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기다려온~

2004년 Boston Red Sox의 World Series때 Nike에서 내보냈던 광고이다.

1918년 마지막으로 우승했던 Red Sox는, 2004년에, 86년만에 처음으로 우승을 해낸다.

The Curse of Bambino를 끊었다고 난리였다.

그러나,

1918년 이후, Red Sox는 홈 구장인 Fenway Park에서 우승을 거머쥐는 승리를 거둔적이 없었다.

어제, 자그마치 95년만에, 그 일이 다시 이루어졌다.

무언가를 오래 갈망하다가 그 것이 마침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일은, 감격스럽다.

Go Red Sox! 🙂

독서와 경험

지난 주말,

필라델피아에서는 KOSTA 공동대표 모임이 있었다.

여러가지 내용을 토론하고 나누는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늘 그렇듯 밤에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여러가지로 유익했다.

이야기를 하다가 흥분을 하기도 했고, 가슴이 답답해서 말을 잘 하지 못하기도 했고, 싸~한 감동이 마음을 덮기도 했다.

그중 내 마음에 많이 남는 이야기는 이것이다.

나는 깨달음을 가르침/독서를 통해서 얻는가, 경험을 통해서 얻는가?

어떤 사람은, 새로운 깨달음을 독서나 기타 다른 가르침을 통해서 얻고, 삶 속에서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 반면,

다른 사람은, 새로운 깨달음을 삶의 경험을 통해서 먼저 얻고, 독서나 강의와 같은 가르침을 통해 재확인 하는 과정을 거친다.

물론, 누구든지 이 두가지의 경험이 다 있겠지만…

나는 내 자신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삶을 통해서 얻은 깨달음을 독서나 강의 등을 통해서 confirm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았다.

아, 물론…

신앙의 연륜이 매우 짧았던 때에는 독서가 삶을 이끌던 때도 있었지만…

어떤 한가지가 다른 것보다 더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으나,

가르침과 경험 가운데 어느 한가지만을 추구하면 적절한 균형을 잃을 수 있을 것 같다.

금년 Red Sox가 더 좋은 이유

나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알지만,

나는 Red Sox fan이다.

보스턴에서 몇년 살았던 사람으로서, Red Sox fan으로 convert되지 않은 사람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

매년 Red Sox를 응원하고 좋아하지만, 금년 Red Sox는 유난히 더 마음에 든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소위 ‘돈으로 쳐바르는’ 식으로 로스터를 구성하지 않았다.

지난 두해에는, 정말 엄청나게 비싼 선수들을 FA 시장에서 영입해서 팀을 꾸렸다.

감독도, 소위 ‘천재’라고 불리우는 사람을 불러다가 세웠고.

결과는… disaster 였다. AL east 꼴찌!

Red Sox는 그 비싼 선수들을 왕창 다 Dodgers에 팔아버리고, Red Sox 투수 코치 출신의 감독을 데려왔다.

지난 off season에도 엄청 비싼 선수 보다는, 성실하고 팀웍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영입했다. 

물론 아주 가난한 구단입장에서 보면 이것도 꽤 비싼 거겠지만, 그리고 Red Sox는 여전히 mlb 팀 중에서 top 5안 payroll team이지만…  지난 몇년 그야말로 ‘돈으로 쳐바르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였다.

Red Sox의 core group은, 그야말로 home-grown 선수들이다. 어디에서 비싸게 데려온 선수둘이 아니라, 마이너리그부터 차근차근 Red Sox 에서 키운 선수들이다.

2. Red Sox은 underdog 이었다.

금년 시즌 초반에, 스포츠 평론가들은 Red Sox가 AL East 꼴지를 할것이라고 예상했다!

돈의 제국 Yankees,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Rays와 Orioles 이외에도, 특히 Blue jays는 스타 플레이어들을 왕창 데리고 와서 강팀이 되었다.

Red Sox는 2nd tier 선수들 몇명을 영입했을 뿐이었다.

나는 underdog이 이기는걸 보는게 늘 좋다. ^^

3. 금년 Red Sox는 자기들끼리 즐기는 (enjoying themselves)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 좋다.

2004년 Red Sox가 86년만에 우승을 했을때, 그 팀은 소위 ‘Idiots’들이 모인 팀이었다.

금년 팀의 분위기가 좀 그렇다.

다들 수염을 기르고, 서로 수염을 잡아 뜯으며 노는 모습을 본다.

팬들도 “Red Sox beard”를 붙이고 경기장에 와서는 응원을 한다.

나는 이렇게 자기들 만의 문화를 만들어 즐기면서 하는 사람들이 좋다.

얼마전 우리 동네에 살다가 보스턴으로 이사간 직장 동료와 이메일을 하면서, 

요즘 Red Sox가 잘해서 보스턴이 시끄럽겠다.. 그랬더니,

The weather is cursed here. At least, people here should have something to celebrate.

이란다. ^^

Go Red Sox!

메마른 뼈들에 생기를

아주 맹숭맹숭 하다가도,

부르면 울컥 해지는 그런 노래가 있다.

벌써 10년도 더 전에 나온 “메마른 뼈들에 생기를” 이라는 이 노래가 그렇다.

이 노래를 부르며 북한을 생각하게 되고,

또 북한이외에도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지난 주말,

집에서 혼자 기타를 치면서 이 노래를 부르다,

울컥 해져서 노래를 잇지 못하고 그냥 기타만 쳤다. 

나를 위한 기도가 되지 않을 때

개인적으로 참 어려운 시기를 지내면서,

아..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렇게 힘들게 하시나.. 그렇게 고통스럽게 여겼던 시간들이 있었다.

뭐 다른 사람이 나를 보면서는,

네가 어렵긴 뭐 그렇게 어려웠겠느냐고 할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정말 사면초가가 된 것 같이 느껴진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때.. 하나님께서는, 무심(?)하게도 

내가 나를 위한 기도를 하는 것을 막으시곤 하셨다.

너무 답답해서 엎드려 기도를 시작하면,

나를 위한 기도를 몇분 하다가…

금새, 그 기도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곤 했다.

때로 그 기도가 고통받는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이기도 했고,

북한을 위한 기도,

섬기던 교회를 위한 기도,

한국 교회를 위한 기도,

선교를 위한 기도,

내가 그토록 마음을 쓰고 섬겼던 K 운동을 위한 기도 등등…

그렇게 땀과 눈물을 빼고 기도를 하고 나면,

어떤 때는 아주 허탈해졌다.

아니, 하나님…

저 이렇게 힘든데…

왜 제가 제 기도하는 걸 가만 놔두질 않으시는 겁니까.

제가 뭐 스케일이 그렇게 큰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스케일 큰 기도만 자꾸 하게 하시면, 

저는 어쩝니까. 저도 힘들어 죽겠습니다.

그렇게 항변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특기를 발휘하신다. : 완전히 생까신다!

아무 말씀도 않으신다. 정말 아무 말씀도.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런 시기에 나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친밀감을 깊게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생까시는 하나님을 만나면서, 아이로니컬하게도, 하나님과 대단히 가까워 졌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솔직히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노래이다.

지나치게 가사가 shallow 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게다가 이게… 잘못된 곳으로 mislieading할 가능성도 많다고 여기고 있다.

그런데,

오늘 그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가사를 가만히 음미해 보면서…

그리고 두해 전에 태어난 내 하나밖에 없는 조카를 생각하면서… (내일이 고놈 생일이다 ^^)

아… 이 노래는 고놈에게는 불러줄 만 하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가,

무엇보다도,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제대로 알며 크면 참 좋겠다.

narcissistic하게, 혹은 shallow하게 그렇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하나님에 대한 깊은 통찰과 깨달음을 통해,

뼈속 깊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지 않(던) 이 노래의 가사를,

내 조카의 생일에 마음을 담아 보내고 싶다.

시편 1편

복되어라, 

악을 꾸미는 자리에 가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을 거닐지 아니하며

조소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아니하고,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

그에게 안 될 일이 무엇이랴! 

냇가에 심어진 나무 같아서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하고

제 철 따라 열매 맺으리.

사악한 자는 그렇지 아니하니 바람에 까불리는 겨와도 같아

야훼께서 심판하실 때에 머리조차 들지 못하고, 

죄인이라 의인들 모임에 끼지도 못하리라.

악한 자의 길은 멸망에 이르나, 의인의 길은 야훼께서 보살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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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번성함을 보고, 하도 복창이 터지고 속이 쓰려서…

시편 1편을 보다가, 문득 공동번역이 어떻게 번역했는지 궁금해서 찾아 보았다.

아.. 이거 참 맛깔나게 번역했네.

나름대로 그래도 시 같은 맛을 살리려고 노력하며 번역한 흔적이 보인다.

악인의 번성함을 보며,

가슴이 터지도록 답답한 마당에…

시편 1편의 내용과 더불어, 그 번역의 신선함에 잠시 refresh 되다.

기도가 깊어질때

말씀을 연구하는 일은,

좀 부지런히 힘을 내면 그럭저럭 되는 것 같은데…

기도가 깊어지는 것은 참 다르다.

지금껏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과 함께 살아오면서,

기도의 깊이가 깊어졌던 과정은,

gradually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몇번의 quantum jump를 통해서 이루어졌던 것 같다.

처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한지 대략 1년 반 남짓 지났을 때, 

열정적 종교생활에 약간 burn-out이 되고, 그와 함께 학교 생활 속에서의 어려움이 겹쳐졌을때.

내 탄식이 깊이 있는 기도가 되는 경험을 했다.

처음 코스타 집회를 갔다 온 후, 

교회 청년부 아이들과 함께 새벽기도를 했을때…

가슴에 불이 붙은 것 같은 뜨거움으로,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도록 반복해서 기도하는 경험을 했다.

이때 방언도 하게 되었고, (그런데 사실… 나는 방언의 유익은…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도… -.-;)

일종의 신비체험도 좀 했다.

그러다가 한동안,

소리쳐 기도하는 일이 딱~ 막혀버리는 기간을 겪었다.

아무리 소리내서 기도하려 해도 그게 되질 않는 것이었다.

그때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깊이 주님과 머무는 기도를 하는 경험을 했다.

최근,

주변 여러 사람들의 고난을 간접으로 경험하면서,

일종의 영적 침체를 겪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의심, 나와 내 주변의 죄를 보며 느끼는 중압감 등 때문에,

고통스러운 기도를 하는 기간을 좀 지냈다.

(사실 아직도 좀 그런 기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기간을 거치며 기도가 조금씩 깊어진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아직도 내 기도의 깊이가 영… 마음에 차질 않는다.

분명히 이것보다 더 깊은 무엇이 있을 텐데…

기도가 겨우 이런 수준이 아닐텐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죄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죄의 무게가 정말 말도 다 할수 없이 무겁기 때문이다.


삶의 궤적 속에서,

잘못된 결정, 죄에 이끌린 선택 등등을 사람들은 반복해서 하기 마련이다.

그때 그들에게 필요한 첫번째 말은,

그 잘못에 대한 지적이나 충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하신다” 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세상을 사랑하신다.

그러실 필요가 없는데, 

그 망가진 세상을, 자신을 저버린 세상을 향해 가슴을 찢어가며 아들을 내어 주셨다.

마음이 무너져, 몸이 아픈 이에게,

몸이 아파 마음이 무너진 이에게,

하나님을 너무나도 피상적으로만 만나기에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를 기피하는 이에게,

깊은 침체 속에서 어떻게든 발버둥치며 구원을 바라고 있는 이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이야기를,

제발 누군가가 좀 해주길…

정말 그러길 기도한다.

그리고,

그들이 제발 좀 귀를 열어,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심을, 온 가슴으로 받아들이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