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함

예전에 내가 알던 어떤 사람의 이야기.
자기가 하는 어떤 일이 있는데 일이 진전이 없고 힘들다는 거다.
그래서 그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가만히 들어보았는데….
음…. 내가 판단하기론 일을 열심히 하고 있지 않은게 문제였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자기는 일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일도 해라, 저런 것도 생각해봐라, 일을 조금 더 ownership을 가지고 밀어붙여봐라… 이런 이야기를 해도 잘 먹히질 않는다. 자기는 이미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

상황이 엉망이고, 뭔가 많이 부족하고, 꽉 막힌 것 같아 잘 풀리지 않고…
그럴때, 최소한 좀 열심히라도 한번 해보는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이 일이 내게 주어진 책임이니 내가 책임 지겠다는 생각으로 어떻게든 해 내려는 노력은 참 소중하다.

물론 이게 각각 어떤 개인이 열심히 하는 것을 넘어서 어떤 집단이나 조직이나 사람들이 함께 그렇게 힘을 내어서 열심히 하는 노력은 때로 몹시 아름답다.

잔재주와 큰걸음

소위 처세술이라고 해야할까, 자기가 하는 일에 잔재주를 잘 부리는 사람들이 있다.
기술자들이다.

정치에있는 정치꾼들, 법조계의 법기술자들같이 뉴스에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당장 회사에서도 그런거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어떤 일정 기간을 놓고 보면 그런 잔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는 것 같아 보인다.
또 그런 잔기술이 잘 먹히는 어떤 상황이나 흐름같은 것들이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그래도 꽤 오래 일 하면서,
완전 실력도 없고 능력도 없는데 잔기술 잘 부려서 월급 많이 받고 하는 사람들을 꽤 많이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들이 먹히는 기간은 모두 한때 뿐이다. 어느 일정 기간이 넘어가면 결국 그 사람이 잔재주로 살아가는지 큰 걸음을 걸어가는지 하는 것이 보이게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의 문제는 그 먹히는 한정된 기간이… 때로는 어떤 사람의 인생만큼이나 길다는 거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얍씰한 잔기술로 결국 평생을 풍요롭게 살게 되기도 한다.

대개 그런 한정된 기간이랄까 그런 것은 위기의 순간에 끝나게 되는 것 같다.
위기 상황이 되면 그런 잔기술보다는 큰걸음이 먹히게 되고, 그런 잔기술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걸러지게 되는 것 같다.

그냥 한국의 정치 상황을 보면서 하게 된 생각.

정치권력

요즘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process를 통해서 누구를 뽑느냐 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누구든 그 사람이나 집단이 권력을 잡으면 그들에게 권력을 전적으로 위임하고 신경쓰지 않는다. 다음 선거때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기도록 하는데 다시 모든 관심을 갖는다.

이것은 정치를 게임으로 여기는 경향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기뻐하고 반대편을 혐오하는 형식의 게임이다.

그러나…
사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그 정치판에서 그런 종류의 게임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정치 권력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우리가 선출하는 사람들이나 집단은 그 권력을 대신해서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그 사람들이 그 위임된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감시, 견제, 때로는 저항등을 해야할 책임이 있다.

물론 그 권력이 합당하게 공의를 행하는 역할을 할때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일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정치권력에 대한 견제를 할때 그 정치 권력의 모든 방향에 사사건건 딴지를 건다거나 반대쪽 정치집단을 응원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공의가 그 정치 권력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바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한국의 상황에서,
적어도 지금은, 그 공의가 어떤 방향인가 하는 것이 꽤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어떤 집단은 매우 공개적이고도 의도적으로 그 공의와 반대되는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정치 집단의 생각에 자신의 identity를 두지 말고 그 집단이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어내는 도구로 사용되도록 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어떤 정치집단은 그렇게 도구로 사용되기에 조금 더 적절할 수 있고, 어떤 정치 집단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이번에 선거에서 이긴 정치집단이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이번에 그 반대쪽 집단이 하고 있는 악한 일들 때문에 일방적인 선거가 되길 바랐다.
내가 바랐던 것 만큼 일방적인 선거가 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렇지만 그나마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지지하거나 응원하는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이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는 아니며, 그것 자체가 공의의 실현은 아니라는 것을 나 스스로 기억하려고 한다.
오히려 그 권력자와 그 정치집단이 어떻게 그 공의를 이루어가느냐 하는 것을 보며 한편 응원하고 한편 비판하면서 정치가 하나님의 도구가 되도록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Allergy

금년은 Bay area에 allergy가 심하다.
이게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금년에 유난히 심하다고 한다.
그게 결국 기후변화와 연관이 있을 텐데,
정상적인 경우보다 꽃가루등의 allergen들이 훨씬 많아져서 사람들이 다들 기침하고 콧물 흘리고 난리다.

allergy와 천식이 있는 나는 올해 그래서 고생을 더 하고 있다.
천식용 inhaler도 쓰고, allergy 약도 먹고…

어떤 사람들은 같은 allergy에 더 심하게 반응해서 더 힘들어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꽃가루가 많이 날리지만 그 속에서 더 덤덤히 살아가기도 한다.

참 감사한 것은 그렇게 약을 쓰면 그래서 훨씬 더 살만하다.
allergy약을 개발한 사람들 모두가 allergy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개발된 약 때문에 나는 훨씬 삶의 질이 좋아졌다.

만일 어떤 사람들이 allergy가 중국 스파이가 퍼뜨린 약품 때문이라는 유언비어를 믿는다거나,
allergy란 없다. 그저 그 사람의 정신상태가 문제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한다거나,
그래서 allergy가 있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그러면 그냥 훨씬 힘든 사람들이 생기는 거다.


정치적 혼란, 부패하거나 무능하거나 타락한 정치적 리더의 문제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무게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미친짓을 해도 나는 뭐 살만하다… 그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 그렇다.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훨씬 더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마음이 힘든 것을 넘어 생계가 어려지거나 다른 더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래도 상관없다고… 나는 살만하다고… 지금 내 문제가 아니라고…
그런 무관심 때문에 어떤 사람들의 고통은 더 심해진다.

혹은, 이상한 음모론이나 거짓 뉴스를 믿고 엉뚱한 주장을 한다면,
그냥 어떤 그룹에 대한 증오나 혐오만으로 사실을 왜곡한다면,
어떤 사람들은 세상 사는게 정말 힘들어 지는 거다.

allergy약이 allergy 문제를 다 해결하지 못하는 것 처럼,
정치가 세상의 문제를 다 해결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최소한 어떤 사람들에게 조금 더 살만한 약을 제공해주는 역할 정도는 할 수 있다.
아니, 독을 약으로 알고 먹고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독을 먹지 않도록 할 정도는 최소한 할 수 있다.

정치적 지향

지난번 한국에서 계엄이 선포되었다는 뉴스를 보았을때,
나는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른다.

내가 느꼈던 첫 느낌은… 모욕감이었다.
아니, 감히 네가 이 나라를 이렇게 망가뜨려?
뭐 정치적 입장이나 견해가 어떠하냐를 떠나서 그건 정말 몹시 화나는 일이었다.

정치가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 분은 정말 쉽게 삭여지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정치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는 전두환 독재정권이 있을 때였다.
80년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대학에 들어가서 알게 되었고,
겁이 많고 이기적인 사람이었지만 그 마음 속에 쌓이는 분노는 내가 어떤 그룹을 절대로 지지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굳건히 갖게 했다.

그 후 그 독재자들의 후예들이 만들어온 정치집단을 내가 좋아했던 적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그룹에 대한 극렬한 분노는 더 이상 내게 없었다. 다만 더 사회적으로 약한 세력이 정치적 힘을 갖게되는 것이 이 세상을 그나마 덜 기울어지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한쪽을 지지하는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대충 2020년대에 들어오면서,
이제는 한국의 리버럴이 더 이상 약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제는 나도 예전에 가졌던 입장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니다. 이건 정말 정말 아니다.

80년 광주 때문에, 그 만행을 반성하지 않는 그 정치 집단을 극도로 혐오하게 되었던 것 처럼,
이번에 일어난 미치광이 사건, 미치광이 정권 때문에, 그 만행을 반성하지 않는 그 정치 집단을 한동안 또 다시 극도록 혐오하게 될 것 같다.

이번에 어떤 후보가 한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 확실해 보이지만,
그리고 나도 정치적 보복 같은 것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적어도 선거의 결과만으로는 완전히 한쪽이 한쪽을 압살해버리는 결과가 나오길 응원하고 있다.

개인윤리

1.
내가 20대에 만났던 기독교는,
어쨌든 보수적인 기독교였고 (지금도 나는 보수적인 기독교인이다.)
그러니 개인윤리에 대한 강조가 참 컸다.

정직함, 성적 순결, 다른 사람을 도구로 생각하지 않고 대함, 관계에 대한 진지함, 돈에 대한 탐욕을 피함, 사람의 칭찬에 의지하지 않음, 성실함, 자기 성찰, 내적 통일성(integrity) 등등…

처음 소위 ‘회심경험’을 했을때 나는 이렇게 내가 맞닥드린 여러가지 개인윤리의 요청들이 정말 기쁨으로 다가왔다.
정말 그랬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서 그렇게 살아가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
그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2.
기독교가 개인윤리에만 한정되는 것은 신앙의 공공성이라는 매우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나도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윤리에 대한 건강한 고찰과 강조가 없는 신앙의 공공성은 절대로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매우 자주, (언제나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신앙의 공공성은 건강한 기독교적 윤리로부터 비롯된다.

3.
한국의 검찰이 문제가 많다고 한다.
그 문제의 매우 중요한 핵심 가운데 하나는 출세지향적, 권력지향적 검사조직이다.
그거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출세 지향적, 권력 지향적 삶이 아닌 다른 삶이 있다는 개인윤리를 누군가가 보여주지 않는다면,
정말 대안적인 삶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누군가가 더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이 좇아야할 표적이 될 수 있단 말인다.

4.
한국과 미국의 소위 ‘보수’ 혹은 ‘극우’집단의 문제가 심각하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어떤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이야기하고, 말꼬리를 잡아 사람들을 선동하는 일들을 즐긴다.
권력을 위해서 개인윤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만일 정말 보수적인 기독교인이 그 상황 속에서 끝까지 정직하고, 끝까지 희생적이고, 끝까지 권력지향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서 있다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어떤 보수 기독교인들이, 정치인들의 정직함과 윤리성에 대한 것을 이야기한다면 이 상황에 어떤 모습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5.
한국도 미국도,
그리고 그 극우를 지지하는 보수 기독교의 문제 역시 심각하다.
그런데…
건강한 보수 기독교라면, 개인윤리에 대한 깊은 강조가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사회개혁이나 그런가 보다도, 각 개인이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것에 대한 강조가 지나치다 싶게 이루어져야 하는거 아닌가?
그래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는 이야기를 넘치도록 해야하는거 아닌가?

그 보수 기독교가,
건강한 개인윤리를 다 포기한채, 극우적 아젠다를 받아들여버렸다.

진보적 기독교는 세상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보수적 기독교는 세상의 변화를 거부하는데…
그 속에서 아무도 건강한 기독교적 윤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6.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어떤 사람들을 보고싶다.
몹시 간절하다.

호칭

한국은 유난히 호칭(title)에 민감한 문화를 가졌다.
김 선생님, 이 사장님, 박 교수님, 최 부장님….

미국의 회사는 부장, 과장 그런 직책들이 없으니…
한국 사람이 나를 부를때 꽤 불편해 하는 경우가 많다.
설사 내가 무슨 부사장(VP)그런 직책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미국에서는 Kwon VP 혹은 VP Kwon 이라고 사람을 호칭하는 일은 없다.

그런데,
이게 참 흥미로운 것은…
한국 사람들 중에서 유난히 목사님들은 스스로를 아무개 목사라고 소개하는 일들이 많다.
사람들이 삥 둘러 앉아서,
뉴욕에서 온 김아무개입니다. LA에서 온 최아무개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시카고에서온 박아무개 목사입니다…
그렇게 소개를 하는 것이다.

나는 목사가 아니고, 목사가 되어본적도 없으므로,
목사님들이 왜 그러시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자체가 하나님 앞에서의 한 사람이 아니라… 목사여야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일까.

삐딱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것은 아니겠다 싶다가도…
그냥…. 내가 잘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려니… 이젠 그냥 그렇게만 생각하고 지나가곤 한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연락

이번주, 내 학교 후배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왔다.
뭐 후배라고는 하지만 나이 차이도 한살밖에 나지 않고, 사실 그냥 친구다.

멀리 떨어져 살아 자주 보지도 못하지만,
나는 그 친구의 삶과 신앙을 신뢰하고 존경한다.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는 참 좋은 친구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친구가 내 블로그를 본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나와 계속 소통하면서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고.

나도 그 친구는 그래도 꽤 자주 생각도 하고,
그 친구를 좋은 신앙인의 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열심히 예수님 믿으면서 살고 있는 그 친구 덕분에,
나도… 그래, 그렇게 성실하고 신실하게 믿으며 싸우며 사는 사람이 있는데…
나도 좀 더 그렇게 살아야지…
뭔가 흐트러진 내 자세를 다시 가다듬었다.

현재 내가 겪는 AI

  1. 나는 coding을 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에게 이제 AI는 없어서는 안될 도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분위기다. 정말 대단히 많은 coding이 AI에 의해서 되고 있고, 그 범위가 급속하게 늘고 있다.
    나는 그쪽은 잘 모르기 때문에 앞으로 이게 어떻게 발전해갈지, 어디까지 그 범위가 넓어질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결국은 coding이라는 기술적 혹은 기계적인 일을 하는 것 보다는 그 coding이 만들어내는 그림 자체를 그려내는 사람들이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다만 문제는… 일단 학교를 막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는 소위 주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필요가 현저하게 줄어들어버렸다는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선호했던 컴퓨터 사이언스쪽 전공 졸업자들이 직장을 찾는게 어려움을 겪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 같다.
  2. 내가 하는 일들은 우리가 개발하는 어떤 물건이 제대로 개발되도록 다른 회사들과 함께 일하면서 여러가지를 조정하고 실행해나가는 일들이다.
    하는 일들이 루틴하게 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우리 쪽에는 그런 AI에 의한 충격이 그렇게 직접적이고도 빠르게 오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현재 까지는.
    그렇지만 회사에서도 여러가지 AI tool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많이 권하고 있다.
    Google에서 만드는 tool들은 그곳에 data를 올려서 활용하는 것도 괜찮다고 하고 있고, 제한적이지만 나도 이렇게 저렇게 조금씩 그런 tool들을 쓰기 시작하고 있다.
  3. 이번주에 있었던 Google I/O는 참 흥미로웠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Google이 이제는 main search에 AI를 더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지만 AI는 컴퓨팅 파워가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런데 엄청나게 많은 search가 이루어지는 그 google의 main search에 Gemini를 incorporate해서 쓰기 시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을 많이 발전시켰다는 것 뿐 아니라, 그 기술을 상업적으로 큰 스케일로 쓸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어서,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한, search와 광고는 Google이 돈을 버는 주된 수입원인데, 그것에 AI를 넣어서도 여전히 그 돈을 벌 사업방향등이 어느정도 정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perplexity같은 곳에서 google은 절대로 search에 AI를 쓰지 못할 것이라고 했었다. 그건 결국 제살 깎아먹기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Google은 그걸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도 이 큰 회사 돈을 벌 수 있다고 확신한다는 이야기다.
  4. 나는 결국 Google의 여러가지 AI tool들을 사용하게 되는데,
    아직은 초보수준이지만 그래도 도움을 얻는 일들이 꽤 있다. 내 일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5. 적어도 내가 경험하는 바, AI는 매우 급격하게 현실과 현재가 되어가고 있다.

삶의 의미를 찾는 세가지 팁

민우와 지난 주일 예배를 마치고 했던 이야기.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많은 20대들에게 삶의 의미가 너무 좁게, 작게 형성되어있다.
많은 경우 삶의 의미가 자아실현과 자기발견등에 매물되어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너무 극소수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성공을 하는 시대에 살고 있고,
그야말로 ‘평범함’이라는 것이 매우 빠른 속도로 세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그 속에서 자아실현이라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세가지 정도가 도움이 된다고 본다.

첫째,
내 삶의 의미가 내게서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나보다 훨씬 더 큰 스토리의 일부이다.
그 스토리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의미가 있다.

둘째,
초월성(trancendence)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설명하고 정복하고 다스리지 않는 다른 차원이 있다는 것에 마음을 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능동적인 삶과 피동적인 삶의 균형을 잘 찾는 것이다.
내가 control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지혜롭게 피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저 피동적인 사람이 되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진심으로… 기독교가 지금 이 의미없음의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소망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