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사는 모습 (3)

우선,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변혁하시는 하나님이실 수 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창조-타락-구속이라는 framework에서 세상을 변혁(transformation)시키는 복음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리차드 니버 역시, 이것을 변혁자 그리스도 (Christ, transforming culture)라고 하여 중요한 분류로 사용하였다.

이 입장은, 사실 소위 ‘개혁주의적’ 기독교 세계관을 이야기할때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이 입장을 잘 설명해준 책, 알버트 월터스의 “창조-타락-구속”의 원제는 Creation regained 이다.
다시 말하면, 구속은 창조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따라서, 창조때 주어진 문화명령을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세상 속에 들어가서 세상의 체제, 문화 등을 변혁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온 세상에 하나님의 주권을’ 이라는 모토가 매우 어울리는 입장이다.
정치, 경제, 사회, 학문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주권이 선포되도록 해야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정치, 하나님의 뜻대로 펼쳐지는 경제 등등을 강조하는데, 그 변혁을 이루는 주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 영역에만 신앙을 가두는 이원론의 극복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선한 창조의 회복을 강조한다.

성경에서는 느혜미야 같은 사람이 이런 입장을 대변하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겠고, 역사적으로는 뭐니뭐니해도, 윌리엄 윌버포스 같은 사람이 이 입장이 표방하는 영웅이다.

음…
내가 사실 대학-대학원때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에는 이게 다인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여기에는 몇가지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우선,
이 입장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주로 ‘리더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모델인것 같다.
80년대 개혁주의적 기독교세계관을 비판할때 많이 이야기했던 것이, 변혁 모델이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적용 가능한 모델로 보여지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그 입장을 이야기하고 소개했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세상 삶의 치열함으로부터 다소 떨어져 있었던(?) 대학교수들이 주로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다보니 이론적 구호로부터 더 이상 전개되지 못하는 한계가 많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80-90년대 그렇게 ‘변혁’을 외쳤던 그 당시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디서 뭐 하고 있나 하는 것을 가만히 보면…
이들은 많은 경우에, 세속화 라는 거대한 물결에 속수 무책으로 휩쓸리게 되었던 것 같다.

세상을 변혁할 수 있는 대상으로만 인식했지, 그 세상이 우리를 집어 삼킬만큼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사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또…
이런 변혁의 입장은 흔히, ‘승리주의’ 혹은 ‘정복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령…
그리스도의 주권이 선포되어야 해. 그런데 악한 세력이 동성 결혼을 찬성하려고 해. 그러니까 우리가 세를 더 모으고 정치적 promotion을 통해서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법을 만들자.

뭐 이런 식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사랑과 섬김으로 세상에 권위(authority)를 갖기 보다는,
힘과 number of votes로 세상에 권세(power)를 가지려고 하는 시도이다.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욕먹게된데는 이런 background가 다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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