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겨운 위선

  1. 회사에서 무슨 프로젝트가 잘 되었다는 이메일이 돌면, 그 뒤에 사람들이 줄줄이 축하한다, 아주 훌륭하다, 모두가 한팀이 되어 이 일을 해내기 기쁘다, unbelievable, amazing, outstanding과 같은 단어들을 써가면서 칭찬을 한다.
    그런데 그렇게 잘 되었다고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예의상 그렇게 쓰는 거다.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회사에서는 자꾸만 표현의 inflation이 심해진다.
    unbelievable, excellent, superb, amazing과 같은 말들이 자꾸 나오는데… 그런 말들을 너무 계속 쓰다보니 그냥 그렇게 쓰는게 별 감흥이 없게 되었다.

  2. 회사에서 executive들이 흔히, 직원들이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고, 직원들의 만족이 중요하다, 우리가 모두 하나가 되어서, 이 멋진 vision에 다 같이 헌신해서 가자…
    뭐 이렇게 말하는데…
    아… 그 사람들이 그거 진심으로 이야기하는거 아니라는 것도 알고, 그것에 박수쳐주면서 호응하는 사람들도 그거 거짓이라는거 아는데… 그냥 다 같이 거짓말의 홍수 속에 춤을 춘다. 그냥 다 그런다.
    그냥 과장, 거짓말등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3. 이런식으로 매우 흔한 위선이 이번 대량 layoff 사태들을 겪으면서 더 적나라하게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을 해고하면서 여러가지 표현들을 써가며… 어떻게든 있는 직원들은 일하게 만들려는 시도들.
    해고당한 사람들을 위하는척 하면서 괜히 자기가 더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떠벌리고 싶어하는 linkedin의 포스팅들.
    막상 해고당한 사람들에게 직접 도움을 주기보다 말로만 번지르르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
  4. 이 와중에 위선 없이 자기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도 물론 있다.
    이번에 정리해고 당해서 없어진 사람의 자리로 살짝 승진하면서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참지 못하는 사람.

우아…
정말 참 역겨운 모습을 참 많이 본다.

묵상과 기도

새해 조금 더 깊이 있는 묵상과 기도를 위한 방법들을 아직 찾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중 Tim Keller가 자신이 기도를 하는 이야기를 하는 Podcast 하나를 들었다.

그분이 지난 몇년간 췌장암 4기와 싸우면서 기도가 깊어졌다고 했는데,
그중 기도를 하기위해 다음과 같은 루틴을 사용한다고 했다.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깊게 묵상하면서 마음이 뜨거워질 때 까지 계속 그 말씀을 묵상을 한다.
그 후에 그렇게 마음이 뜨거워지면 그때 기도를 한다고.

생각해보면,
꽤 오랫동안 내가 기도를 그렇게 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렇게 기도하고 있지 않는다.

아… 내가 기도하는 법을 잃어버렸었구나 ㅠㅠ

다시 묵상과 기도의 루틴을 잘 만들어보려고 지금 노력중이다.

Prayer of Lament

Google의 Christian group 이메일을 계속 받아보고 있다.
거기서 이런 이메일이 왔다.

오늘부터 점심시간마다 lay-off 당한 사람들을 위해서 애통의 기도 (prayer of lament)를 매일 하려고 한다.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은 sign-up 해라.

우아…
나는 머리를 띵 하고 얻어맞은 듯 했다.
그래… 집단으로 많은 사람들이 layoff 당했고, 그 중 어떤 사람들은 너무 큰 충격과 혼란 속에 있어서 어떻게 도와주어야할지도 잘 모르겠는데…
어쩌면 이런게 필요하겠구나.

나도 layoff 당했던 때를 생각해보면,
한동안은 아무 이메일도 체크하기 싫었고,
누가 내게 잘 있냐고 물어보는 것도 대답하는 것이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나 혼자 우리동네에 있는 금식 기도원에 하루가서 기도하고 오고 그랬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layoff 당한 상황이 많이 마음이 아프고, 무거운데…
나도 그런 prayer of lament에 동참해야겠다.

새해에 다시 읽고자 하는 책들

Rekindle하자는 의미로 다음의 책들을 새로 혹은 일부 책들은 다시 읽으려 계획하고 있다. (일부는 이미 읽기 시작했다.)

  •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 C.S. 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 앤드류 머레이, 겸손
  •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
  • Tim Keller, The Songs of Jesus

그야말로 ‘경건서적’이다.
정말… 조금 경건해지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좀 살 수 있을 것 같다.

AI generated sermon

내가 가끔 보는 youtube channel중에 Matt Whitman이라는 목사의 채널이 있다.

최근에 이분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해 보았다.
– 본문을 하나 선정한 후에,
– 그 본문으로 자신이 짧은 설교문을 하나 쓰고,
– 그 본문을 AI에게 주어서 AI가 설교문을 쓰도록 했다. (ChatGPT)

그랬는데…
정말 놀랍게도, 적어도 내가 듣기로는 어떤 것이 AI가 설교한 것인지, 어떤 것이 그 목사님이 설교문을 쓴 것인지 알아낼 수 없었다.

음…
그런데… 이런 발칙한 생각도 해 보았다.

영 이상한 설교를 하는 목사님보다는 차라리…
좋은 신학서적과 좋은 설교들로 잘 훈련시킨 AI가 더 좋은 설교를 하지 않을까?

Survivor’s Guilt

지난주, 회사에서 아주 큰 스케일의 lay-off가 있었다.
전체의 15%가 lay-off되었다고 한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 그중 어떤 사람들은 연말까지 마지막으로 정말 열심히 했던 사람들이었는데, 새해 회사로 돌아오자 곧 lay-off 되었다.

이렇게 큰 scale의 lay-off가 벌어지면 lay-off된 사람들에게 물론 가장 큰 충격이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도 그 충격이 꽤 크다.

Survivor’s guilt.

나름, 여러번의 lay-off들을 겪었다.
그중 한번은 다들 집단으로 lay-off 되기 전에 내가 나왔었고,
한번은 lay-off 당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 속에서 살아남았다.

이번엔 아마도 survivor’s guilt가 그래도 좀 오래갈 것 같다.

Rekindle (1)

“…그대 속에 간직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사에 다시 불을 붙이게 하려고 합니다.” 디모데전서 1:6b

여기에서 다시 불을 붙인다고 번역한 말을 어떤 영어 성경에서는 kindle afresh 라고 번역을 했다. (NASB)

그런데 원어는 거의 ‘다시 불타오르게 한다’는 뜻을 가진 단어인 것 같다.
그래서 ESV에서는 ‘to fan into flame’이라는 표현을 썼다.

연말에 쉬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생각하게 된것은 rekindle 이었다.

내게도 정말 어떤 형태로든 rekindle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2023년이 내게 The Year of Rekindling이 되길.

2023년!

우아, 참 잘 쉬었다.

잠을 푹 잘 잤다. 가족과 함께 짧은 여행도 다녀왔고, 갔던 곳이 완전 시골이어서 난생처음 은하수도 볼 수 있었다.
우아, 하늘에 그렇게 별이 많다니!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하거나, 계획을 짜거나 하는 것 따위 거의 하지 않고,
정말 쉬었다.

이제 다시 시동걸고 출발이다.
새해엔 조금 더 성실하게 살아볼 생각이다.
어쩌면 내게 더 필요한 것은 조금 더 성실하게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

올해를 정리하며

아마도 오늘의 글이 올해의 마지막 포스팅이 아닐까 싶다.
내일부터는 새해 1월 초까지 잠시 휴가를 가지려 한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한해동안 좀 성숙해지는데 집중해보겠다고 결심을 했었고,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기능’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그냥 계속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내 인격 자체에서 맺혀야하는 열매를 맺고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서 였다.

그러기위해서 규칙성으로부터 때로는 벗어날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한해를 돌이켜보며 내가 조금 더 그렇게 살았을까를 생각해본다.
아닌 것 같다.

그런데 희망적인 것은,
한동안 급격하게 내가 기능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었는데, 그 가속화 흐름은 확실히 꺾였다. 추세가 달라졌다고나 할까.

연말에 조금 잘 쉬어볼 생각이다.
쉬면서 하나님과 사람들과 나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려고 한다.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ould one day walk on water?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ould save our sons and daughters?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Has come to make you new?
This child that you delivered, will soon deliver you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ill give sight to a blind man?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ill calm the storm with his hand?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Has walked where angels trod?
When you kiss your little baby
You kiss the face of God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The blind will see, the deaf will hear
The dead will live again
The lame will leap, the dumb will speak
The praises of the Lamb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Is Lord of all creation?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ould one day rule the nations?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Is heaven’s perfect Lamb?
That sleeping child you’re holding is the great, I Am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Oh

마리아 당신 알고 있었나요 당신의 그 아기
언젠가 그가 물 위를 걷고 우리를 우권할 것을
마리아 알고 있었나요 당신의 삶이 바뀔 것을
당신이 낳은 아기 당신을 살릴것을

마리아 당신 알고 있었나요 당신의 그 아기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폭풍을 잠잠케 할 것
마리아 알고 있었나요 그는 하늘에서 온 이
당신이 입맞춘 얼굴, 하나님의 얼굴

눈먼 자를 보게 하고 죽은 자 살리고
저는 자를 뛰게하고 벙어리를 찬양케
오 마리아 당신 알고 있었나요
당신의 그 아기가 만유의 주
마침내 그가 온 세상 통치할 것을
마리아 알고 있었나요
당신 품의 그 아기가 하나님의 어린양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