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경험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흔히 ‘신비체험’비슷한 쪽으로 생각을 하게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 신앙의 경험은 새로운 성경해석을 접하여 관점을 새롭게하는 신학적 훈련같은 대단히 이성적인 부분도 포함되고, 상실이나 좌절과 같은 실존적 경험도 포함한다.
말하자면 외부에서 들어는 정보를 내부에서 해석하는 작업 전체가 신앙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그 경험이 대단히 중요한 종교이다. 어떤 사람이 얼마나 무엇을 깨달았는지, 얼마나 무엇을 적용해보았는지 등등이 그 사람의 신앙을 define하게 된다.
신앙경험의 아주 깊은 것이 결여된 사람들은 그 깊은 신앙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정말 뭔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땐 말로는 그거 다 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실제로 이야기를 해보면 정말 그걸 모르는거다.
어떤 신앙경험은 평생 한번의 경험이 그 사람의 평생을 지탱해주기도 한다. 언제 한번 성경을 읽으며 뜨겁게 눈물 흘렸던 것, 좌절의 순간에 기도하다가 느꼈던 하나님의 임재, 무덤덤하게 책을 읽다가 무릎을 치며 무언가를 깨닫는 것,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던 가까운 사람이 완전히 새사람이 되는 것을 목격하는 것 등등.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 어떤 강렬한 신앙의 경험으로 평생 그것을 붙들고 사는데,
그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과는 참 대화가 어렵다.
십자가 아래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회심했던 평신도가, 십가가 설교를 하지 않는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느끼는 답답함도 그런 대화의 단절일수 있겠다.
신앙경험의 부재는 그리고,
상상력의 부재를 가지고 온다.
경험이 없으니, 그것을 바탕으로 믿음의 상상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이 가지는, 때로는 무모해보이는 상상을, 그저 무모한 것으로만 치부해버리는 사람에게는 그 경험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나는…
매 순간 삶의 경험이 ‘신앙의 경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과 신앙을 깊이 성찰하고 묵상하는 일이 숨쉬듯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상성은 현대사회의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