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적 희망 (17)

예수님을 주로삼고 산다는 것은 늘 그렇게 다루기 쉬운 주제는 아니었다.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도 이 문제로 평생을 씨름하였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세대는 그 차원이 정말 다른 것 같다.

최소한 자기 보다 더 큰 가치기준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세대는,
어렵지만, 자기보다 더 큰 가치기준이 있음을 발견했을때 적어도 그 가치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당위라는 것은 인정했었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 더 치열하게 싸우는 것을 덕으로 여겼다.

그러나,
자기보다 더 큰 가지기준이 존재하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좋은 가치를 제공해준다고 하더라도…
그게 좋긴 한데, 내가 왜 그것에 헌신해야하느냐는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이런 사람들에게 진정한 희망을 이야기해주기 위해서는,
자기보다 더 큰 가치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왜 disaster인가, 왜 더 큰 가치기준에 헌신하는 것이 궁극적 희망을 제공해주는가 하는 길고 지루한 설득과 설명이 필요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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