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묵상 – 토요일

고난주간 묵상을 하다보면…
혹시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금식이라도 하다보면…
토요일은 참 ‘힘이 빠지는’ 날이다.

예수의 고난을 묵상하는 것이 금요일에 이미 절정에 다다랐으나,
아직 예수의 영광스러운 부활에 대한 기쁨을 만끽하는데 이르지는 못한…

기도도 하고, 때로는 눈물도 흘리며 예수의 죽음과 고난을 묵상하여으나…
뭔가 이제는 힘도 빠졌고…

예수를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한 제자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제는… 그 Jesus movement가 끝났구나 하는 허탈감과 허망함, 그리고 그 후폭풍에 대한 두려움에 둘러싸여있지 않았을까.
새벽까지 예수를 따라다니거나… (혹은 도망다니거나, 숨어 다니거나)…
그랬던 긴장이 좀 풀리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울다가… 떨다가… 그러다가 잠도 들고…

그러나,
내가 지금 느끼는 그 ‘힘빠짐’은 그 당시 제자들이 느꼈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알기 때문이다.
예수의 죽음이 패배가 아니라는 것을.

예수께서 이미 승리하셔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고난주간 묵상 – 금요일

가상칠언

1.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23:34)

2.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누가복음 23:43)

3.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자,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요한복음 19:26-27)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마태복음 27:46)

5. “목마르다” (요한복음 19:28)

6.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30)

7.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누가복음 23:46)

고난주간 묵상 – 목요일

목요일에 관련된 묵상은 너무 많고 풍성해서… 하루의 짧은 블로그 포스팅에 다 담을 수 없을 것 같다.
그중… 요한복음에 나오는 다락방 강화는 특히 내 마음에 더 와 닿는다.

예수의 평화가 이미 임했다는 선언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부조리하다.
이제 가장 폭력적이고 잔인한 처형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예수께서는 내가 세상을 이겼다, 이제 그 평화가 왔다고 선언하고 계신 것이다.

망가져버린 세상을 회복하고 구원하시는 예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버린 사람들을 품으시고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시는 예수,
그 평화의 실체에 대하여 알지조차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 참된 평화를 주시고자 그 폭력적 죽음을 받아들이시는 예수.

내게 주어진 평화는,
이미 이루어진 일이다. 내가 그것을 얻고자 다시 노력해야할 그 무엇이 아니다. (비록, 너무나도 자주, 내가 그 평화가 없는 사람처럼 살고 있긴 하지만.)

내게 주어진 평화는,
값없이 주어진 것이긴 하지만, 값싼것은 아니다. priceless한, precious한 그 평화를, 내가 그 실체를 제대로 깨닫지도 못하고 있는 그 평화를… 내가 누리게 된 것이다.

태초로부터 하나님께서 마음에 두셨던 그 평화가,
십자가라는 형틀에서 폭력적이고 잔인한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역설…

그 역설로만 solution이 가능하게 된 데에는,
바로 나의 죄가 자리하고 있다.

이제 목요일 저녁에는 땀이 피가되도록 기도하신 후에,
인류 역사상 가장 부조리한 밤을 지나게 된다.

창조주가 피조물에의해 매질을 당하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이 시저 이외에 왕이 없다고 선언하는…
all-powerful한 하나님이 폭력 앞에 묵묵히 무너져 내리시는…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죄인들을 위해서 마련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