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는 세종류가 있다고 생각된다.
첫번째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겪게 되는 어려움이다.
두번째는,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적극적으로 당하는 박해에 의한 고난이다.
세번째는, 억울하게 당하는, 피해자로서의 고난이다.
명백하게 자신의 잘못으로 고난을 겪는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어려움을 주심으로 잘못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기회를 주신다.
다시는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복음과 하나님나라를 위해 당하는 박해에 의한 고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멋진 고난이다.
이 고난의 열매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세번째 억울하게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처한 상황보다 그 사람을 더 사랑하신다는 중요한 sign이 된다.
성공이나 명예나 부 권력보다 그 사람이 더 소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그런 일들을 허락하시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 고난에 처해 있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내 잘못은 없었나 하는 것을 돌아보게 되지만… (또한 돌아보아야 하고)
일차적으로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향한 무한한 사랑을, 마치 하늘 문을 여시고 폭포수를 그 사람의 머리에 쏟아붇는 것 같이 부으신다. 때로 그 고난의 가운데에 있는 경우엔 그 사랑을 fully appreciate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객관화시켜서 보면 – 보통 시간이 지나면 객관화가 가능하게 된다. – 그 사랑의 하나님이 전체 상황의 배경임을 볼수 있다.
첫번째 종류의 고난을 당하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감사한다. 그 사람의 성숙에 대한 소망 때문이다.
두번째 종류의 고난을 당하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감격한다. 그 사람의 헌신으로 드러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세번째 종류의 고난을 당하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흥분한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당신의 사람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