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가 무섭다고

아내가 이메일로 다음 사진을 보내주었다.

민우 방 앞에 거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걸 종이컵으로 덮어서 가두어놓고, 테잎으로 고정시킨 후, 포스트 잇으로 친절하게 거미라고 표시도 해놓고,

자기 방문 틈은 수건으로 다 막어놓고…

그렇게 자기 방에 들어가 있더란다.

귀여운 것!!

인생을 살면서,

위협이라고 느끼는 것에 대해,

내가 잔머리를 굴려서 이런 저런 조치를 막 취해놓는 내 모습을 보면서,

우리 주님께서도 귀여운것! 그렇게 말씀해주실까? ^^

뭐 내가 귀엽기에는 좀 부담스럽긴 할 것 같은데… ㅎㅎ

다시 QT를…

아직은 아시아에 있다.

시차 때문에 아침 해가 뜨기전에 일어나서,

밤 12시 넘어서 잠이 들때까지,

계속 일을 하는 일정을 보내고 있는데…

감사한것은,

이곳에서 나만의 별도의 office를 하나 마련해주어 나름대로 개인적인 시간을 짬짬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힘든 일정 때문에 마음이 가난해졌기 때문일까.

나름대로 의지적으로 QT 안하고, 통독하면서 지내던 것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말씀을 짧게 읽고 묵상하는 QT를 다시 하게 되었다.

마음이, 혹은 영혼이 바짝바짝 메마르고, 주님이 멀게 느껴지고… 견디기 어렵다는 생각에 얼른 그렇게 말씀을 들었다.

아… comforting…

참 신기했다. 

내가 이전 글에 썼던 것 처럼, 이론적으로는 QT를 고집해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오랫동안 QT라는 방법론으로 주님과 교제해온 나로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니 주님과의 교제가 소원해지고, 그래서 마음이 참 어두워지는 경험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국말로 계속 대화해 왔는데,

갑자기 인위적으로 영어로 대화를 나누려고 하다보니… 

사랑이 느껴지지도 않고, 소통도 잘 안되고 뭐 그런 거라고 해야할까.

나름대로 내가 많이 힘들때마다 그래서 이불 밖으로 나갈 힘이 없을만큼 고통스러웠을 때에도,

아침에 겨우 기운을 차려 몸을 추스려서 말씀을 좀 읽고,

내 노트 한페이지~반페이지 정도의 노트를 적어가며 주님과 교제했었는데…

다시 이제는 그 포근함으로 돌아가야하지 않을까 싶다.

나름대로,

<<QT 안하기>> 의 실험은…

적어도 내게는 실패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

지난 주말 나눈 대화중 얻은 몇가지 깨달음

지난 주말에는, 참 유익한 시간을 갖었다.

개인적으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반가운 얼굴을 보고, 우리의 소망에 대해 함께 나누고 한 것들이 모두 좋았다.

그런데, 특히 여러 대화 도중에, 내 개인적으로 참 유익한 것들을 많이 얻었다.

좀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나는 아직 충분히 passive하지 않다.

작년 가을, 나는 내가 passive하고 vulnerable해지는 연습을 해보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리고 거의 일년동안 그 practice를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여전히 몸에 힘을 빼고 주님을 의지하는 것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2. 나는 여전히 메시아병에 걸려있다.

마치 내가 무언가를 해야하고, 세상의 문제를 다 해결해야 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그 해결사가 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나는 자유해질 필요가 있다.

3. High-performer disease

40대 중반이 되도록, 끊임없이 high performance를 추구하고 살았다.

공부, 일, 관계, 심지어는 신앙 까지도.

그렇게 high performance를 추구하며 사는 모습이, 여러가지 내 생각의 왜곡을 가지고 온 것 같다.

4. 촉촉해지는 일

나는, ‘문제’를 맞닥드리면, 그것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일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그 문제를 넘어서 소망을 보고, 그 문제를 품고 기도하고, 절망이 깊을 수록 소망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고…

하는 비분석적, 비논리적 approach를 여전히 더 많이 배울 필요가 있다.

5. 나는 말이 너무 많다.

대화를 하다가 문득 문득, 

허걱… 또 내가 이렇게 대화를 주도하고 있네…

하며 놀라곤 했다.

나는 말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