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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과 새해 인사 드립니다~ ^^

제 부족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께,
성탄과 새해 인사 드립니다.

별로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유익한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많은 에너지를 들여 글을 쓰는 것도 아닌…
정말 그야말로 이도저도 아닌 블로그인데도, 제가 좋아하는 분들, 저를 아껴주시는 분들이 들러주셔서 저는 참 기뻤습니다. ^^

잠시라도 웃어보시라고… 여기 저희 가족이 올리는 e-card를 올립니다.
e-Card

모두들 소망이 가득한 성탄과 새해를 맞으시기 기도합니다!!

(이 블로그는, 내일부터 1월 2일까지 잠시 휴식합니다. 새해에 뵙겠습니다!)

2011년을 어떻게 정리할까?

2011년을 시작하면서 내 새해결심을 다음과 같이 적었었다.

… <좋은 사람되기>
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꾸만 지나치게 나 자신을 functional unit으로 내 스스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자꾸 반복해서 빠지는 함정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는 일은…
내가 to-do list를 accomplish 해나가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바라보고, 
이땅에서 내 삶의 목표가 doing에 있지 않고 being에 있음을 더 깊이 깨닫고 발견해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한해를 정리하면서…

정말 내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대충 다음과 같이 평가를 해본다.

더 따뜻한 사람이 되기 (C+)
더 사려깊은 사람이 되기 (B-)
더 유능한 사람이 되기 (A-)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되기 (A0)
더 참을성 있는 사람이 되기 (B-)
더 포용력있는 사람이 되기 (B0)

여전히 나는 functional unit으로는 꽤 많이 improve 한 것 같지만,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뭐 그게 한해의 결심으로 후딱 될 수 있을리가 있나.
내년에도 또… 그것도 안되면 그 다음해에도… 그렇게 계속 해보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ㅎㅎ

성탄 묵상

몇년 전 부터, 성탄 시즌에 가장 많이 묵상하게 되는 단어는,
소망(hope)이다.

그래서인지,
누가복음 2장 후반부에 나오는 시므온(Simeon)의 기도 중에서,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시는 대로 종을 편안히 놓아주시는 도다” 라는 기도가 그렇게도 마음을 울린다.

예수의 탄생과 함께, 헤롯은 유아들을 대량으로 학살했다.
예수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십대 소녀에게서 태어난, 사회적으로보면 사생아였다.
그로인해 마리아가 어쩌면 가지고 있었을 인생의 꿈이나 계획은 다 망가지고 만다.
예수의 탄생 속에서 모든 ‘영광스러움’은 하늘로부터 주어지지만, 그 영광을 받아들이는 이 땅의 요소들을 그야말로 구질구질하기 그지 없다.

왜 복음서는 이렇게 예수의 탄생을 ‘구질구질하게’ 묘사하고 있을까?

그것은,
예수께서 태어나시는 세상의 모습이 그렇게 망가진, 구질구질한, 찌질한 세상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닐까.

그 망가진 세상 속에 오셔서, 그 망가진 세상의 일부가 되어버리시는 예수의 성육신.

성탄의 시즌에,
여전히 회복되지 못한 세상을 바라보며 울고,
그러나 그 세상에 소망이 선언되었음을 기뻐하고,
그리고 그 어그러진 세상에 삶과 행동과 선포로 그 소망을 나누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접하며

김정일의 사망이,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대로 정말 ‘좋은 소식’일까.

내가 생각하기엔,
김정일의 사망이 좋은 소식이기 위해서는,
그 이후에 가능한 시나리오가 현재 상황보다 더 좋은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북한과의 모든 대화라인을 끊어버리고, 조선일보가 사주하는 방식의… “때려잡자 김정일” 식의 구호로만 대북정책을 펼쳐온 현 정부가, 과연 김정일 사망과 관련된 복잡한 외교적 상황을 다룰 능력이 될까? 김정일의 사망 자체에대해서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할 정도로 북한과의 모든 대화채널을 닫아놓은 상태인데?
(김영삼 정부때, 조문문제로 결국 남북관계 경색을 심화시킨 것은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닭짓’을 하지는 않을까…-.-;)

최근 몇년간, 그나마 인도적 대북지원 조차도 끊어버리고, 그야말로 북과 대화를 하려는 시도 자체를 모두 ‘친북’으로 몰아버린 분위기가 계속 되었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북한의 혼란기에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나 명분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일까?

극우적 성격을 가진 소위 ‘기독교인들’은,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게 해 달라고 악악거리긴 했지만,
정말 북한의 ‘사람들’을 위해 전략적 사고를 가지고, 아니 최소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나누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는데…
이제와서 무언가를 주장해볼만한 염치가 정말 있을 수 있는 것일까?

남한 내에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조차도 ‘빨갱이’로 몰아가는 조중동식 사고방식을 가진 한국의 기득권층이, 그리고 그 기득권층에 기생하고 있는 배에 기름낀 남한의 강남 기독교가…
상상을 초월하는 나눔이 요구되는 북한 사람들을 ‘우리’로 받아들일 생각을 조금이라고 해보기는 하는 것일까?

배금주의, 성공주의, 혼합주의의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남한 교회가,
목숨을 내어놓고 신앙을 지켜온 북한 교회 앞에서 우리가 너희를 위해 기도했다고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참으로 나쁜 지도자였던 김정일의 죽음 앞에서,
남한 국민으로서, 기독교인으로서… 
아무런 할 말이 없는 나 자신을 본다. 

적어도 나는 … 그래서 김정일의 죽음을 쉽게 ‘좋은 소식’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북한의 혼란이 반갑지 않다.
왜냐하면, 남한과 남한 교회는, 북한의 혼란을 받아들일….
정치적, 경제적, 사회 문화적, 영적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Ohseung’s Walk

우리 회사에서,
나는 천천히 걸어나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늘 뛰어 다니거나, 아니면 거의 뛰는 속도로 걸어다닌다. ^^
(천천히 걷는 사람과 이야기를 걸으면서 이야기를 해야할 경우를 빼고는)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내가 걷는 것을 가지고 자꾸 놀린다.

내가 샘플을 들고 뛰면 멀리서부터 사람들이 길을 비켜준다.
그러면서 응원하는 손짓을 보낸다. 무슨 달리기 선수를 응원이라도 하듯이.

어떤 사람이 좀 빨리 걸으면,
What are you, Ohseung? (뭐, 너는 네가 오승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내가 점심 시간에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적어도 운동할때만큼은 좀 더 천천히 걷지 그러냐?
이런 식으로 놀리기도 한다.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뛰어 다니는 것이 좋은 것이긴 하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정도는, ‘천천히 걷는날’을 정해서…
그날은 일을 좀 더디게 하더라도 뭔가 내 자신을 ‘slow-down’하는 날로 삼는 것이 어떨까 생각중이다.

최근 몇달 동안은,
점점 회사에서 내 걸음이 빨라져서, 나도 내 걸음을 따라가기 힘들게 느껴지기도 한다…

생존과 성공

어떤 이는 생존을 위해 일하고,
어떤 이는 성공을 위해 일한다.

생존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그것을 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절박할 수 밖에 없고, 극단적이되기 쉽기도 하다.
성공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생존이 어느정도는 확보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더 많이’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므로 절박할 필요도 없고, 극단적이 될 필요도 없다.

세상에서 훨씬 더 많은 사람은 성공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일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성공을 위해 일하는 것을… 마치 생존을 위해 일하는 것 같이 한다.
절박하면서도 극단적으로… 그렇게 일한다.

….

내가 보기엔,
세상은,
성공을 위해 일하면서 생존을 위해 일하는 것 같이 하는 사람들 때문에 망하고,
생존을 위해서 일하면서도 성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때문에 흥한다.

우리 lab director와의 대화

내가 처음 hp에 ‘입사’했을때,
나름대로 하나님께 약속했던 것이 있었다.

절대로, 승진이나 출세를 염두에 둔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특히 꼼수를 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 뜻과 반해서 윗 사람 비위를 맞추는 일이라던가, 남을 깎아 내리고 내가 높아지는 것이라던가, 정직하지 않은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등을 포함한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보면 꽤 좌충우돌 했던 것 같다. ^^

승진에 별로 뜻이 없으니… 상사에게 대드는 일도 많이 했고,
뜬금없이 상사에게 충고를 하는 어줍잖은 일을 하기도 했었다.
남을 깎아 내리고 자기를 높이려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과 공개적으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견제를 하기도 했고,
서로를 배려하는 분위기를 해치는 사람을 보면, 가서 얼굴을 붉히고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기도 했다.
(언제 한번은, 한 사람과 목청을 높이며 싸우고 있으니까, 우리 매니저가 와서 무마해준 일도 있었다.)
전략적으로 어떤 사람과 더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한번도 하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나를 알리거나 내 일을 선전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한편, 정말 최선을 다해서 모든 이들에게 최상의 것을 대해주려고 노력을 했고,
(늘 잘했던 것은 아니지만, 늘 아주 많이 노력했다는 것은 꽤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돕는 일이라던가, 격려가 필요한 사람을 격려하는 것도… 오지랖 넓게 했었다.
무례하지 않으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고, 모든이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려고 많이 애썼다.
내 성취보다 우리 그룹의 성취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우리 팀의 성취를 위해서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이든 하겠다고 마음먹고 달려들었었다. (덕분에 내가 하는 일중에 많은 부분은, 땜빵, 허드렛일, 단순노동 등이었다.)

오늘, 우리 lab director와 꽤 긴 시간 함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어찌보면 참 버릇없는 망나니같은 부하직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듯 한데…
참 고맙게도 내가 한 일과 내 자세등을 많이 appreciate 해 주었다.
최상급의 표현을 써가면서 나에 대한 감사를 표해주었다.

처음엔 좀 듣기 어색하고 거북하기도 했지만,
나 같이 다루기 쉽지 않았을 부하직원을 appreciate해주는 우리 lab director가 참 고마웠다.

나도, 그에게… 참 진심으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찌보면, 상당히 사무적이고 형식적일 수 있는… ‘연말 리뷰’의 시간이었는데,
참 서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지난 글들을 읽으며…

내가 이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대충 2008년 초 쯤 되는 것 같고,
사실상 ‘매일’ 쓰기 시작한 것이 2008년 4월인가 부터였던 것 같다.
(물론, 그보다 더 이전에 쓴 글들은 ‘날짜 조작'(?)을 통해서 처음 시작한 날짜 이전에 쓴 글로 올려놓긴 했지만.)

어느덧 “매일 글 하나” 쓰는 것이 일종의 습관이 되어버렸는데…

지난 글들을 읽으며 이런 관찰을 하게 되었다.

아주 예전에 썼던 글 (가령 5년 이상 지난 글들)을 읽어보면, 참 얼굴이 화끈거릴만큼 유치하거나, 생각이 부족하거나, 깊이가 부족하다.
그런데, 비교적 최근에 쓴 글 (3년 이내의 글들)을 읽어보면, 그 tone이나 내용이나 깊이가 대충 비슷하다.

허어… 지난 3년여동안, 내 성장/성숙이 멈춘 것인가!!!

이 설교를 들으며… 눈물이 났다.

어제 주일 예배에,
참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user friendly 하면서도, 건강하면서도, 그렇지만 너무 shallow 하지도 않은, 참 좋은  ‘강해설교’를 들었다.

이 설교를 듣고, 마지막 찬송을 부르는데…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설교 링크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풀어내어 삶으로 연결시키는 일이 일어나면,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은 전율하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