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 관하여 (4)

어제 글에서 세종류의 고난에 관하여 언급했다.

첫번째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겪게 되는 어려움이다.
두번째는,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적극적으로 당하는 박해에 의한 고난이다.
세번째는, 억울하게 당하는, 피해자로서의 고난이다.

그런데,
가끔 고난 당하는 사람을 보면서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고난 당하는 사람이 자신이 당하는 고난의 내용에 관하여 전혀 잘못 이해하고 대응하는 것이다.

명백하게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잘못인데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받는 박해라던가, 억울하게 당하는 고난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가장 흔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고난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고 묵상하지 않아 잘못된 진단을 하게 되고,
결국 그 고난을 통해 얻어져야할 귀한 열매들을 놓치게 되는 일들을 보곤 한다.

고난을 겪으며,
그 일이 매우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 고난을 깊이 ‘묵상’하면서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일이 중요한 것 같다.

고난에 관하여 (3)

고난에는 세종류가 있다고 생각된다.

첫번째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겪게 되는 어려움이다.
두번째는,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적극적으로 당하는 박해에 의한 고난이다.
세번째는, 억울하게 당하는, 피해자로서의 고난이다.

명백하게 자신의 잘못으로 고난을 겪는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어려움을 주심으로 잘못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기회를 주신다.
다시는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복음과 하나님나라를 위해 당하는 박해에 의한 고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멋진 고난이다.
이 고난의 열매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세번째 억울하게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처한 상황보다 그 사람을 더 사랑하신다는 중요한 sign이 된다.
성공이나 명예나 부 권력보다 그 사람이 더 소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그런 일들을 허락하시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 고난에 처해 있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내 잘못은 없었나 하는 것을 돌아보게 되지만… (또한 돌아보아야 하고)
일차적으로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향한 무한한 사랑을, 마치 하늘 문을 여시고 폭포수를 그 사람의 머리에 쏟아붇는 것 같이 부으신다. 때로 그 고난의 가운데에 있는 경우엔 그 사랑을 fully appreciate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객관화시켜서 보면 – 보통 시간이 지나면 객관화가 가능하게 된다. – 그 사랑의 하나님이 전체 상황의 배경임을 볼수 있다.

첫번째 종류의 고난을 당하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감사한다. 그 사람의 성숙에 대한 소망 때문이다.
두번째 종류의 고난을 당하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감격한다. 그 사람의 헌신으로 드러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세번째 종류의 고난을 당하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흥분한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당신의 사람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고난에 관하여 (2)

사랑하는 사람들을 말씀 안에서 섬기는 일을 하다보면,
정말 귀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런데,
삶의 어떤 영역에서 자신의 것을 꽉 붙들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성장을 멈추어버리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속에 가지는 안타까움은 말로 다 할수 없다.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는 그것을 놓는다면 정말 자유로와질텐데,
세상이 감당할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해 나갈 수 있을텐데,
그것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도무지 저런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하시지 않는지 안타까울때가 있다.
마치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포기하신게 아닌가 하는 답답함마저 들기도 한다.
(물론 나 자신을 보면서도 그런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그런의미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당신의 자녀에게 그분께서 주시는 어려움은 하나님의 말할수 없는 사랑의 표현인듯 하다.

나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애매한 고난 당하는 것을 보면,
특히 그 사람의 성숙의 초기단계에서 그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
한편 마음속으로 아파하면서도, 한편 마음 속에 기대를 갖는다.

아!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말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시는구나.

고난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고난에 관하여 (1)

막 태어난 어린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자상한 돌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막 어린 그리스도인을 벗어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애정은 그 이전 단계에 경험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깊다.

뿌리깊은 내면의 문제들을 다루시기 위해,
삶의 전 영역을 그분의 선하심 앞에 아름답게 정렬시키기 위해,
그 과정에서 베푸시는 무한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

shake-up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최근,
내가 사랑하는 어떤이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마음을 면도날로 도려내는 것과 같이 아프지만…
기도하면서 마음에 주시는 잔잔히 흐르는 평안을 발견한다.

나름대로 며칠간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고난에 관한 단상들을 몇번에 나누어 적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