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2009

한국에서 나는 아주 작은 개척교회에 다녔었다.
“대학 청년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교회 전체의 절반이 되는 그런 교회였다.

매년 부활절이면 나같은 사람도 함께, 온 교인이 부활절 칸타타를 부르는… 그런 작은 교회였다.
주일학교 어린아이들은 egg hunting을 했다.
매일 허름하게 청바지만 입고 가다가 그날은 한번 넥타이를 메고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부활의 기쁨을 함께 지체된 사람들과 나누는 기쁨이 있었다.
정말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으로 기뻐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 가족이 됨을 기뻐했다.

이번이 미국에서 보낸 14번째 부활절이다.

미국에서,
특히 ‘건강한’ 미국 교회들의 부활절 message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복음전도’ message 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선 일년내내 부활절하고 성탄절 두번 나오는 날라리들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이번 부활절 Grace Chapel 설교를 들으면서는…
설교자가 어떻게든 이 사람들을 다음주에도 오게 하고 싶다는 그 순수한 간절함이 내 가슴에도 느껴졌다.
어떻게 들으면 거의 begging 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다음주에 또 와봐라. 오늘 했던 이 message와 연관시켜서 다음 시리즈를 들어봐라…

기독교가 삶과 가치관이아닌,
종교가 되어버린 후…
다시 그 종교가 이제는 문화로 전락해 버린 모습
그나마 그 문화 마저도 이제는 희미해져가는 모습…

그 속에서 일년에 한두번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을 믿는 그 소중함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합당하고 바람직한 일인가.

그러나…
한편…
함께 그리스도의 몸된 성도들끼리…
우리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은 영 아쉽다.

어둠이 더 이상 주님을 묶어 둘 수 없었다…
이제는 그 부활의 주님을 우리가 함께 주로 고백하는 것이다.
부활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님이시다..
그런 공동체적 고백이 이루어는 부활절의 모습이 그립고.. 아쉽다.

내 평생에…
또 다시 그런 부활절을 만나볼 수 있을까.

민우 세대에게는…
우리 세대가 그런 부활절을 물려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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