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문 이야기 (6)

이번에 참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물론 꼭 만나고 싶었던 여러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business 관련한 사람들이었지만, 일부 business meeting이 있는 주변에 살고 있는 옛친구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business meeting으로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일과 관련된 이야기로 주제가 한정되곤 했지만, 혹시 후에 식사를 함께 할 기회가 있다던지 하면 반드시 만나는 사람의 ‘삶’에 대한 질문들을 하려고 노력했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살면서 일/직장이란 그분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현재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등등.

여러가지를 듣고 느꼈지만, 참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산다는 것은 공통적이었다.
또한… 특별히 오랜만에 만난 그리스도인 친구들은,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치열하고도 진지한 고민을 하면서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려 싸우고 있었다.

미국에 살면서,
미국에 살고 있는 나같은 사람의 경험이, 마치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대안이나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부지불식간에 여기기 매우 쉬우나…. (매우 가증스러운 교만함이다!)
그런 비합리적인 피상적인 사고를 가차없이 무너뜨리는 대화들을 많이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정말…
내가 미국에서 살고 있는 어떤 경험들이 한국에 있는 내 동료 그리스도인에게 의미있는 방식으로 도움이 될수 있기를 바란다.
그저 내가 이곳에서 잘먹고 잘사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 나름대로 이곳에서 하는 어떠한 영적 싸움들이 한국의 S 전자에서 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도 의미있는 것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마치 내가 그들의 삶에 대한 어떤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교만함을 가지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함을 배웠다.

그들의 고귀하면서도 아름다운 삶 속에서의 struggle이…
결코 멀리서 강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는 내가 ‘훈수’를 두는 형식으로 경감될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삶의 context 속에서 하는 진지한 고민들은,
내 삶의 context 속에서 내가 하는 고민보다 어쩌면 훨씬 더 고결하고 가치있는 것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한가지 마음속의 혼동이 생겼다.
앞에서 쓴대로… 나는 내가 21세기 초반에 미국에 살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내 삶의 경험이 내 동료와 후배들에게 blessing이 되는 것이 되는 것으로 삼고 있는데…
그러한 모델 자체가 그렇다면 성립하지 않는 다는 것일까?

여러가지 무거운 마음과 고민들을 안고 돌아온 한국 방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