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언으로 기도할때가 있다.
그러나 보통 그 방언기도를 많이 누리거나 사용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방언기도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인 것 같다.
가령, 혼자서 기도를 할때 방언기도를 하는 경우는 참 드물다.
그런데 그런 시간이 지속되다보니, 최근에는 방언기도 자체가 잘 나오질 않았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나는 방언기도를 추구하는 그런 스타일의 신앙인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런걸 추구하는 사람들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방언기도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내 기도가 많이 메마르고 있다는 표지처럼 생각되었다.
특히 앞에서 이야기하는 영적외로움과 관련되어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KOSTA 집회에 참석해서 간사들과 함께 기도를 하면서 참 오랜만에 방언으로 기도를 할 수 있었다.
나는 방언기도에 대해 아주 무지한 사람이므로,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번 집회가 내게도 의미있는 집회가 되게 하시려나보다”
앞에서 쓴대로,
영적 메마름과 영적 외로움에 힘들어하던 내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주셨다.
그 선물은,
소위 뜨거움을 회복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셨다.
그 많은 생각들을 ‘깨달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자신이 없지만, 적어도 내 외로움의 내용과 근거, 그리고 해결책에대한 작은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