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rol Freak (3)

Control Freak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의 근원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나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비뚤어진 ‘우월감’이다.

Typical한 예를 들자면 이런것이다.

운전을 10여년 잘 해오던 어떤 사람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차선을 바꾸기 전에 깜빡이를 켜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새롭게 깨달았다고 하자. 예전에는 차선을 바꿀 때 깜빡이를 켜지 않을때도 있었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매번 매우 철저하게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꾼다.

이것 자체로는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한 practice를 생활화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control freak이라면 이것에 대해서 이렇게 반응한다.

일단 깜빡이를 켜는 것이 차선을 바꿀때 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가 된다. 심지어는 사이드미러등을 동원해서 옆 차선을 미리 살피는 것 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쩌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면 죄책감을 갖는다. 그래서 그 다음에 차선을 바꿀 때에는 깜빡이를 켜는 것에 더 많이 집착한다.

뿐만 아니라,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는 사람들이 눈에 뜨이기 시작한다. 예전엔 신경도 안썼는데…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아니 저렇게 깜빡이도 안켜는 족속들이 있다니… 정죄하기 시작하고, 그런 사람들이 미워진다. 

어쩌다 친구중에서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다시 평가한다.

깜빡이를 켜는 문제로 부부싸움을 한다. 세상에는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꾸는 좋은 사람과,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는 나쁜 사람의 두 부류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뭐 좀 과장을 하긴 했지만 이 과정 속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그 사람 안에 있는 ‘우월감’이다. 깜빡이를 켜는 것을 깨달은 사람으로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그 사람을 바꾸거나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기도 하다.

나는…. 전형적으로 이런 종류의 control freak인 것 같다. -.-;

내가 이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내 안에 있는 비뚤어진 우월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물론 소중한 것일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이차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다.

가령 어떤 사람은 사이드미러를 통해 옆 차선의 상태를 잘 살피느라 미처 깜빡이를 켜는 기회를 놓쳤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옆 차선을 잘 살피는 것과 깜빡이를 켜는 두가지의 ‘가치’ 사이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른 것보다 반드시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재고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물론…

늘 그렇지만…

비뚤어진 우월감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은혜’ 이다.

내게 주어진 것이… 내게 값없이… 주어진 것이라면…

내가 deserve 하지 않은데 주어진 것이라면…

나는 내가 정죄하는 어떤 사람보다 결코 더 우월할 수 없다. 너무나 자명한 논리적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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