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교 1학년이었던 1987년에는 독재타도의 함성이 온 나라를 덮고 있었다.
대학의 축제라고 가보면 ‘대동제’라는 이름으로 소위 ‘운동권’의 노래를 부르고 막걸리를 마시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고등학교때 철저하게 ‘반공 이념교육’을 받아 운동권=빨갱이=나쁜놈 의 등식을 가지고 있었던 내게 ‘금관의 예수’라는 노래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1.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2.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당한 손길들의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죽음 저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지금 다시 이 가사를 음미해보면서, 이 ‘운동권 노래’가 하나님 나라 신학의 아주 건강한 면을 담고 있음을 본다.
그리고 한편,
지금 이 시대에… 시대를 거슬러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와 같은 이런 찬양이 더 이상 나오고 있지 않음이 가슴 저리게 아프게 느껴진다.
다시한번 눈물로…
“금관의 예수”를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