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아땅님이 댓글을 써서 올리셨는데, 함께 생각해보기에 좋은 내용인 것 같아 허락을 받아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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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코스타 주강사님들 마르바 던 교수님과 김병년 목사님 말씀 기대합니다. (참석은 못하지만 음성파일로라도 들을 수 있기에^^)
근데 두분 글들을 읽으며 들었던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개인에게 책임이 돌려지는 ‘약함의 문제’였습니다
마르바던이나 김병년 같으신 분들은 거의 틀림없이 한 개인에게 귀책되지 않는 사유로 약함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개인적 육신의 질병, 그리고 가족의 아픔으로 찾아오고 감당해야 했던 어려움과 아픔의 일들이었죠. 이런 것들은 제럴드 싯쳐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하우워워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분들도 비슷한 상황을 걸어갔고 그것을 다양한 측면에서 나눠주셨던 것 같습니다.
근데, 제가 가진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개인으로 책임을 돌리는 문제들에 대해서, 그것에 귀인한 약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말씀하신 게으름과 개인의 잘못된 선택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런 사유는 니가 책임져야 하는 consequence예요.’ 라고 말해야 하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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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지는 첫번째 포인트는, 흔히 우리가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개인의 consequence로서의) 약함이 진짜 개인의 책임으로만 간주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머리 나쁜 사람에게 “넌 머리가 나쁘니까 니가 그 결과를, 그 짐을 평생 지고 가야 한다, 머리 나쁘니까 가난하게 살아라.”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 “ 넌 머리가 좋으니까 잘먹고 잘사는 것이 당연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머리가 좋고 나쁜것이 바꿀수 없는 선천적 요인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개인이 바꿀수 없는 생래적 요소에 대해서는 그 책임과 결과를 개인에게 물을 수 없다라는 것이 어느 정도 합의된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으름에 대해서는 어떤가 생각해봅니다.
게으른 사람에게는 “넌 게으르니까 니가 그 결과를, 그 짐을 지고 평생 살아야 한다. 게으르니까 가난하게 살아라” 음…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은연중에 동의합니다. 그걸 부드럽게 말하면 ‘각자가 뿌린 씨앗의 consequence니까…’ 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게으름 혹은 삶의 태도는 은연중에 선천적인 것이 아니고, 그리고 게으름과 부지런함은 언제든 노력하면 바뀔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기에 그러한 이야기가 가능한 것 같습니다.
진짜 그럴까? 이런 한 개인의 삶에 대한 태도도 개인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는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그럴수 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 산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가운데 처한 사람이라면, 어떠한 삶의 목표나 동기도 주어지지 않는 가운데 있던 사람이라면, 그래서 그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가 그렇게 굳어진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개인에게 “니가 책임져야해, 넌 게으르니까” 라고 말하는 것이 정당한가?
그가 그런 게으름 때문에 약함 가운데있게 된 것이라면,
우리가 말하는 “약함의 신학”에서는 ‘미안하지만 당신을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당신의 게으름 때문이거든요.’ 라고 말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들이 막 머리속을 돌아다닙니다.
(물론 저도 모.든. 못남과 어그러짐을 사회나 시스템의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들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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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모든면에서 뛰어나고 탁월한 분들이 격는 ‘약함’을 들으며,
혹시 이 약함의 고백이 사실은 (저자들이나 강사님들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없이) 또다른 강함을 추구하는(보여주는) 메세지로 들리지 않을까
(e.g. 이런 분들 스토리는 TV에 나와도 정말 많은 분들에게 감동을 줄 것 같거든요.
##(개인이 가진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와 인내와 노력과 인격으로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아무개… 그분 참 훌륭하다.)
또 지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과는 어디서 접점을 찾을까 고민하다가 대답도 없는 곳에서 해메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렇게 탁월하지 못하고 제가 격는 많은 약함들이 저에게 귀인하거든요…-.-; )
뭔가 귀한 내용을 써 주셨는데…
제가 아무 댓들도 달지 않는건 예의가 아닌 듯 하여… ㅋㅋ
(사실은 그런데 제가 충분히 좋은 댓글을 달만큼 생각이 무르익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번 되는대로 써보겠습니다. ㅎㅎ
1. 연약함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문제에 대해서.
뭐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여기에도 일종의 balance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한편 개인의 연약함을 품어주는 일이 필요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개인의 ‘잘못’이 수정되어가는 과정도 필요한 것이라는 겁니다.
“게으름”을 예로 들어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게으름이 어떤 경우에는 그저 개인적인 성격이 그런 성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반면,
어떤 경우에는 분명히 그것이 ‘게으름’이라는 ‘죄’의 영역에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겠습죠.
그런데 문제는 어떤 사람이 게으르다고 할때, 도대체 이걸 그 사람의 성향이라고 봐야 하는지 아니면 그 사람의 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하는지… 이게 대부분의 경우에는 모호한겁니다.
어떤 연약함을 개인의 책임, 개인의 죄의 문제로 무조건 돌리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만….
현대교회에서는 pendulum이 그 반대쪽에 가 있는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현대 교회에서는… 죄를 죄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그것을 improve할 혹은 품어주어야할 것이라고만 덮어버린다는 겁니다.
(이게 뭐 아주 sensitive한 문제여서… 저도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무엇을 죄라고 이야기할때에는…
그러니까 그거 죄야, 너는 죄인이야…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 하나님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
그것이 마치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같이 선포되고 나누어지는 와중에….
게으름 같은 죄의 이슈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다루어지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이건 지금 이야기하는 것과는 좀 다른 이슈이기 때문에… 여기선 이렇게만 쓰죠.)
2. 탁월한 사람의 ‘약함’이 자칫 ‘강함’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아주 깊이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크리스찬 circle에서도 정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지요.
그렇지만 이것도 역시 일종의 balance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긴 합니다. ^^
가령 Marva Dawn을 예로 들면요,
이분은 정말 온몸이 다 종합병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건강이 좋지 않으시죠.
그렇지만 이분은 아주 탁월한 신학자이자 영성가이십니다.
이분은 어떻게 보면…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혹은 자신의 연약함을 딛고 일어나서…. 위대한 신학자가 되었다기 보다는,
연약함이 있고… 그 연약함 안에 그저 그대로 머물러 있게 되었고.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특별한 깨달음과 묵상을 하게 되었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이분은 뭐 일반 사람들보다는 머리도 좋고 그러시겠죠. ^^
그러니까 그런 몸으로 박사도 받고 그러실 수 있겠죠.
연약함과 하나님 나라와 같은 complex한 내용을 통찰을 가지고 연구하고 그것을 정리해서 대중과 나눌 수 있으려면, 그에 걸맞는 재능이 있어야 하는데…
이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어려움을 딛고 그런 재능으로 꽃을 피우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런 경우에 ‘강사’는 그러니까 나를 봐라. 나는 이 어려움 속에서 이런 것을 깨달았다… 라고 이야기하기 보다는,
그 어려움 속에서 깨달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에 사람들이 주목하게 하는 것이 key라고 봅니다.
강사에 집중하지 말고, 그 강사가 이야기하는 내용에 주목하도록 해야한다는 거죠.
이게… 사실 fine line이고 실제로 그렇게 쉽지 않다고 저도 물론 생각합니다. ^^
….
뭐 다 아시는 이야기일 수 있겠습니다만,
블로그 주인장으로서, 답글을 다는 성의를 보여야한다는 강박감에….
이렇게 올립니다. ㅎㅎ
ㅋㅋㅋㅋ 꼭 쥔장으로 답글을 달아야한다는 책임감… 완전 좋습니다.^^
덕분에 또 귀한 생각 듣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부분에 고민이 참 많습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느껴지는 것이, ‘누군가의 약함’이라고 이야기하면 외부에 기인한 느낌이 많이 들지만, ‘누군가의 약점’이라고 하면 내부에 기인하는 듯한 뉘앙스가 생기는데요.
사실 인디 코스타 초반에 이야기된 것처럼 약점이 전적으로 악함에 비롯된 것이라는 가정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준비하는 과정 가운데에서 함께 준비하는 분들 개개인의 약점을 어떻게 감싸주고 어떻게 권면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이 아주 많아졌어요. 어찌 보면 간사 공동체의 한계를 거기서 많이 보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JK 여기 오랜만이네요. ^^
사실 코스타 간사진은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고 품고 가는 공동체라기 보다는,
highly motivated 되어 있는 사람들이 함께 가는 전투부대이지요.
그러다보면,
high efficiency, high effectiveness를 포기하기 어렵고…
그렇게 따르지 않는 case를 만나면 결국은 참 어렵게 되고 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실무간사 시절에… 그리고 실무간사를 떠나서도 당분간…
JK가 지금 하고 있는 바로 그 고민으로 머리털이 다 빠지는줄 알았습니다.
정말 미치겠더라구요. ㅎㅎ
덕분에, 인격수양 참 많이 했죠.
(진심입니다. sarcastic하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요.)
힘 내세요!
하고 있는 일들, 하고 있는 고민들, 그것 때문에 머리 싸매고 힘들어 하는 것들…
그것 때문에 소화도 안되고, 잠도 못자고, 악몽도 꾸고…
다 헛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