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적 희망 (7)

요즘 젊은이들의 최대 희망이 ‘정규직’이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참 마음이 아프다.

한때는 젊은이들이라면 달라진 세상을 꿈꾸고, 더 큰 가치에 자신을 던져보겠다고 이야기하는 기상이 있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을 바꾸어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젊은이의 기상이라는게 이젠 그냥 철 지난 구호처럼 들려버리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무조건 윽박을 지르면서 너희들 더 힘을 내야지~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꼭 해줘야하는 한가지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네 삶을, 너만을 위해 살지 말라는 것이다.

결국 삶의 의미를 자신 내부로부터 찾아내려는 포스트모던적 시도는 삶의 기준을 자신에게 두도록 요청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삶의 의미와 동기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내 삶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대안적 희망을 이야기할때 매우 핵심적이고 중요한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의미에서, Lordship에 대한 이야기가 잘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주님’이 되신다. 그것은 그분이 내게 어떻게 살라고 명령하실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내가 주님에게 명령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다가 지쳐버린 이들에게, 그 의미가 외부로부터 주어진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기에 생경하게 느낄수 있겠지만…
결국 그렇게 해야 이들이 다시 삶의 의미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나의 선호(preference)’ 가 내게는 진리(truth)가 되어버리는 세상이다.
나는 어떤 음식을 좋아해. 그러니까 나는 그 음식을 먹어야해.
나는 어떤 종류의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그러니까 나는 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야해.

자신의 입에 맞는 음식을 찾는것이나, 자신이 더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버릴때 그 사람은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게 된다.
자신의 선호를 Lordship(예수님의 주되심)앞에 굴복시키는 어려운 결정을 할때야 비로소 삶의 의미를 찾게될 수 있다는 것이다.

Lordship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진다.
복음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이게 전혀 생소한 개념이기 때문에 나을수도 있다.
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해온 사람들에게, 그것으로부터 깨어나와야 네가 정말 자유로와질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훨씬 훨씬 훨씬 훨씬 더 어렵다.

10년, 20년, 심지어는 50년이상 그렇게 자기중심적 신앙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당신의 신앙이 심각하게 병들었다는 이야기가 잘 먹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