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같은 글들

인터넷에는 쓰레기 같은 글들이 참 많다.
아주 나쁜 사상을 전파하는 글들도 있고, 쓰는 태도와 자세에 문제가 많은 것들도 많다.
그렇지만 그렇게 아주 나쁜 글들중 내가 아주 극혐하는 글들은,
소위 ‘연예계 기사’들이다.

누가 무슨 영화에 출연했다, 누가 새로운 음악을 발표했다, 누가 무슨 상을 받았다 등등이야 뭐 당연히 기사에서 다룰만한 것들이다.

그런데,
누가 누구와 사귀었다, 누가 양다리를 걸쳤다, 누가 누구 돈을 떼어 먹었다, 누가 사업을 하다가 망했다, 누가 자기 부모와 갈들이 있더라… 등등과 같은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가 아무런 공익적 목적이 없다.

그건 그냥 남의 사생활 들여다보고, 남 이야기하고자하는 나쁜 습관을 그렇게 시궁창과 같이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떤 배우와 어떤 가수가 연애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알고 싶지 않다.
설사 그런 것이 궁금해진다고 해도 그걸 누가 내게 알려주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냥 그건 gossip을 하고 싶어하는 내 마음의 추한 구석의 쓰레기를 뒤집어 놓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한 쪽의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사람을 매장해버리고,
비난하고, cancel하는 일들에 그렇게 동참하고 싶지 않다.

그 쓰레기들을 좀 보지 않기를…

실수

결혼할때 만들었던 결혼반지는 내 손에 맞지 않는다. 그렇게 된지 꽤 되었다.
그래서 한 10년전쯤 부터는 amazon에서 7불짜리 반지를 사서 그걸 끼고 다녔었다.
그러다가 covid-19시간 밖에 나가지 않을때 그나마 그것도 끼지 않고 있다보니 그 반지를 잃어버렸다.
그래도 뭐 7불짜리 반지이니, 별로 아깝지도 않았고 그러려니 했다.

금년들어서 한동안 반지를 끼지 않다가 그래도 뭔가 허전하다 싶어서, 그리고 반지를 끼는 나이 많은 결혼한 아저씨들을 보니 나도 껴야하나 싶어서, 다시 amazon에서 9불짜리 반지 하나를 샀다.

예전에 나는 밤에 잘때난 반지를 빼곤 했는데, 그럴때마다 내 반지를 올려놓는 작은 인형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데 한동안 반지를 끼지 않으니 그것도 어디 갔는지 모르겠고…. 해서 반지를 밤에 걸어놓을 수 있는 작은 figurine이라고나 할까… 그런걸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ebay에서 search를 했다.

뭐라고 keyword를 써서 찾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최근 내 ebay에는 완전히 적나라하게 야한 음…. 뭐라고 표현하기도 머시기한… 그런 인형이라고해야하나 피규어라고 해야하나… 그런것들이 쭈루룩 떠 있게 되었다.

심지어 중국에 있는 seller들이, 완전 포르노그래픽한 인형/피규어들을 더 싼값에 판다면서 offer를 보내오기도 했다.

잠깐 실수 했더니만 내 ebay의 첫 페이지에는 도무지 쳐다보기 어려울만큼 민망한 것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나는 그래도 ebay에서 이것저것 가끔 사는 편인데, 다른 물건들은 한번 그걸 search했다고 해서 그걸로 그렇게 온통 도배가 되지는 않는데, 이건 이상하게 빠르게 완전 가득 도배가 되었다.

내 search history를 지우고 어쩌고 했더니만 그래도 약간 정상화 되긴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민망한 것들이 자꾸 떠 있다.

당분간 ebay에서 건전한 물품들을 search해서 좀 사야할 듯 하다.
잠깐의 실수가 엄청난 민망함을 가져왔다.

혼란과 샬롬

작년 가을,
KOSTA 관계자 몇분들과 함께 금년 KOSTA 주제를 논의하는 모임을 coordinate했었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중 하나는… 샬롬이었다.

내년(2025년)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이후 여러가지 정치적 사회적 반목이 심할 것 같고,
그와 연관된 경제적 불확실성도 많이 있게 될 것 같다.
아마 정말 모두 안녕하냐는 인사가 아주 진지하게 들리게 될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주제가 샬롬으로 정해졌다.

2025년,
세상은 그때 모였던 사람들이 상상했던것보다 훨씬 더 혼란스럽고, 시끄럽고, 정치적 사회적 반목이 심하고, 경제적 불확실성도 심하다.

현실이 예상보다 훨씬 심하다.

샬롬의 메세지가 정말 더 간절하다.

Stock Crash

미국은 주식 시장이 엄청 추락하고 있다.

한달쯤 전 나스닥이 20,000 정도였는데, 어제는 17,500까지 떨어졌으니 한달 남짓 기간동안 10% 넘게 떨어졌다.

나는 거액을 투자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가지고 있는 retirement fund는 이렇게 저렇게 그 주식시장에 들어가 있으니, 내 재산도 꽤 많이 줄어들어버린 셈이다.

뉴스는 난리다. 세상이 무너졌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이게 침체의 시작이 아니겠느냐 하는 공포다.

생각했던것보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후 혼란이 훨씬 더 큰 것 같다. ㅠㅠ

이해되지 않는 것을 물어본다면

수학에서는,
0.9999999999999…. 는 1과 같다.
얼핏 생각해보면 이게 뭔 소리인가 싶은데 그렇다.

수학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이걸 증명하는 방법도 알고 있는게 있고,
그 논리에 따르면 0.9999999…가 1과 같다는 걸 외워서 알고 있긴 하지만 개념으로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0.999999….. 가 정말 무엇인가 하는 이해가 부족하고, (혹은 무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일수도 있겠다.)
양쪽이 같다는 정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가 문득 하게 된 생각.
내 동기들중 수학을 정말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심지어 그 중 한명은 지금 현재 MIT의 수학과 교수다!
그런 친구들이라면 내가 어리버리하게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걸 설명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엄청 수학 잘하던 친구들과 연락이 끊긴지도 좀 되었고, 이런 사소한거 하나 물어보려고 30년만에 그 친구들에게 연락하는 것도 뭐하고.

마찬가지로,
나는 내 삶에 대해, 세상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내 신앙에 대해,
정말 모르는 것이 많고 질문도 많다.

어떤 것은 그냥 딸딸 외워서 그냥 그런거다…. 이렇게 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아주 기본적인 것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고등학교때까지만 해도 모든 학생이 다 수학을 배우지만 수학을 엄청 잘하는 재능은 사실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게 아니다.
역시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으로 살지만 막상 그 믿음을 더 깊게 이해하고 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정말 깊은 사색과 고민이 그 삶속에 담겨있는 현인으로부터, 그 지혜를 더 배워보고 싶다.

I’m lost

Lent가 시작되었고,
뭔가 예수님을 더 가까이 하고 싶은데…

  • 나는 여러가지로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고있고
  • 그 어떤 것도 잘 하지 못하고 있다는 심한 자책감이 시달리고 있고
  •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과거에 대한 후회가 유난히 심하게 나를 다스리고 있고
  • 뭔가 하겠다고 약속한 것들은 많은데 내가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일까 하는 회의가 가득하다.

예수님은 멀리 있는 것 같고,
나는 홀로 남은 것 같고,
기도는 막혔고,
내 삶은 바쁘게 돌아간다.

누가 이 사망의 늪에서 나를 건저내랴…

사순절 이틀째의 생각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이번 사순절에 읽기로 결심한 책.
나는 저자에 대해 아는 바도 없고, 책에 대해서도 별로 알지 못하지만 제목이 좋았고 출판사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서문에 나온 짧은 단락이 완전히 좋았다.

성직자 후보생을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한 면접관은 후보생들에게 버스 정류장에서 어떤 사람이 “부활이 무슨 뜻인지 설명 좀 해보시오. 버스가 오려면 3분이 남았으니 그 시간 안에”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지를 물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면접관에게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묻자, 면접관은 답했습니다.
“저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해주기를 바랐습니다. 정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원한다면 당신은 버스를 지나쳐야 한다고 말이지요”

근본없음

나는 딱 이 사람으로부터 믿음에 관한 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이 사람으로부터 배웠다고 이야기할만한 어떤 한 사람의 선배가 없다.
나는 대학교때 회심경험을 했는데, 내가 다닌 학교는 지방에 새로 생긴 학교였고 물어볼 수 있는 선배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서 기독교 관련 서적을 잔뜩 사서 공부하면서 기독교의 기본에 대해 어느정도 배우게 되었다.
물론 교회에서 가르쳐주는 내용이 있었고,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으니 그런 내용들에 많이 익숙했지만, 그렇게 교회에서 가르쳐주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마침 그때 한국의 기독교 서적이 막 많이 나오기 시작하던 때여서 감사하게도 그 도움을 많이 얻었다.

그리고나서 혼자서 많이 찾아다니고, 알아보면서 여러 경험들을 했다.
좌충우돌 성경공부도 따라다녀보고, 책읽기 모임, 찬양 집회, 약간 신비주의적 기도모임 등등 여러곳을 따라다녀보았다.
그것 말고도 책에서 배운 것으로 여러가지를 해 보았다.
개척교회에서 청년부 만드는 일도 해 보았고, 후배들 모아서 캠퍼스 성경공부 모임도 만들어 보았고, 과 선후배들과 성경공부/책읽기 모임도 해 보았고, 직장에 가서는 직장내 성경공부 모임도 만들어 보았다.
누가 가르쳐준것 없이 그냥 그런거 해보자… 해서 아주 무식하게 달려들어서 했던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참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그분들로부터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그중 어떤 딱 한분이 내 영적 스승이라고 이야기할만한 분들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결국 나는 예수님만이 내 유일한 스승이라고 (교만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20대에 내가 만났던 예수님, 30대에 내가 보았던 예수님, 40대에 나와 동행해주셨던 예수님, 50대에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은 조금씩 다른분이다. ㅠㅠ
예수님이 바뀌신것 아닐테고, 내가 바뀐 것이겠지.

그래서 나는 뭐 딱 근본이 없다.
그래서 나와 이야기를 해보고 나서는 흔히 대화 상대가, ‘아 이 사람은 나와 생각이 비슷하구나’라고 쉽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런 이유가, 아마도 그분의 현재상태에 뿌리를 두고 있는 그 생각을 나도 어설프게 알기도 하고, 동의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근본도 없고, 깊이도 없지만,
나름 이렇게 예수님 믿는 것도 가능한것이겠다…

전쟁과 정의

나는 전쟁을 겪어본 경험이 없다.
우리 부모님을 통해 들었던 간접적 경험, 책이나 영화, 혹은 TV 다큐멘터리 등에서 배웠을 뿐이다.

그럼에도,전쟁은 끔찍하다.
어떤 이유에서든, 전쟁은 끔찍하다.

나는 스스로를 ‘평화주의자'(pacifist)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너무 쉽게 어떤 전쟁을 의로운 전쟁 (just war)라고 이야기하는 어떤 사람들에대해 몹시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정말, 정말, 아주 극단적인 어떤 상황에, 전쟁이 필요할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전쟁은 정말 끔찍한 것이다.

지난주 있었던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 사이의 말싸움이 큰 뉴스가 되었다.
나는 복잡한 국제정치도 잘 모르고, 외교 그런 것도 모른다. 그런것에 수싸움을 계산할만큼 통찰이 있지도 않다.

그러나…
나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1.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것은 잘못이다.
  2.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군사력과 국력을 가지고 있다.
  3. 서방세계가 러시아를 징계하는 모든 행위들이 충분히 잘 작동하고 있지 못하다. 러시아는 여전히 건재하다.
  4. 지금도 그 전쟁 속에서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가고 있다. 그중에는 북한사람도 있다.
  5. 우크라이나의 요구를 러시아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다.

상황이 이렇다면,
러시아의 침략이 잘못되었고 어쩌고를 다 감안하고 생각해 보아도,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정말 안타깝겠지만 손해를 본 상태로 정전을 하는 것 말고는 다른 해결책이 없는 것 아닌가.

나는 지금의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 기독교인으로서의 양심으로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지난주에 미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 국가원수를 그렇게 모욕한 행위는 여러가지로 비판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쩌면….
정말 이런 방법이 아니고는 지금 사람이 계속 죽어가는 전쟁을 마무리지을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러시아는 나쁘고,
트럼프도 나쁘고,
우크라이나는 불쌍하지만…
어쩌면 트럼프가, 그가 공약한대로, 이렇게 전쟁을 종식시키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그건 정의가 아니라고, 그건 옳지 못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고, 나도 당연히 심정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 엄청난 러시아의 국력과 군사력 때문에 그 정의가 구현될수 없는걸 어쩌랴.
이렇게라도 전쟁을 멈추어서 사람이 더 죽지 않게는 해야하지 않겠나…
뭐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Drifted away, Sojourner

나는 박사를 비교적 ‘전통적인’ 쪽에서 했다. – 반도체 소자를 만드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plasma processing이라는 분야다.
말하자면 아주 시대를 잘 타는 분야라기 보다는, 그 분야가 만들어진지도 좀 오래 되었고, 그래서 그쪽의 산업도 비교적 많이 성숙해진 쪽이다.

내가 대학교때 이쪽을 하겠다고 했을때엔 이게 매우 ‘hot’한 분야였다. 그런데 내가 박사를 마칠때쯤에는 그렇게 ‘hot’한 분야는 더 이상 아니었다.

박사라면 그래도 뭔가 나름대로의 ‘이론’같은거 하나쯤은 새롭게 만들어내는 일을 해야한다는 나름대로의 고집이랄까 그런게 있었고, 그래서 나는 박사과정이 오래걸리긴 했지만 막판에 그걸 정리해서 논문으로 쓸때는 매우 재미있었다. 혼자 수식을 풀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그걸 실험결과와 맞추어보면서 무릎을 치고 좋아했다.

그렇게 어떻게 보면 살짝 ‘시대에 뒤떨어지는’ 분야의 박사를 하게 되었는데, 대개는 그런 사람들이 우리 실험실에 많았다.

그래서 얼마전 나와 함께 실험실에서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찾아보았다. 모두 다 찾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역시 제일 많은 쪽은 반도체 회사다. 모두 다 미국에 있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지금은 그래도 조금씩 높은 사람들이 되어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졸업을 하고 한번도 회사를 옮기지 않고 그렇게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대단…)

그리고 일부 연구직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학교 교수가 되었거나 미국 내의 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어쨌든 학생때도 논문의 질이 좋았던 사람들이다.

또, 내가 졸업할때 전후로, 컴퓨터 시물레이션같은 것을 써봤던 사람들중 일부는 Wall street으로 갔다. 혹은 컨설팅 회사로 갔다. 그 후에 골드만삭스 부사장이 된 사람도 있고, 요즘도 가끔 반도체 관련 주식 해설을 하는 사람으로 TV에 나오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wall street이나 컨설팅을 거쳐서 중국에 가서 사업을 하고 있는 중국출신 친구들도 있다. 이 사람들은 학생때부터 빠릿빠릿하게 뭔가 챙겨먹을거 잘 챙겨먹고, 흐름 분석 잘하고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 분야에 남는것 보다 아예 돈 왕창버는 쪽에 가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 이 사람들이 돈은 제일 많이 벌고 있는 듯 하다)

많지는 않지만 정부쪽에가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하나 있고, 작은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처럼 졸업후 그 분야와 크게 관계없이 이곳 실리콘밸리에서 이렇게 일하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ㅠㅠ 그러니 우리 실험실출신들과 나는 졸업후에 다시 만나는 일도 별로 없게 되었고,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도 거의 없다. 내가 그렇게 재미있게 공부했던 분야도 이제 지금은 그 후 더 많이 발전했을테고, 내 지식은 예전 지식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회사에서 내가 전공하지 않은 일들을 한지 이제 벌써 15년쯤 되었다.
그러면서 그쪽 전공하고, 그쪽 일을 오래 한 사람들과 계속 일을 하고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재미있느냐….
박사과정때 했던 그 일들이 내겐 더 재미있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그쪽분야에서는 plasma processing이라는걸 제대로 공부하고 연구한 그렇게 많지 않은 사람들중 하나였다. 어디가도 나만큼 이쪽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아마 그것은 거의 사실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전문가가 아닌데 사람들이 나를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일을 하고 있다.
가끔은 나는 전문가가 아닌데 전문가인척 해야하는 상황도 있다.
그렇게 drifted away해서 여기까지 와 있다.

“야곱이 바로에게 대답하였다.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햇수가 백 년 하고도 삼십 년입니다. 저의 조상들이 세상을 떠돌던 햇수에 비하면, 제가 누린 햇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창세기 47:9)

야곱은 자신의 삶을 ‘떠돌았던’ 삶이라고 이야기했고, 그 세월이 험악했다고 회고했다.
떠돌아 살았다는 표현을 NASB에서는 living abroad라고 번역했다. 히브리어로는 ‘마구르’라고 하는 단어인데 sojourning place라고 번역하는 명사다.

올해 여름, 나는 미국에 온지 30년이 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렇게 drifted 해가며, 그렇게 sojourning 해가며 살았구나 싶다. 그냥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