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무엇을 향해 우는가” 라는 글에서 약간 더 update된 version이다.
1.상실의 울음
어떤 이들은,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속상해서, 혹은 자신의 아픔이나 상실로 인해서 운다.
2. 정의의 울음
어떤 이들은, 깨어진 세상을 보며, 다른 이들의 아픔을 보며, 불의와 악을 보며, 안타까움으로 운다.
3. Coram Deo의 울음
어떤 이들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의 본질을 이해하고 깨닫고… 자신을 바라보며 운다.
여기서 각각,
건강한 형태의 울음과 건강하지 못한 형태의 울음이 더 있을 것 같아 세분해본다.
1-1 건강하지 못한 상실의 울음
내가 이루고 싶은 아주 이기적인 욕심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대한 상실감. 번영신학, 기복신학은 인간의 이 부분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울음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1-2 건강한 상실의 울음
사랑하는 대상이나 가치등을 잃었을때 우는 울음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났을때 우는 울음 등과 같은… 이것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2-1 건강하지 못한 정의의 울음
이 울음이, 공정하지 못한 분노로 연결되어 고착화 되면, 나와 남이 모두 함께 망아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런 의미에서, 울음의 근거가 건강하다고 해서, 반드시 그 울음 자체가 건강한 것은 아니다.
좋은 생각을 하는 나쁜 사람은 참 많다. (홍정길 목사님의 표현)
히틀러도 그 생각을 찬찬히 보면 참 좋은 생각을 많이 했었다.
2-2 건강한 정의의 울음
그런 의미에서, 울음을 통해 다다르게 되는 곳이, 하나님을 향한 소망, 하나님의 주권, 악의 심판에 대한 약속을 믿음 등등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건강한 울음을 울어야 하는데, 그러면서 또한 정의의 눈물을 흘리는 과정 중에 계속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어야 자신이 망가지지 않는 것 같다.
3-1 건강하지 못한 Coram Deo의 눈물
사실 Coram Deo를 제대로 하고 있다면 건강하지 못한 눈물이 있을 수 없다.
Coram Deo 없이, 자신의 모습에 절망하고 있기 때문에 왜곡이 생기는 것일 것이다.
자기 연민, 절망, 자포자기 등등의 모습이 이 부류에 해당할 수 있을 것 같다.
3-2 건강한 Coram Deo의 눈물
하나님 앞에 서기 때문에, 자신의 무익함을 겸손하게, 절신하게 깨닫고,
도무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소망이 없음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여전히 그 은혜 안에 있으면서도 이토록 하나님께 무익한 모습이라는 것 때문에 끊임없이 아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로인해,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도무지 소망이 없음을 더 인정하게 되는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