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V?

지난주는 감기같은 증상으로 며칠 쉬었다.
월,화는 회사도 쉬었고, 수,목,금도 집에서 일했다.

지금은 건강 상태로는 괜찮긴 하지만, 아직은 기침이 조금 남아있어서,
하루이틀 더 집에서 일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여러 지역에서 하수/폐수에서 어떤 바이러스들이 나오는지를 테스트해서 모아놓는 website가 있다.

https://data.wastewaterscan.org/

이 data에 따르면 미국 전체에서 RSV (Respiratory Syncytial Virus)가 꽤 대대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재채기가 미친듯이 나오더니만,
하루 정도는 오한도 있고, 식욕도 없고, 좀 심한 독감인것 같았다.
보통 독감은 그래도 2~3일 정도는 아프곤 한데, 이건 하루 심하게 아프고나서는 아주 빨리 괜찮아졌다.

covid 테스트도 당연히 여러번 했는데, 그건 negative.

의사와도 video call을 했는데, 의사 말로도 RSV일 가능성이 많다고.

버려도 되는 기억, 버릴 수 없는 기억

요즘 Google에서 잘 안쓰는 계정들을 정리하고 있다.
그래서 몇년? 몇개월?동안 쓰지 않은 이메일을 지운다고 연락이 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 내가 이런 이메일도 만들었었네’ 싶은 이메일들도 꽤 많이 있다.
예전에 학생때 살던 곳을 sublet하기 위해서 임시로 만들었던 이메일,
중고로 내 laptop을 팔려고 할때 만들었던 이메일,
KOSTA때문에 임시로 만들었던 이메일 등등.

대부분은 그냥 지워져도 하나도 문제 없는 이메일들이다.

그런데,
그중 하나는…
민우가 어릴때 민우를 위해서 만든 이메일이다.
‘싼타 할아버지’ 이메일이다.

그 이메일로부터 민우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너는 금년에 착했으니, 선물을 주겠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민우가 처음에는 정말 그걸 믿었다! 그리곤 그 이메일에 꼬박꼬박 답을 했었다.
물론 나중에는 민우가 그 이메일 패스워드를 알아내고, 자기가 그 이메일 어카운트에 들어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지만…
그 이메일 주소는 당연히 지우지 않을 예정이다.

살다보면,
잊어도 되는 기억이 있고,
잊지 말아야할, 잊고 싶지 않은 기억도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그 이메일주소로 로그인해서, 민우에게 산타할아버지 선물을 주겠다고 한번 이야기해볼 예정이다.

리더십의 부재

Bottom-up의 의사소통을 중시하는 리더십은,
Top-down의 의사소통 중심의 리더십보다 훨씬 더 어렵다.

Bottom-up을 정말 제대로 하는 리더는,
자신이 뛰어나게 할 수 있는 Top-down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오히려 건강한 방향을 운전해내는 사람이다.

Top-down이 자신없으니 나는 Bottom-up만 하겠다는 리더는 그냥 게으르거나 무능한거다.
혹은 자발성이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중요하게 해야할 일을 하지 못하는 리더는 그 자격이 부족한거다.

그런데…
정말…
아주 가끔은…
그런 무능하거나 게으른 리더 아래에서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이 결국 그 조직을 구해내고, 자신이 놀라운 리더로 선다.

망가진 세상 속에서 살기 (5)

천재지변과 같은 자연재해,
정신병, 치매, 불치병 같은 심각한 질병들,
아주 깊고 깊은 인간관계의 갈등,
헤어나오기 어려워보이는 경제적 어려움…

무엇이 되었건 간에,
많은 노력을 통해서 그것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매우 정당하면서도 건강하다.

그렇지만,
어떤 지점에 이르러서는…
그냥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또한 필요할 수 있다.

이것은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 수용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망가진 세상 속에서 살기 (4)

예전에 Tim Keller가 어떤 설교에서 한 예화.

교회에서 전쟁으로 엉망이 된 어떤 나라에 정신과 의사들을 봉사단으로 보냈다고 한다.
아마 전쟁이 있었고, 그곳의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그 사람들을 돕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막상 그 정신과 의사들이 갔다가 거의 대부분 그냥 돌아왔다고.
막상 갔더니, 그 사람들의 상황을 끔찍하고 비참했지만, 그 사람들에게 어떤 정신적인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였단다.

그 이유는,
그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어려움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닌데, 도저히 일어나지 말아야할 일들이 자신에게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

나는 망가진 세상 속에서 사는 매우 중요한 팁을 그곳에서 얻었다.
그것은, 망가진 것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서구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은,
뭔가 내게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해내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한다.
어떤 사람을 고소하기도 하고, 많은 돈과 자원을 들여서 문제 해결을 추구한다.

그것이 가치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삶 속에서 무너져있는 어떤 것들을 그저…
그러려니… 이것이 내 삶의 일부이려니…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결국 망가진 세상 속에서 사는 팁이 아닐까 싶다.

망가진 세상 속에서 살기 (3)

망가진 세상을 살때 흔히 하는 일은,
그 망가진 것에 눈을 감고 회피하는 것이다.

그게 꽤 잘 먹힌다.
다만, 그렇게 눈을 감고 회피하지 못할만큼 그 망가진 것이 내게 고통으로 다가오기 전 까지는.

갑작스러운 사고,자연재해 등과 같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문제로부터,
인간관계의 문제, 심각한 질병, 경제적 문제 등과 같이 내가 뭔가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닥치면 그것을 감당하기 너무 힘든 문제 등은 결국 어떻게든 나로 하여금 이 ‘깨어진 세상’을 해석하라는 압박을 가한다.
아주 무지막지한 압박이다.

그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 문제를 감싸고 있는 전체 frame을 이해하고, 그것을 해석해내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할때도 많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망가진 세상 속에서 살면서 그 망가진 세상을 해석하는 것은 참 어렵지만 맞닥드려야하는 숙제인 듯 하다.

망가진 세상 속에서 살기 (2)

내가 어릴때 생각했던 것 같이,
‘어제보다 나은 내일’이 늘 현실이 아니라는 깨달으면서 정말 나는 마음이 어려웠다.
대충 대학을 마칠때쯤부터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름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방황’도 했었다.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하는 동안,
나는 연구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다.

뭐 학과 공부는 그냥 하던대로 수업듣고 시험보면 무리하지 않고 잘 할 수 있었지만,
실제 시간을 들이고 생각을 쏟아야하는 연구에는 그렇게 애를 쓰지 않았다.

실험실에 가서 열심히 ‘일’을 하긴 하는데,
정말 억지로 하는 일이었고, 의미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적극적으로 생각을 하면서 연구를 하는 일들은 그렇게 잘 하지 못했다.

망가진 세상을 해석해 낼 수 없었던 나의 유치함 때문이었다.

망가진 세상 속에서 살기 (1)

나는 그래도 어릴때 별로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
커서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꾸었고,
그렇게 열심히 살면 더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노력하고 정직하고 착하게 살면 내가 사는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부끄럽게도 나는 꽤 나이가 들때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 꿈이 그냥 유치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아마 30대가 들어서였던 것 같다.

물론 그 이전에도, 세상의 아픔에 대한 지적 동의는 있었지만,
그것이 내 삶의 일부라고 인식하면서 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아니 왜 내게 이런 일이?’ 라고 이야기할만한 것들을 만나면
놀라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나는 여전히 10살짜리 어린아이의 순진하면서 유치한 생각으로부터 충분히 자라지 못한 것 같다.

욥기

요즘 매일 성경의 묵상 본문이 욥기다.
욥기는 내가 꽤 여러번 도전했는데, 매번 뭔가 ‘제대로’ 읽었다는 생각이 들게 읽는 것을 실패해온 책이다.

뭐 내용도 대충 알고 있고,
그 욥기를 해석하는 설명도 많이 들었고,
혼자서 그걸 읽기도 했지만…

뭐랄까…
나는 아직 욥기의 ‘맛’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번주 초,
전혀 뜬금 없이 한국에서 어떤 분이 내게 자신이 욥기 자료들을 정리했다면서 보내주셨다.
뜨금.

아니… 내가 설렁설렁 하고 있다는걸 그분은 어찌 아셨는지.

바짝 다시 긴장하고 욥기를 읽는데…
그냥 아직도 잘 모르겠다.
고기를 씹는데, 씹는 질감만 있고 그 맛은 느끼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I want to see Jesus

그냥…
정말 뜬금없이…
무작정 예수님을 정말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정말 그렇다.

물론 내 삶이 힘들거나 어려운 문제 가운데 있을때도 그렇지만,
그냥 아무런 일이 없는데도 무작정 예수님이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주 나이 많은 분들에 비하면 나야 아직 애송이일지 모르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때가 그래도 꽤 있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나서,
휴우…. 힘든데… 아… 예수님 만나고 싶다.

이게 뭐 죽고싶다는 염세적 생각인건 아니다.

그냥 예수님이 보고 싶은거다.

어제밤엔 정말 그렇게 예수님이 보고 싶었다.
마음에 여러가지 무거운 것을 안고… 예수님을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