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부활절

어제는 부활절이었다.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 2000년전에도 good news 였듯, 지금도 그것이 good news라는 선포와 함께 함께 축하하고 기뻐하는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명절이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130년이 조금 더 된, 미국 장로교회이다.

보스턴에 있을 때에도 경험했던 것이지만,
비교적 오래된, 혹은 동네에서 좀 유명한 미국 교회를 다니다보면…
부활절이나 성탄절에 유난히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겪게 된다.

일년 내내 교회 안나오다가, 부활절이라고 해서, 자기 애들까지 예쁘게 차려입히고 와서는 예배를 드리고 떠나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본다.
때문에 부활절에는 늘 예배드릴 자리가 부족하여 교회에서는 한차례 비상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영적인 센스가 있는 교회라면, 이런 부활절과 같은 명절을, 철저하게 복음의 핵심 내용을 전달하는 기회로 활용한다.
오래전에 교회를 떠난… 그러나 그저 문화적으로 그 흔적만 남아서 명절때 한번 교회에 오는 사람들을 향해… 교회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제 우리 가족은 약간 예배 시간에 늦었다.
때문에 예배를 드리던 본 예배당에 자리가 없어서, 임시로 마련된, video로 예배를 드리는 방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 방에는,
정말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그러나,
그 방은 죽어 있었다.
일년에 한번 혹은 두번 나오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함께 찬양을 하는 시간에도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도, 박수치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헌금 바구니가 돌아가자 대부분의 사람이 그냥 ‘패스’를 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저 자기가 가진 지폐 한장을 덜렁 넣는 정도였다.
내 옆에 앉아있던 아내는, ‘사람들이 박수를 안치네’ 하며 일부러 큰 소리로 박수를 치기도 했다.

그런이들을 향해 이야기하는 목사님의 설교는 정말 간절하기 까지 했다.
예전에 ‘종교생활’을 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옛날 것’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매우 전략적으로 target한 설교였다.
그런 이들에게… 문턱을 넘으라고, 그 역사적 사건이었던 부활의 주인인 예수와의 개인적인 만남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한 설교였다. (정말 훌륭한 message 였다!)

적어도,
내가 있었던 그 방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썰렁했다.
하다못해 설교중의 농담에도 반응이 별로 없었다.
그야말로 죽어 있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정말 마음이 무거웠다.

왜…
이들에게 복음이 이렇게 죽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을까.

이런 모습이 비단 ‘미국교회’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만한 한국 교회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 될텐데… 아니 어쩌면 이미 그럴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복음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이 무척이나 가슴 아팠다.

그저 “우리가 하던” 대로…
예배당이나 잘 짓고, 예수 믿고 복받으라고 이야기나 하고, 헌금 거두어서 다시 예배당 짓고…
교인들이 뭔가 맥이 빠졌다 싶으면 특새나 돌려서 기강잡고…

민중의 아편이 되어버린 기독교가…
양식이 있는 사람들에게 매력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영광스러운 부활의 아침…
그 부활의 주님을 따른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에서 조차…
그 부활의 영광을 소리높여 찬송하고 기뻐하지 못하는 현실이,
숨이막히도록 슬펐다.

그러나 더욱 슬픈 것은,
그런 현상을 바라보며 울지 않는 나 자신과…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는 이들의 모습이었다.

부활절 묵상

지난 1-2년간,
예수의 고난과 죽으심, 대속하시는 사랑등을 많이 묵상하고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예수의 숭리와 부활, 악을 심판하시는 부활 등을 많이 묵상하고 기억하는 쪽으로 내가 많이 움직여 왔다.

섬기는 KOSTA의 주제와 관련해서 그렇게 된 부분도 있고,
내가 접했던 책들과, 주변의 내가 존경하는 동역자들의 comment에 영향을 받은것도 크다.

“Christ is Risen!”
이라는 것이, 초대교회 인사였듯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셨다는 것이 내 유일한 소망의 근거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할터인데.

CHRIST IS RISEN!!!

고린도전서 15:13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14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

15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거짓되이 증언하는 자로 판명될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이 정말로 없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지 아니하셨을 터인데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셨다고,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가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16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17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18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1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21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니, 또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의 부활도 옵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부활절, 2009

한국에서 나는 아주 작은 개척교회에 다녔었다.
“대학 청년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교회 전체의 절반이 되는 그런 교회였다.

매년 부활절이면 나같은 사람도 함께, 온 교인이 부활절 칸타타를 부르는… 그런 작은 교회였다.
주일학교 어린아이들은 egg hunting을 했다.
매일 허름하게 청바지만 입고 가다가 그날은 한번 넥타이를 메고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부활의 기쁨을 함께 지체된 사람들과 나누는 기쁨이 있었다.
정말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으로 기뻐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 가족이 됨을 기뻐했다.

이번이 미국에서 보낸 14번째 부활절이다.

미국에서,
특히 ‘건강한’ 미국 교회들의 부활절 message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복음전도’ message 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선 일년내내 부활절하고 성탄절 두번 나오는 날라리들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이번 부활절 Grace Chapel 설교를 들으면서는…
설교자가 어떻게든 이 사람들을 다음주에도 오게 하고 싶다는 그 순수한 간절함이 내 가슴에도 느껴졌다.
어떻게 들으면 거의 begging 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다음주에 또 와봐라. 오늘 했던 이 message와 연관시켜서 다음 시리즈를 들어봐라…

기독교가 삶과 가치관이아닌,
종교가 되어버린 후…
다시 그 종교가 이제는 문화로 전락해 버린 모습
그나마 그 문화 마저도 이제는 희미해져가는 모습…

그 속에서 일년에 한두번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을 믿는 그 소중함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합당하고 바람직한 일인가.

그러나…
한편…
함께 그리스도의 몸된 성도들끼리…
우리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은 영 아쉽다.

어둠이 더 이상 주님을 묶어 둘 수 없었다…
이제는 그 부활의 주님을 우리가 함께 주로 고백하는 것이다.
부활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님이시다..
그런 공동체적 고백이 이루어는 부활절의 모습이 그립고.. 아쉽다.

내 평생에…
또 다시 그런 부활절을 만나볼 수 있을까.

민우 세대에게는…
우리 세대가 그런 부활절을 물려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