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빨리 하기

내가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측정할 재주는 없지만,
얼핏 느끼기에 이곳 bay area의 엔지니어들은 말이 빠르다.
진짜… 좀 많이 빠르다.

대개 회사에서 meeting을 할때, 15분 미팅동안 논의할것들을 정해놓고 부지런히 그 내용을 쏟아부어야 그 시간안에 meeting을 다 할 수 있기 때문에,
전투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내용들을 전달해야한다.
이러면서 말이 더 빨라지게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게다가,
한국과 미국의 youtube가 편집되는 방식을 보면,
문장과 문장 사이의 공백을 거의 없애는 방식으로 편집을 하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빨리 말을 한다.

작년엔가,
KOSTA에서 온라인으로 followup을 하는 분들의 모임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왔었다.
젊은 세대가 전반적으로 말이 빠르다는 거다.
말이 느리면 당장 지루해하고 관심이 돌아가버리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할때는 말을 빨리해야한다는 것도 들었다.

전반적으로 말을 빨리하는 디지털 세대에서,
게다가 짧은 시간안에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하는 압박에 시달려 있으면,
말을 천천히 하는게 정말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민폐가 되지 않으려고 나도 말을 빨리 하게 되고.

3주전에 교회에서 했던 내 설교를 다시 들어보니,
그냥 말을 빨리하는 것을 너머서, 더듬더듬하고 버벅거릴 수준에 이르기까지 말을 빨리하고 있었다.

사실 이번에 설교에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았다.
그걸 30분 안에 꾸겨 넣으려하다보니 말이 더 빨라진것 같기도 했다.

말을 더 천천히 또박또박하는 연습을 해야한다고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면 생존이 불가능해져버린다. ㅠㅠ
오히려 빨리 하되 버벅거리지 않도록 하는 연습을 더 해야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을 빨리하는 효율성이 내게서 사랑할 여유를 빼앗아가버리지 않아야하는데…
그 밸런스를 잃지 않는 것은 정말 정말 쉽지 않다.

충무공 탄신일

언제 인지는 모르겠는데,
국민학교 다닐때 오늘이 충무공 탄신일이라는걸 언제 배웠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정신없이 지나갈때는 그냥 지나가는데,
몇년에 한번씩은 문득 충무공 탄신일을 이야기해주셨던 선생님이 지금쯤 어디에 계실까.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 그때 친구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되곤 한다.

나는 유난히 사람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쉽게 잊는다.
나는 심지어 대학동기들도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기도 한다.
같은 과에 있었던 사람들 조차도.
그러니 국민학교를 함께 다녔던 친구들을 기억하지 못하는건 당연한 일…

국민학교 어느 선생님께서 내게 충무공 탄신일을 가르쳐 주셨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고,
그 선생님이 지금은 어디에 계시는지도 잘 모르지만,
이렇게 문득 내 기억과 삶의 일부를 만들어주신 많은 분들이 있다는 것을 가끔 충무공 탄신일에 다시 기억하게 되곤 한다.

충무공과는 전혀 관계 없는 충무공 탄신일에 대한 짧은 생각.

하나님께서 리더들에게 엄격하신 이유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리더들에게 유난히 엄격하시다.
그냥 약간의 잘못이라도 하면 그것이 좀 용납될 수 있는 것 같아 보이더라도 그냥 인정사정없이 대하시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러실까.

결국은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에게 관심이 있으신거다.
그래서 그 백성들을 잘못되게 이끄는 리더들에게 그렇게 엄격하신건 그 백성을 망치는게 속상하셔서 그런거고.

그래서,
리더로서…
자신을 돌보는데 일차적 관심이 있는 사람은 리더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뭘 얘기하던지 결국 자기가 어땠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면 그 사람은 위치상으로 리더일수는 있어도 실제적으로 리더는 아니거다.

이건 교회세팅에서도 그렇지만 회사등의 세속적 세팅에서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지적 질문과 개인적 상황

세상에 악이 이렇게 있는데, 신이 있다는것이 말이 되는가,
기독교의 신이 유일신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소위 기독교변증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여러 내용들을 다루는 교회 소그룹이 어제 끝났다.
봄학기 동안 했던 것인데…

내가 마지막에 했던 이야기는 이것이었다.

나름대로 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았고, 그 사람들이 하는 까다로운 지적(intellectual) 질문들을 많이 접해 보았다.
똑똑한 사람들이니 그 사람들이 하는 질문들도 당연히 매우 날카롭다.

그렇지만 그렇게 날카로운 지적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다수는,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80% 이상의 사람들은) 그 지적질문이 단순히 지적 호기심으로부터 비롯된 것들은 아니다.
대개는 개인적인 상황으로부터 파생되어나온 질문들이다.

가령,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선하고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다던가,
자신의 꿈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신이 자신을 돌본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건가 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날카로운 지적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믿을 수 있는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을 수 있는 이유’를 찾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에대한 적개심을 정당화할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자신들만의 echo chamber안에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을 들으며 즐거워하는 것만큼이나 비겁하다.
하나님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면, 그 거부감을 ‘지적 질문’뒤에 숨겨둔채 지적인 질문만을 던질 것이 아니라,
그 신에 대한 거부감 자체를 꺼내놓고 다루어야 한다.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진리’에 대한 정직한 자세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하루 좀 쉬어보자!

회사 휴가가 쌓인게 남아 돌아가서,
최대로 누적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휴가를 쓰지 않으면 그냥 없어져버린다고 매주 이메일이 날라온다.

그래서 원래는 오늘 하루 쉬어보겠다고 큰 계획(?)을 세우고 미리 시간다 비워두고,
혼자 시간좀 보겠다고 생각했으나….

어제 밤까지 text message오고,
이메일 날라오고…
결국 오늘 일하게 되었다.ㅠㅠ

요 한 고비 넘기면 살짝 좀 여유가 생길 것 같은데…
요 고비가 잘 안넘어가네.

지금 문제는,
팬데믹 때문에 일이 되는게 계속 느려지는데,
일을 마쳐야하는 deadline은 여유있게 잡혀있지 않으니 결국 나와 사람들을 들들 볶아가며 일을 해야하게 된거다.

어제 늦은 밤까지 나와 이메일하고 text message하면서 씨름했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면 참 안쓰러운거고…

나도 그렇지만 그렇게 다 함께 아둥바둥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루쯤 이메일 걱정 안하고 쭈욱~ 쉴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가는 회사마다 망한다?

내가 처음 hp에 갔을때, hp는 한참 뜨고 있었다.
결국 내가 hp에 있는 동안 hp는 pc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고,
tech 업계 최고의 시가총액을 달성했다.
그런데 그렇게 최고점을 찍고나서 슬슬 밀려나더니 내가 나올때쯤에는 완전 쭈루룩~ 밀려나는 분위기였다.

그 후에 다녔던 apple은,
내가 막 들어갈때 막 ipad를 시장에 처음 냈었고, apple watch가 소문만 무성하던때였다.
뭔가 역동적으로 잘되는 것 같았는데,
iphone 5정도부터 예전과 같은 성장이 잘 되지 않았고,
iPad도 처음엔 좀 되는 것 같다가 점점 시들해지는 분위기였고,
apple watch도 전반적으로 sales가 아주 잘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apple은 뭐 회사 분위기가 어려워지는 때는 없었지만, 다니다가 뭔가 정체가된다 싶었을때쯤 나는 나왔다.

그 다음에는 Lenovo에 다녔다.
내가 Lenovo에 들어갈때는 Lenovo가 pc 시장 점유율 1위였고,
모토롤라를 사서 mobile 시장에도 진출하던 때였다.
Lenovo 브랜드의 mobile phone도 있었고.
내가 그 회사에서 나올때쯤 pc 시장이 전반적으로 주저앉으면서 회사 분위기가 완전 좋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보면,
내가 지금 회사 이전에 다녔던 회사들은,
한참 뭔가 잘 나가기 시작할때 내가 들어갔고,
뭔가 잘 안되거나 정체될때 내가 나오게 되었다.
이쯤되면 내가 그 회사들을 어렵게 만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ㅎㅎ

부디 지금 회사는 어렵게 되지 말고 잘 되면 좋겠다는 작은 바램이…

Work from home after COVID-19

나는 hardware를 만드는 일을 하기 때문에 회사에 가서 일을 해야하는 일들이 그래도 좀 있다.

그런데 software engineer들은 그냥 집에서만 있어도 기능적으로는 일이 대부분 잘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실리콘 밸리의 큰 회사들중 꽤 많은 회사들이 COVID-19 이후에 직원들이 office로 출근을 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의 분위기를 보면, 엔지니어들은 계속 work-from-home을 자유롭게 더 하고 싶다는 분위기가 많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그래서 다시 office로 돌아오라고 강요하면 회사 옮기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다.

회사에서는 office로 돌아오라고 하고, 직원들중 꽤 많은 수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하고…

COVID-19이 끝난 이후 이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잘 모르겠다.

위선과 피상성

복음서에서 위선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hypocrisy라는 영어단어와 발음도 비슷하다.
ὑπόκρισις (후포크리시스 쯤으로 읽을 수 있겠다.)

그런데 이 단어를 ‘위선’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내용을 읽었다.
Joel Green의 누가복음 주석 (NICWT)에서 본 것이다.

후포크리시스라는 단어의 용례를 70인역에서 찾아보면,
위선자라는 단어는 대개 하나님의 뜻에 맞는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 혹은 godless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후포크리시스’로 표현하신 것은,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 성경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이 사람들의 행동이 깊이 뿌리를 두지 못한 피상적인 종교적 열심에 머물러 있었던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는 설명.

내가 나름대로 그것을 곰곰히 곱씹어보면,
바리새인의 문제는 속은 거짓이 가득한데 겉만 뻔지르르한 위선이 문제가 아니라,
속은 텅 피어있어 내용이 없는데 겉은 종교성으로 가득한 피상성이 문제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누가복음에 나와있는 바리새인의 ‘후포크리시스’를 ‘피상성’이라고 생각하고 읽어보니 이야기가 아주 술술~ 잘 풀린다!

최근 피상성에 대해 들었던 말 중에 아주 멋진 말.
미라슬라브 볼프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Religion is most dangerous when it’s superficial”

깊이 생각할줄 모르는 종교성은 파괴적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Because I’m not in charge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도 하고,
단순히 열심히 살 뿐 아니라, integrity도 잃지 않으려고 정말 많이 노력한다.

그러나,
가끔 한번씩은…
내가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데, 내가 잘하고 있긴 한걸까?
내가 완전히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어쩌지?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지난 주말,
다른주말보다 조금 더 쉬고,
더 게을렀다.

그러면서 어제 저녁에 문득 바로 이런 생각이 나를 확~ 감쌌다.

어쩌면 지금 내가 완전히 틀렸을지도 몰라…

그럼 어쩌나.
그럼 뭘 어떻게 해야하나….

이래저래 그렇게 저녁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자기전에 다다른 생각.

I’m not in charge.

그래, 결국 내가 당연히 다 맞을순 없지.
당연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 생각하는 것들, 이야기하는 것들중 틀린 것들이 많이 있겠지.
그래도 이런 불완전한 사람들을 통해서 뭔가를 이루시는 게 하나님이니.

내가 생각해야하는 것은,
내가 정말 모든 것들을 다 옳게 하고 있냐는 질문이 아니라,
내가 여전히 하나님께 충성된(faithful)가… 하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Am I faithful?

그 질문에 대해서도 여전히 자신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뭐 하나님께 faithful하려고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I’m not in charge.

어제 밤에 잘 잘 수 있었다.