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용과 공동체

내가 설교를 할때 많이 듣는 반응이 있다.
원리를 듣기는 했는데 그러면 어떻게 그걸 적용해야하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대개 나는 그 적용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 생략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아 적용까지 다룰 수 없기 때문인 경우가 많긴 하다.

사도행전 2장의 베드로의 설교가 원문 그대로 실려있는 것은 아닐 것 같다.
아마 베드로 설교의 핵심을 축약해서 적어놓은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그 설교는 너무 dry하다.
아주 짧은 핵심적인 선포와 반응을 요구하는 것이 전부이다.

베드로의 설교의 원문은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할수도 있겠는데….

사실 미국의 대각성시대의 설교들을 읽어보아도 마찬가지다.
그 유명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하나님의 진노의 손에 붙들린 죄인들” 설교문을 읽어보면 그냥 dry하다. 예화도 없고, 적용도 없다.

그렇게 오래전까지 갈 일도 아니다. 그저 20년전 30년전의 설교들을 들어보면 모두 그냥 dry하다. 예화도 적용도 없다.

그런데 예전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지금보다 훨씬 더 예수님을 제대로 따르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람들은 설교에 적용도 예화도 없는 그런 것들을 들으며 어떻게 자신의 삶 속에서의 적용점을 찾아 살아갈 수 있었을까?

내 생각에는,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하느냐 하는 적용은 공동체에서 함께 나누며 배웠을 것 같다.
이미 그 가치를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어떤 모습이 예수를 따르는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가이드를 충분히 잘 확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역시 내 20대의 신앙이 그렇게 만들어졌던 것 같다.
많은 경우 지식은 책으로 배웠고, 신앙은 선배들을 보면서 배웠다.

그러니…
어쩌면 청중이 적용점을 잘 찾지 못하는 설교를 하는 목회자의 문제는,
그분의 설교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목회를 잘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야 목회자도 아니고, 그럴 자격도 없으니…
그렇게 적용점을 찾지 못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과 계속 나누는 역할을 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