸다는 논리 등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것이 이렇게 큰 이슈가 되었는가?
이제는 ‘선진국’ 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한국에서 왜 식사를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에 대한 것이 이토록 뜨거운 이슈가 되어야 하는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우리가… 내가… 우리 사회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던가.
양육강식을 정당하게 여기고, 약자를 배려할줄 모르고, 다른사람에게 손해를 입히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정당화 하며.. 심지어는 교회도, 그리스도인들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우리 사회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 논리와 생각이 모두 고스란히… ‘내 안에’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청소년들이 자살을 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가 청소년들을 그렇게 키웠다. 공부만 잘해, 친구들 배려할 필요 없어, 좋은대학만 가… 라고 우리가, 내가, 우리 사회가, 심지어는 교회도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가르쳤으니… 우리가 우리 사회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 논리와 생각이 모두 고스란히… ‘내 안에’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 사회의 리더로 여겨지는 이들의 integrity 문제,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어쩌면, 바로 내 안에 있는 그 논리와 생각을 발견해내는 일이 매우 중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웃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단순히 이웃의 문제가 아니고,
그 이웃과 엮여져 있는 우리의 문제이고, 나의 문제이다.
그 이웃을 고통으로 밀어넣고 있는 그 논리와 생각이 고스란히 내 안에 있다.

이웃, 또 다른 우리.

Generosity

헌금을 하거나, 주변에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가진 것을 나누는 것, 좋은 동기로 일하는 단체들을 돕는 일등은 참 좋은 일이다. ^^

Generosity 라고 표현하는 것을 어떻게 한국어로 바꾸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단순이 내가 더 ‘높은’ 혹은 ‘가진’ 입장이 되어서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돕는것만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가끔…
내가 생각하기에, 나보다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유익이 가도록 내가 경제적 희생을 감수했는데,
알고보니 그 사람이 나보다 훨씬 더 ‘즐기며’ 사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상한다.

우리는 어렵게 절약해서, 5-6불 짜리 점심 사먹는것도 아까워서 도시락 꼭꼭 싸가면서… 그렇게 아껴서 경제적으로 나누었는데, 그 사람은 우리가 일년에 한두번 겨우 가는 것을 생각해볼만한 고급 음식점에서 늘 풍요로운 식사를 즐긴다던가…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차를 탄다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규모있게 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만일 내 딸이 후에 분가를 해서 나가서 사는데,
내가 점심 사먹지 않고 샌드위치 도시락 싸먹으며 절약한 돈으로 그 아이가 가끔 한번씩 좋은 음식점에서 식사한다면… 그것도 그렇게 속이 쓰릴까?

물론,
책임감없이 사는 사람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는 것은 그 사람을 망치는 일이긴 하지만,
너무 쉽게 단순비교를 하면서 나보다 어떤 면에서 더 풍요를 누리는 것 같아 보이는 모습 하나 하나에 속쓰려 하는 것은,
여전히 내가 더 높은/더 가진 위치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돕는 구도로만 generosity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이웃, 또 다른 우리.

 

Moneyball

최근, Moneyball 이라는 책을 끝냈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Major League Baseball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돈으로 결과를 사는… 매우 공정하지 못한 게임을 하면서, 그 속에서 적은 돈으로, 더 smart하게 경쟁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다.

summary를 하자면,
관행, 감, 돈으로 운영되고 있던 mlb에 과학적이고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방법을 도입해서 경쟁자들을 ‘out-smart’ 한다는 내용이다.

야구 선수를 평가하고 팀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통계자료와, 그 통계자료의 파생 변수들 (derivatives)를 사용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최적화를 하는 것이다.

이런 모델을, 지금 내가 연관을 맺고 있는 여러 영역 가운데 적용을 한다면 어떤 영역일까?
여전히,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방법보다는, 관행, 감, 혹은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아직 시대에 뒤떨어지게 하고 있는 영역은?

아마도…
교회, KOSTA 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