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과 피상성

복음서에서 위선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hypocrisy라는 영어단어와 발음도 비슷하다.
ὑπόκρισις (후포크리시스 쯤으로 읽을 수 있겠다.)

그런데 이 단어를 ‘위선’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내용을 읽었다.
Joel Green의 누가복음 주석 (NICWT)에서 본 것이다.

후포크리시스라는 단어의 용례를 70인역에서 찾아보면,
위선자라는 단어는 대개 하나님의 뜻에 맞는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 혹은 godless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후포크리시스’로 표현하신 것은,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 성경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이 사람들의 행동이 깊이 뿌리를 두지 못한 피상적인 종교적 열심에 머물러 있었던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는 설명.

내가 나름대로 그것을 곰곰히 곱씹어보면,
바리새인의 문제는 속은 거짓이 가득한데 겉만 뻔지르르한 위선이 문제가 아니라,
속은 텅 피어있어 내용이 없는데 겉은 종교성으로 가득한 피상성이 문제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누가복음에 나와있는 바리새인의 ‘후포크리시스’를 ‘피상성’이라고 생각하고 읽어보니 이야기가 아주 술술~ 잘 풀린다!

최근 피상성에 대해 들었던 말 중에 아주 멋진 말.
미라슬라브 볼프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Religion is most dangerous when it’s superficial”

깊이 생각할줄 모르는 종교성은 파괴적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2 thoughts on “위선과 피상성”

  1. 잘 지내시죠? 요즘 종교의 영이 대한 생각을 좀 해보고 있는데 도움이 많이 되네요. 속을 꽉 채운 신앙 생활을 한다는것이 참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1.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시죠?
      얼굴보고 밥먹으며 얘기했던게 언젠가 싶네요. 한 동네에 살면서 이렇게 얼굴도 못보고… 이제 COVID-19도 어느정도 막바지에 다다른 것 같으니, 여름되면 언제 한번 또 밥이라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라도 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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