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에 대하여 (7) –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

앞에서 언급했지만,
지혜는 결국 여러 단편적 지식들을 통합해 내는 틀을 제공해준다.

그래서, 지혜를 갖추면, 지식 습득이 더 쉬워진다.

그런데, 단편적 지식의 통합은 결국,
그 모든 것을 엮어내는 원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면 당연히 더 쉽다.

나는,
오랫동안 신실하게 신앙을 가져온, 그리 많이 배우지 못한 노인에게서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지적 능력의 차이가 있기도 하고,
경험이나 배움의 기회의 차이가 있기도 하기 때문에,
대학입학시험 커트라인을 정하듯이 지혜를 재단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적어도 어떤 사람이 진리를 정말 깨달았다면,
그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가상의 상태와 비교해 보았을때,
비교할 수 없이 지혜로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진리에대한 깊은 깨달음과 그것에 자신을 던져 사는 삶이 없이도,
진리에 대한 지식을 모으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지혜에 이르지 못한다.

잠언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거룩한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내가 보기엔 히브리문학적 표현으로 앞의 구절과 뒤의 구절이 같은 것을 의미하는 반복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 거룩한 자를 아는 것) = (지혜의 근본 = 명철)
뭐 이런 도식인 것이다.

여호와를 아는 것(Yada)는, 부부과 성관계를 하는 것과 같은 앎을 이야기한다고 한다.
그렇게 여호와를 아는 것이 결국 사람을 진리와, 지혜로 이끈다는 것이겠다.

나는,
지혜를 잃어버린 현대의 기독교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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