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Silicon Valley 에서는 거의 minimum wage에 가까운 수준의 월급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냥 절대적인 금액으로는 결코 적은 돈은 아닌데, 가령, 이 돈을 모아서 이 동네에서 집을 산다거나 아이를 키우면서 여유롭게 어디 여행도 즐기고 한다거나…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
우리 manager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manager가 이렇게 내게 이야기를 했다.
지금 우리 그룹을 보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느냐, 얼마나 중요한 contribution을 받느냐 하는 기준에 따라 사람들이 월급을 받고 있지 않고 있다. 나는 그게 정말 심하게 거슬린다.
(우리 manager는 매우 공명심이랄까… 그런게 많은 사람이다. 전혀 Christian은 아니고… 그렇지만 아주 마음이 착하고, 좋은 사람이다. 불의를 보면 씩씩거리면서 분노할줄도 알고.ㅎㅎ)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또 이어갔다.
우리 회사가 지금 이 고비를 좀 넘기고 나면, 당장 네 월급부터 ‘현실화’ 하면 좋겠다.
어떤 의미에서 너는 지금 exploited 되고 있다.
나는 그렇게 이야기해주는 말에 참 감사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지금 깨어진 세상 속에 살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나도 내가 일하는 만큼 충분히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렇게 함께 고생해서 만드는 우리 회사가 어느정도 궤도에 오르면,
나 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정말 공정하게 보상을 받는 회사가 되도록 하고 싶다.
회사의 높은 사람이 천문학적인 돈은 받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낮은 임금으로 부리고, 심지어는 회사에서 해고하면서 보너스를 챙겨가는 식의 구조가 아닌 정말 공정한 구조를 만들면 좋겠다. 나는 나 혼자서 조금 더 돈받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나는 그런 소망을 가지고 지금 일하고 있는 거다.
우리 manager는 이렇게 답했다.
네 말에 정말 공감한다. 네 말이 맞긴 하지만, 네가 믿고 있는 원칙을, 어려울때 지키지 않으면 ‘나중에 잘 되었을때’ 그것을 지킨다는 보장을 어떻게 할 수 있겠나. 공정하지 못한 것을, ‘장래에’ 이루려고하는 노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지금 그것을 이루려는 노력이 아니겠냐.
우리 manager와의 그 대화는, 나로 하여금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한편, 내가 하는 일을 그렇게 appreciate 해주는 것이 고맙기도 했고…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 공격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내가 그냥 받아들여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래의 이루어질지 모르는 약속을 위해, 현재의 가치를 compromise 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또한, 내 괜한 고집스러움으로… 아내와 우리 가족이 괜히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북미주에 있는 내 전공의 research school 교수들 중에서 최저임금 수준을 받고 있는데. 우리 가족은 왜 이럴까. ㅋㅋ
근데, 노력이나 공헌도에 따른 임금지급과 (i.e. 더 열심히 일한 사람이 많이 받는 것), 필요에 따른 분배 (i.e. 더 필요한 사람이 많이 가져가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정의로운 것일까? 양자택일일 필요는 없지만서도.
Ohjin 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에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게지. ^^
그런데, 바로 위의 ‘어떤?’ 님의 질문에 대답도 하거라! ㅎㅎ
앗, 깜놀 질문이네요. ^^;
제 질문에 사용된 표현 중에서 공헌도, 필요, 정의, 이 세 단어의 뜻을 어떻게 정의하고 측정하느냐가 중요할 것 같아요. 이게 “잘” 정의되고 좋은 척도를 적용하면, 두 가지의 가치 판단 방법과 가치 추구 방식이 작지 않은 교집합을 가질 수 있을 것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