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뛰게 했던 clip

예전에 youtube에서 본 적이 있는 것이었는데,

예전에 왜 미국이 위대한 나라였는가 하는 것을 설명하는 부분이 특히 감동적이었다.

미국에서는,

양당이 government shut-down을 놓고 chicken game을 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파렴치한 보수정파와, 무능력한 진보정파가 맞서도 있는 상황.

Liberal과 Conservative의 frame이 몹시도 답답하게 느껴지는 요즘… 다시 한번 생각을 자극하는 clip.

(이 앵커의 comment에 동의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논의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대화가 될 수도 있을 듯.)

영지주의로부터 배운다? – 고난에 대하여

베드로전서의 고난의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든 생각.

Disclaimer: 나는 영지주의를 절.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니다. 영지주의를 인정할 수 없는 이유는, 참~ 많다.

피조세계가 깊이 망가져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면,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도 아주 깊이 망가져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육체’는 그것 자체로 칭송받기에 매우 어려울만큼 죄로 물들어 있는 존재이다.

만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이,

그 예수의 육체의 고통을 통해, ‘육체’ (혹은 피조세계)에 물들어 있는 죄를 소멸시키시는 것이었다면,

그리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역시, 고난을 통해 그 예수의 사역에 동참하고, 죄악된 육체를 소멸하도록 부르심을 입은 것이라면…

어떨까?

그러면 다음의 성경의 내용들이 훨씬 더 잘 설명된다.

– 우리의 고난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운다는 개념

– 고난을 통해서 선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 자체가 선이 될수 있다는 개념

– 아무런 자신의 죄와 무관하게 받는 고난에 대해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질병, 상황의 변화 때문에 겪는 고난 등등)

혹시 시간이 좀 있다면,

소위 ‘주류’ 신학에서 육체를 악한것으로.. 정말 많이 악한 것으로 여기고, 그 육체의 죄를 소멸하는 과정으로서 고난을 설명한 입장이 있는지 좀 찾아보고 싶은데…

혹시 이런 것에 대해 좀 아시는 독자가 계실른지? ^^

나를 표현하자? – 겸손함이 실종된 시대

facebook을 보면, 셀카가 난무한다.

뭐 굳이 셀카가 아니라 하더라도 먹은 음식 얘기, 여행 이야기, 읽은 책 이야기 등등 ‘자기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좀 더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깊이 있는 생각과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뭐 내가 쓰고 있는 이 블로그도 다르지 않다. 결국 내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한편 생각해보면,

내가 어른 그리스도인이었을 시절만 하더라도,

정말 겸손한 크리스찬을 종종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뭐 그냥…. 습관적으로 하는 유교적 겸손이 아니라,

그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이 무익하다고 이야기하는 그런 겸손함.

사람이 완벽할 수 없으므로, 사람의 겸손함 역시 완벽할 수 없지만,

적어도 예전에는 그런 겸손함을 virtue로 여기고 그것을 더 바라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요즘 정말… 그렇게 ‘겸손한’ 사람 찾기가 참 쉽지 않다.

그중 특히 위험한 사람은, ‘옳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다. 교회를 개혁해야 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고, 말씀을 공부해야 한다는 부류의…  

이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옳기 때문에, 다른 옳지 못한 사람들을 비판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자신을 돌아보며 겸손한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내 주장을 펴고,

나를 표현하고,

내가 경험한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그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과 균형을 이루어야할 반대 방향의 균형 추가,

현대 기독교에서 상실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해본다.

그리고,

내게도 역시 그 겸손이, 진실한, genuine한 겸손이 사라져 버린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해본다.

찬양

하나의 씨앗교회찬양인도자가, 휴가를 떠났다.

그래서, 졸지에 내가…

지난주일과 이번 돌아오는 주일에 기타를 치며 찬양을 인도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주와 이번주… 찬양 곡집을 뒤적이며… 기타를 치며 혼자 집에서 찬양을 부르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아… 이게 참 좋다.

참 오랜만에 내 삶에서 찬양이 살아난 느낌이다.

지난 주말에 정말 열심히 본 비디오

지난 주말에,

몸과 마음이 많이 피곤해져 있는 와중에,

다음의 비디오가 활력을 주었다. ^^

정말 재미있었다!!!

나는 정말.. 많이… 물리학자가 되고 싶었다.

중학교때 읽은 특수상대성이론을 설명한 과학문고 한권을 읽고는 완전히 빠졌었다. 그 이후로 완전히 그것에 팍~~


그런데,

대학에 가서, 친구들이 과를 정하는 것을 보니까… 

각 과학고등학교 수석+상위권들이 다 물리과를 가는 것이었다!

아… 저기 가면 나는 뼈도 뭇추리겠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만 생각할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뭐 그냥 많이 아쉬워하며 재료과를 선택했다. 재료과에서는 고체물리 같은거 많이 좀 하는 줄 알고. ^^

이런 비디오를 보면서,

아.. 그래… 내가 민우만할 때, 

난 정말 커서 이런거 공부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가슴 싸~ 한 기억이라고나 할까… 그런게 몰려왔다.

그렇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재료과 선택한 이후 그 나름대로 신실하게 인도해오셨던 것 같다.

때로는 내 적성과 맞지 않는 것을 하느라 애를 먹을 때도 있었고,

심지어는 지금까지도 예전에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내가 엉뚱한 선택을 할때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이후의 길을 잘 인도해주시며…

그분이 내 하나님 되신다는 걸 참 징~ 하도록 가르쳐주셨구나… 

하는 생각을…

이 물리학 관련된 비디오를 보고나서 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내게는 따뜻한 분이신 적이 있었나?

내 신앙과 삶의 여정을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부드럽고 다정하게 대해주시는 분이시라기 보다는,

계속 흔드시고, 훈련시키시고, drive 하시는 분이셨던 것 같다.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를 처음 접했을때,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에 사로잡혀 많이 울고 울고 또 울었지만…

그 후 하나님께서는…

늘 나를 들들 볶으시는 분이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 깊은 죄의 뿌리를 정말 고집스럽고도 끈질기게 다루시는 하나님.

가끔,

삶이 무겁게 느껴지거나,

사람들로부터 아픔을 당했거나,

여러가지 부담 때문에 힘들 때에는…

때로 하나님께서 너무 그렇게 나를 심하게 하시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보지만,

하나님은 “immovable mover” 이신게 분명하다.

꿈쩍도 않으신다.

주변의 많이 힘든 어떤 사람들을 보면서,

아… 하나님께서 저런 사람들에게는 내게 대하시는 것 같이 그렇게 harsh하게 대하지 마시고,

좀 부드럽고 따뜻하게 해 주셨으면…

그런 바람을 좀 가져보기도 한다.

Unread email 278개!

아시아 출장을 가 있는동안,

모든 이메일을 다 읽고 답하는 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만 얼른 얼른 읽고 넘어가고 했는데…

그러다보니,

열흘 남짓 지나는 동안 밀린 이메일이 200개가 넘었었다!

어제 아침 9시 현재, unread email이 278개 였다.

그도 그럴게,

보통 나는 하루에 이메일을 200개쯤 받고, 30개쯤 쓰는 것 같다.

자기 직전까지 죽어라고 이메일들 답을 하고 잠자리에 들고나서 새벽에 일어나보면…

밤새… 보통 이메일이 50개쯤 와 있다. -.-;

아시아쪽에서 실험 데이터 같은 것들을 그야말로 산더미와 같이 보내오는 것이다.

하루에 어떤 때는 미팅만 8개.

식사시간 찾기도 힘들만큼 정신없이 일이 쏟아지는데,

그 일의 대부분은 이메일이다. -.-;

어제(월요일) 하루 종일,

그 208개의 unread 이메일을, 자그마치 10개 남짓으로 줄이는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아, 나는 또 오늘 이백여개의 이메일 폭탄을 또 받을 예정이다.

이메일 열기가… 두렵다.

@ 혹시 제게 이메일을 보내셨으나 바로 바로 답을 못 받으신 분들은, 제가 여러분 이메일을 고의로 씹는게 절.대.로.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

예수의 십자가 – Mission vs. Love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많은 일을 이루셨다.

이와 관련해서 소위 다양한 atonement theory들이 존재하고, 나는 그 다양한 견해들을 대부분 다 인정하는 편이다.

시기에 따라,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른 강조점이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한동안,

나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들에 대해 깊이 천착되어 있었다.

악에대한 궁극적 심판,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 등등의 관점이다.

그런데,

이번에 아시아 출장 동안 말씀묵상을 하면서는,

어쩌면 지금 내게 더 필요한 것은 예수의 십자가를 mission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사랑으로 여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깨어진 피조세계를 다시 회복시키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웅장한 계획의 완성이라는,

멋진 스케일의 복음이 참 소중하지만…

사도 요한이 많이 이야기하는대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것.

그래서 그 사랑으로… 독생자를 십자가에 매다셨다는 것.

예수의 십자가는,

분명히 예수의 mission이었지만…

그러나 또한… 어쩌면 그보다 더 본질적으로…

예수의 십자가는 그분의 사랑이셨다.

개를 키우다~

새집에 이사오면 개를 키우자는게 민우와의 약속이었다.

그래서, 8살짜리 유기견 하나를 입양했다.

내가 여기 출장와 있는 사이에, 우리집 여자들이 그렇게 입양을 한건데…

얘는 꽤 touch한 삶을 살았나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무서워하고 숨고 그런단다.

많이 shy 하다고…

아마 이 친구는,

삶에서 겪은 여러가지 traumatic experience 때문에 그렇게 된 것같다.

민우는 다행히, 이 친구가 그렇다는 것을 잘 알고… 그렇기 때문에 잘 돌보아주어야 한다고 아주 사려깊게 대한다. ^^ 

우리와 함께 사는 것이, 이 친구에게 따뜻함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