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정당화될 수 없을때

워낙 후끈 잘 달아오르는 사람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가끔 뜨겁게 설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

전문 설교가도 아닌데다, 뭐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 절대 아닌데도,

도무지 이걸 좀 소리쳐 내놓지 않으면 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때가 있다.

대개 이런 것은 ‘시즌’을 좀 타는 편인데…

어떤 시즌에는 한주에도 그렇게 설교할 거리가 마구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하루만에 거의 6개월 분량의 설교 개요가 쏟아진 적도 있었다.

90년대 중반쯤 부터 이런 증상(?)이 있었으니 벌써 15년 넘게 그런 경험을 하는 셈이다.

처음 그런 passion에 사로잡혔을때, 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외치라고 하시는 것인줄 알고, 정말 막 질렀었다. 여건이 허락되지 않으면, 하다못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혼자 기도하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많은 경우 그럴때 내가 내 ‘성깔’ 대로 그것을 팍~ 질러버리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내게 passion과 함께 insight를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시는 때가 있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것에 감사한다.

그러나, 그럴때마다 그것이 모두 성령에 이끌리는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에 극도로 조심해야 하고, 

심지어는 그것이 성령님께서 하시는 것이라 하더라도, 좀 더 깊이 곱씹고, 살을 붙이고, 내 말 속에 녹아 있는 독소를 제거해야하는 작업을 길게 해야할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냥 그것을 쏟아내면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는 것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망가지게 된다는 것도.

열정은 귀한 것이지만, 열정이 정당화될 수 없을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적어도 내겐 꼭 필요한 것 같다.

Control Freak (4)

한동안…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비뚤어진 동기와 애써 싸웠던 적이 있었다. 대략 3-4년 정도 그것에 매달려 정신없이 싸웠던 것 같다. 그 과정을 지나고 나서, 내가 사람들로부터 받는 인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와진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비약적인 도약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기간 동안에는, 그것이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내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는 동기가 조금이라도 섞여있다 싶으면 아예 그 일 자체를 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오바해서’ 내 비뚤어진 성향과 싸웠었다.

또 한동안…

내가 ‘성공’ 혹은 ‘성취’라는 우상에 매달려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비뚤어진 동기와 애써 싸웠던 적이 있었다. 대략 2-3년 정도 그것에 매달려 정신없이 싸웠던 것 같다. 그 과정 중에서, 내가 성공을 목말라 하는 근원에 사람들로부터 받는 인정이 있음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 더 열심히 힘을 냈던 기억도 난다.

악을 박박 써가며 (literally) 소리 질러 기도했었다 성공이라는 우상에 집착하고 있는 내가 그 족쇄로부터 놓이게 해 달라고.

그 기간 후반부에는, 내 커리어와 관련해서, 다소 radical한(?) 결정을 내렸고, 그제서야 어느정도 그 싸움이 일단락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

나는 몹시도 judgmental하고, 편협한 내 모습과 싸움을 시작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그 judgmental한 것과 control freak의 내 나쁜 성향이 아주 organically 연결되어있음을 발견하게 된 듯 하다. 그리고 나쁜 잡초의 뿌리는 다른 잡초들(조급함, 화를 참지 못함, 용서 못함… 등)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어쩌면 몇년에 걸쳐, 이 싸움을 좀 더 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편 위축되기도 하지만, 한편 기대가 된다!

Control Freak (3)

Control Freak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의 근원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나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비뚤어진 ‘우월감’이다.

Typical한 예를 들자면 이런것이다.

운전을 10여년 잘 해오던 어떤 사람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차선을 바꾸기 전에 깜빡이를 켜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새롭게 깨달았다고 하자. 예전에는 차선을 바꿀 때 깜빡이를 켜지 않을때도 있었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매번 매우 철저하게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꾼다.

이것 자체로는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한 practice를 생활화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control freak이라면 이것에 대해서 이렇게 반응한다.

일단 깜빡이를 켜는 것이 차선을 바꿀때 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가 된다. 심지어는 사이드미러등을 동원해서 옆 차선을 미리 살피는 것 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쩌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면 죄책감을 갖는다. 그래서 그 다음에 차선을 바꿀 때에는 깜빡이를 켜는 것에 더 많이 집착한다.

뿐만 아니라,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는 사람들이 눈에 뜨이기 시작한다. 예전엔 신경도 안썼는데…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아니 저렇게 깜빡이도 안켜는 족속들이 있다니… 정죄하기 시작하고, 그런 사람들이 미워진다. 

어쩌다 친구중에서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다시 평가한다.

깜빡이를 켜는 문제로 부부싸움을 한다. 세상에는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꾸는 좋은 사람과,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는 나쁜 사람의 두 부류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뭐 좀 과장을 하긴 했지만 이 과정 속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그 사람 안에 있는 ‘우월감’이다. 깜빡이를 켜는 것을 깨달은 사람으로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그 사람을 바꾸거나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기도 하다.

나는…. 전형적으로 이런 종류의 control freak인 것 같다. -.-;

내가 이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내 안에 있는 비뚤어진 우월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물론 소중한 것일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이차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다.

가령 어떤 사람은 사이드미러를 통해 옆 차선의 상태를 잘 살피느라 미처 깜빡이를 켜는 기회를 놓쳤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옆 차선을 잘 살피는 것과 깜빡이를 켜는 두가지의 ‘가치’ 사이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른 것보다 반드시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재고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물론…

늘 그렇지만…

비뚤어진 우월감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은혜’ 이다.

내게 주어진 것이… 내게 값없이… 주어진 것이라면…

내가 deserve 하지 않은데 주어진 것이라면…

나는 내가 정죄하는 어떤 사람보다 결코 더 우월할 수 없다. 너무나 자명한 논리적 결론이다.

Control Freak (2)

내가 Control freak 이라는 새로운(?) 인식은, 나로하여금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사실 최근들어 몇가지 내 마음 속에 있는 이슈들로 씨름하고 있었다.

그중 몇가지는 대충 다음과 같다.

judgmental한 것, 겸손하지 못한 것, 진실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 내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 삶의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 바쁘게 살면서 서두르거나 조급해하는 것, 다른이들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 등등…

내 성품 내에서 이런 이슈들이 자꾸만 드러날 뿐 아니라, 이것들이 쉽게 다스려지지 않아서 나름대로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control freak이라는 사실을 곱씹어 보면서, 위에 열거한 내 문제들이 사실 서로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어떤 의미에서보면 한가지 뿌리에서 나오고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예 이번 기회에 매일 조금씩 생각을 정리해가며…

자가진단을 좀 해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control freak이 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결국 내가 control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매우 고질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다.

유학생활을 거치면서…

참… 지긋지긋할만큼… 뜻대로 공부하는게 잘 풀리지 않는 것을 경험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많이 좌절하고 절망하면서…

나름대로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가 생겼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17년 전, 유학생활을 막 시작하려할때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을 비교해보면, 하나님에 대한 많이 깊어진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 자신을 자꾸만 추스려 세우지 않으면 control freak이 자연스럽게 되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그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도 충분히 체득되지 못했다는 것은 아닐까.

아직… 나는… 갈 길이 먼 듯 하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 모습과 정말 적극적으로 싸워야 할 것 같다.

Control Freak

우리 lab manager는 control freak 이다.

뭔가 중요한 issue는 자신이 꼭 알아야 하고, 자신이 그 decision making process에 involve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control freak과 함께 일하는 장점은,

내가 쉽게 그 사람의 passion(?)에 살짝 업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워낙 열심히 하니까, 그 사람의 방식을 accept 하기만 하면, 매우 편하다.

그렇지만 control freak과 함께 일하는 단점은,

그 사람의 style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몹시 불편하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 lab manager는, 매우 ‘순화된’ control freak이다. 

설사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가며 control freak으로서 안절부절한다고 하더라도,

대외적으로는 무척 평온을 잘 유지하는 편이다.

그리고 절대로 그러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boundary를 넘어서는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

나도 역시… 매우 심한 control freak이다.

어제 내 아내와의 대화 속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

나는 냉장고 속에 어떤 재료가 expiration date이 얼마나 남았다 하는 것을 빠삭하게 알고 있지 않으면 속이 편하지 않은 타입이고… 그래서 뭔가 잘 organize가 되지 않으면 씩씩 거리며 냉장고 정리를 하곤한다.

내 아내는, 내가 그런 일에 신경써주는 것은 고맙지만, 너무 그렇게 control freak으로 달려들면 intimidate 된다고 얘기해 주었다.

쩝…

내가 control freak임을 잘 인정하고, 그것이 나와 다른이들에게 파괴적으로 다가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정말 필요한 것 같다.


앞으로 얼마동안,

우리 lab manager와… 이런 얘기도 한번 나누어 봐야겠다.

아니, 당신은 몹시 control freak인게 분명한데… 어떻게 수위조절을 그렇게 잘 하냐고.

괜한 짓을 했나? (미주 두란노와 주고 받은 이메일)

요 아래는, 내가 최근에 미주 두란노와 주고 받은 이메일의 내용이다.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방식으로 미주 누란노가 spam을 뿌렸기에, 반응을 보였더니… 내게 답장을 해왔다. 그래서 또 다시 comment를 해서 보냈다.

=====

이메일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다시 써서 보내주신 이메일에서도
일종의 편향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나꼼수의 내용에
동의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떠나서, 그것을 기독교
폄하로 몰아가는
것은 대단히 shallow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압력집단이나
정치적 이익집단으로
변질될수록, 복음의 영광은
흐려졌던 것이
역사속에서 매우
일관적으로 드러났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에스더 기도운동과
같은 대단히 정치적으로
치우친 (그래서, 복음적인 범주를
넘어가버린) 사람들의 글을
그대로 퍼나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렇게 기독교인들이
이익집단/압력집단이 되면 반대의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영영
복음으로부터 멀어져버리게
됩니다.

 

정말 정치적으로 민감한
어떤 이슈에대해서 의견을
개진하고 기도를
요청하는 등의
행동을 하려면, 실제로 복음적
세계관과 정치
등에 대한 제대로된 성찰을
바탕으로
것이어야지, shallow (죄송합니다. 이런 표현을 써서) 아이디어나 의견을
가지고 그것을
복음적 입장인양
옹호하게 되면, 스스로 복음의
능력을 제한하게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일 김용민전도사 막말에 그렇게
반응을 했다면, (전도사라고 지칭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신학교를 졸업했으니…)

이명박장로 부정과 편법에도
기독교계가 금식기도
하고 해야 옳다고 봅니다.

 

역시, 두란노 서적의
책들을 통해
신앙 성장에
유익을 얻었던
사람으로서, 두란노를 아끼는
마음에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메일이 무례하다면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미주 두란노명의로 보내진
원래 이메일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무례하게 느껴졌을
같습니다.

 

In Him,

권오승 드립니다.

 

 

 

From: durannola [mailto:durann***.com]
Sent: Tuesday, April 17, 2012 5:56 PM
To: woodykos
Subject: Re: [4.11
총선 D-1]지금, 기도가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woodykos님께.
보내 드린 메일이 불편하게 한 점에 대해서는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요근래
나는 꼼수다라는 인터넷 방송 매체가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력을 우려해 오고 있었고,

한국을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중보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일부에서 퍼뜨려지고 있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수준의 누룩이
정치적인 날개까지 달고 퍼져가지 않도록
그리스도인들이 한마음으로 막아서야 한다는 절박감은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목적은 아니었는데,
오해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점, 넓은 아량으로 양해해 주십시오.

의견을 담은 답장 보내 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 드림.

2012 4 11일 오후 8:03, woodykos <w*****m>님의 말:

이런식의 편향된
정치적 message 성경적 복음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이런 정치 이메일 리스트로부터
빼주십시오.

대단히 실망스럽습니다.





 

From: durannola [mailto:duranno*****m]
Sent: Tuesday, April 10, 2012 5:04 PM
To: undisclosed-recipients:
Subject: [4.11
총선 D-1]지금, 기도가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4.11
총선을 앞두고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는

우리의 대한민국을 위해서 함께 기도의 마음을 모읍시다.

에스더기도운동 <7000esther@hanmail.net>에서 보내 온 메일을 전달드립니다.
*** 드림.

만일 이 메일을 받기 원치 않으시는 분은 메일로 답신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


샬롬!

 

4.1(주일)
~ 11
() 매일 저녁 7 30부터 기도하는 11일간의 4.11
총선 특별 기도회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어제/9() 오후 3시에는  노원구 김용민 선거사무소 앞에서 김용민과나꼼수가 모독한 찬송가를 원곡으로 주님 앞에 올려드렸습니다.  (메일 하단에 관련 기사를 첨부했습니다.)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말로 모욕당한 주님의 이름 앞에 반응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낮아진 마음으로 찬양 받기
합당하신 하나님
, 한분께 찬양과 경배를 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역사하실 것을 신뢰합니다.

 

총선을 위한 마지막 사력을 다하는 기도로 어제(9, 월요일저녁 6시부터 선거가 끝나는 수요일(10)
저녁 6시까지 48시간 동안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이번 금식기도와 역사를 움직이는 기도와 금식이 될 줄 믿습니다!

 

오늘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철야기도 하셨던 주님을 본받아 선거 전 마지막
철야 기도회가 진행됩니다

오늘밤
11
시부터 내일 새벽 3시까지 진행되는 4.11 총선을 위한 특별철야금식기도회
에 회원분들의 동참을 요청드립니다.

(일시: 4/10()
11
새벽3, 장소: 에스더센터, 말씀: 김에스더 선교사/북한사역)

온전한 금식이 어려우신 분들은 형편이 되시는 대로, 지방에 계셔서 철야기도회
참석이 어려우신 분들은 계신 곳에서
 한국교회와 조국을 살리는 같은 마음의 기도를 올려드리길 원합니다.   

 

내일(11, 수요일), 선거 당일은 오전에 선거를 마치고 함께 모여 오후 3 – 6시까지 총선의 마지막까지 총력을
다하는
 기도를
할 것입니다.
인터넷 여론(SNS : 트위터, 페이스북 등)이 선거 당일까지 투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선거가 끝나는 시간까지 기도의 자리를
지켜야 하겠습니다
.

 

이후 6시 금식이 끝나고 함께 죽을 드시고 수요일 오후 7시부터는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수많은 중보자분들의 관제와 같이 온 마음과 몸을 드린 기도의 산제사를 통해 이번 4.11 총선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이뤄질 것을 믿습니다주님께서 이미 이루신 승리를
우리의 믿음의 기도로 이 땅 가운데
 온전히 드러내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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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찬양’ 김용민 후보, 찬송가는 이렇게 경건히 부르세요”…
‘온전한 찬양’ 특별예배


 



 


9일 오후 3. 기독 청년과 교인 300여명이 서울 공릉동 김용민(38·노원갑) 민주통합당 후보의 선거사무실 앞에 모였다. 김 후보를 비롯한 나꼼수 진행자들이 개사해 부른 찬송가 7곡을 모두 원곡 그대로, 바른 찬송가로 부르는 특별 찬양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거룩한 대한민국을 위한 기도회’란 이름의 이날 예배는 단정한 복장의 참석자들이 기도와 설교, 찬양, 축도 등 전통예배 형식으로 드렸다.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도 김 후보를 심판해야 한다며 하나둘 함께 했다
. 통성(합심)
기도가 한동안 이어졌다.



김 후보는 나꼼수 진행자들과 함께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270,
통일 214)를 ‘닥치고 닥치고 닥치고 정치를
읽겠네’로 바꿔 불렀었다
. 또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259,
통일 193)를 ‘MB 각하 여러 가지 죄악을 그대는 알고서 믿는가’로 개사해 불렀다.



기독청년연합 일동은 찬양예배가 끝난 뒤 성명을 통해 “찬송가를 이렇게 개사해 부른 것은 가히 ‘종교 탄압’ 수준”이라며
“이런 편향된 종교 기준을 가진 후보가 국회의원 후보로 나온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



예배에 참석한 전국 30개 대학 남북대학생연합 회장 강철민(경기대 4)씨는 ‘나꼼수’가 허위 사실들을 ‘재미’로 포장해 방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2, 30
대 청년들을 선동하는 ‘꼼수’가 있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강씨는 같은 뜻을
가진 기독 청년들을 모아 ‘나꼼수’ 방송 반대 운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이날 참석자들은 4·11 총선을 앞두고 국민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는 정치가가 뽑히려면 기독교 유권자들의 신중한 선택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에스더기도운동본부
이용희 대표는 “기독교 유권자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 땅 위에 정의를 하수처럼 흐르게 할 하나님의 뜻 품은 정치인에게 투표해야 한다”며 “특별히
함량 미달과 교회를 공격하고 반기독교적인 후보에겐 절대 표를 던져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추억?

오랜만에 학회때문에 보스턴에 간 마누라가, 사진을 찍어서 보내왔다.

그리움… 그런게 많이 담겨 있다.

우리가 데이트하던 시절, 내가 살던 집이라고 마누라가 찍어 보낸 사진. 대충 모양이 비슷하긴 하지만 사실은 엉뚱한 집을 찍어 보냈다. ^^ 

보스턴에서는… 100년 넘은 낡은 집에서 살곤 했다.

거실 바닥이 기울어져 있고, 비가오면 지붕이 새기도 했고, 창문은 빡빡해서 한번 열고 닫으려면 연장을 써야하고, 걸어다닐때마다 삐걱 소리가 나는 그런 집이 우리의 신혼집이었는데… ㅎㅎ

이 사진은, 내 옛날 실험실로 향하는 계단/문을 찍은 것.

지금은 내 지도교수가 은퇴해서 아마 다른 교수의 실험실이 되었을 것이다.

화공과 건물에 내 office가 있었고, 내 아내는 화공과 학부를 나와서… 66동은 우리 둘의 추억이 모두 함께 있는 곳이다. 바로 옆쪽 비상 계단 지하는, 내가 혼자서 기도하고 싶을때 몰래 잠적하던 장소였는데… 아… 거기서 참 많이 가슴을 치며 울며 기도했었다.

우리는 food truck에서 밥을 사먹는걸 참 좋아했다. 3불이면 이면 든든한 점심을 먹을 수 있었으므로. 학교식당도 너무 비싸서 이런것을 참 즐겨 먹었다. 

베트남 아줌마가 파는 국적 불명의 닭고기 요리에, 매운 마늘 소스를 잔뜩 쳐서 먹었는데…  Spicy Thai Chicken, General Gao’s Chicken, Thai Peanut Chicken, Teriyaki Chicken…

우리가 늘 사먹던 그 food truck은 찾을 수 없었고, 대신 비슷한 것을 찾았다고 반가워 하면서 이 사진을 보내왔다.

Hayden Science Library에 가면, 졸업생들의 졸업논문들을 다 찾을 수 있다. 마누라가 거기서 내 thesis를 찾아본 모양이다. 그러면서 써서 보낸 말. “가짜 박사 아니네?”

나와 내 아내의 주된 데이트 장소는 주로 ‘컴퓨터실’ 이었다. -.-;

Athena cluster 라고 불리우는 MIT의 컴퓨터실은 campus 곳곳에 퍼져 있는데… 나란히 terminal을 차지하고 앉아서 computer를 쓰는걸 나름대로 낭만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리는 진짜 nerd couple이었는데… 사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ㅎㅎ (이 사진은 그냥 internet에서 찾은 것)

마누라도 없고…

마누라가 학회를 떠났다! (어제 밤 red-eye flight으로 동부로 떠났고, 토요일 밤에 돌아온다.)

나는, 뭐가 제일 아쉬울까?
마누라가 없으니 불편하다? – 이건 아니다. ^^ 오히려 편한것도 있다! ㅎㅎ

마누라가 걱정된다? – 이건 쪼금… 게다가 가는 비행기편이 red-eye 여서… 첫날 피곤한걸 어찌 견딜꼬… 싶다.

마누라가 보고싶다? – 음… 뭐 막 보고싶다고 표현할 감정은 딱… 아닌 것 같은데…

심심하다? – 바로 이거다!!! 마누라가 없느니까…. 심심하다!!!! 그리고 허전하다.

쩝.

토요일 밤에 마누라 돌아오면,

막 못살게 굴면서 놀아야겠다. ㅎㅎ

타산지석

내 facebook ‘친구’ 들 중에서는 좀 유명한 분들도 계신다.

나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경우에만 친구를 맺는데, 어찌어찌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

그중 어떤 분들은 꽤 열심히 페북 활동을 하시는데,

많은 경우 그분들이 쓰신 글에는 쭈루룩 그 글에 공감하고 그 글을 칭찬하는 댓글이 달리기 마련이다.

‘목사님은 한국 교회의 희망이예요’

‘당신같은 분이 한국에 한사람만 더 있었다면…’

‘이 글을 읽고 이틀을 울었습니다’

뭐 이런식의 글들.

그야말로 팬들이 쓰는 팬레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분들이 대개는 아주 훌륭한 분들이다.

그렇지만… 만일… 그분들이 늘 듣는 소리가 그런 것들이라면?

그런 칭찬 99%에 반론 1%를 들으면… 그 반론 1%를 이야기하는 놈들이 이상한 놈들이야 이럻게 생각하고 넘어가게 되지 않을까?

주변에서 쓴소리하는 사람이 없다면?

혹은… 그런 공감을 듣고 싶어서 페북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면?

….

우선, 대형교회 목회자, 유명인, 권력을 가진 사람 등등이 왜 그렇게 망가지기 쉬운가 하는 것을 쉽게 그려볼 수 있는 anecdote가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또 하나는…

내가 이 블로그를 하는 동기도 그런 것은 아닐지?

가만히 보면…

내 글에도, 제대로 맞장뜨는 반론을 쓰는 사람들이 참 많지 않다.

물론 이게 내 개인 공간처럼 보일 수 있으므로 다른이들이 와서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적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서도…

유명인들의 facebook comment들을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삼는 지혜를 가져야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