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초 였던가,
일본에 출장을 가 있었는데,
신깐센을 타고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내 머리 속에는 이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아니, 도대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
‘세상’이 아니라 ‘나’ 말이야.
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것,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 등등은 논리적으로 잘 파악이 되는데,
갑자기… 그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희미하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괴로웠다.
하나님께서는, 피조세계를 사랑하시긴 하지만, ‘나’라는 개인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으신 것은 아닐까.
뭐 ‘나’라는 개인이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께 크게 손해가 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하나님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
말하자면,
내가 모래성을 멋지게 만들어 놓았다고 하자.
그 모래성을 참 좋아하고, 어쩌다 그것이 망가지면 안타까워할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안의 모래 한알 한알에 어떤 애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뭐 비슷한 논리였다.
뭐 여러가지 논리적 전개를 통해,
나름대로 성경 여기 저기를 뒤적이며,
그리고 내 개인적인 ‘체험’을 되새기며 그 의심이 많이 가셔지긴 했었는데…
그때 얻은 교훈은 이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님께서 ‘세상’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예수님의 사랑이 바로 ‘나’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디 정말 중요하다.
성경을 사유화(privatize)해서 읽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성경읽는 방법이다.
그리고, 흔히 사유화해서 읽어내는 성경 본문의 대부분은, 사람들이 아전인수격으로 잘 못 해석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 주간에…
그런 사유화의 오류의 위험을 무릎쓰고라도,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더 깊이 마음에 담아보고 싶다.
예수께서 처절하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그 순간, 하나님의 마음과 시선이 ‘나’에게 머물렀음을 마음에 더 담아보고 싶다.
결국 나는,
하나님의 그 사랑이 정말 중요한 사람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